'색면추상' 유희영 개인전
현대화랑서 회화 30점 전시
선과 면으로만 그린 그림
강렬한 색상 대비로 변주
수행하듯 감정·느낌 담아내
"팔순 넘었지만 난 현역작가
손 움직일 때까진 그려야죠"
"젊은 시절 추억이라든가 여행을 갔을 때의 느낌이라든가 이런 걸 나는 그냥 빨간색, 파란색의 단조로운 이미지로, 그러니까 오로지 색채로 나타내는 겁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조형적 요소를 최대한 덜어내고 색채의 특징과 변화에 집중하는 '색면추상'의 대가 유희영 화백(84·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초빙석학교수)은 평생 색면추상에 매달리게 된 것이 그저 운명이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작업을 하다 보면 표현이 잘될 때도 있고 반대로 그림이 잘 안 나올 때도 있다"며 "물감을 지워 없애보기도 하고 뿌려보기도 하고, 긁어보기도 하면서 변화를 시도한 끝에 자연스럽게 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부터 색면추상의 외길을 걸어온 유 화백이 개인전 '생동하는 색의 대칭'으로 돌아왔다. 오는 10월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개최된다. 2018년 이후 6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으로, 2019~2022년 근작을 비롯한 회화 30점을 선보인다. 앞선 개인전에서는 붉은색 계열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2000년대 이후 작업 전반을 조명해 좀 더 다채로운 색상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1961년 스물한 살이란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특선으로 이름을 알린 유 화백은 초창기 여러 실험적인 작업을 거듭했다. 1960~1970년대에는 자유로운 붓질로 서정적인 추상화를 그렸고, 1970~1980년대에는 '잔상' '수렵도' 연작으로 생명에 관한 사유를 캔버스에 풀어냈다. 이후 파블로 피카소의 청색 시기 영향을 받은 청색계열 추상화를 선보였고, 1980년대 후반에는 색채의 밀도와 변화를 탐구하며 색채에 변주를 주면서 조형적 요소는 오히려 단순화한 지금의 색면추상에 이르렀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근작에서 나타난 변화다. 캔버스 화면을 수직·수평선과 면으로만 채운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화면을 가르는 수직선을 늘려 평면을 더 세밀하게 분할한 '작품 2019 V-1'이나 보색과 같은 강렬한 색채 대비를 강조한 '작품 2018 G-4' '작품 2019 G-1' 등은 이전 작업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형태다.
출품작 가운데 가장 최근작인 '작품 2022 V-2'는 정방형 캔버스를 나누는 수직선과 수평선이 눈에 띄게 가늘어졌다.
젊은 시절보다 속도는 느릴지 몰라도 유 화백은 끊임없이 새로운 작업을 향해 자신을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팔순이 넘었지만 나는 현역작가니까 손이 움직일 때까진 계속 그려야죠. 시간과 건강이 허락하는 한 멈추지 않을 겁니다." 지난 5월 영국 런던에서 대한민국예술원이 개최한 그룹전에서도 작품을 선보였다는 그는 "아무래도 작업량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1년에 3~4번씩 작품을 전시할 기회가 있다 보니 꾸준히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화백의 회화는 유화지만 물감층이 표면에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하나의 면을 채운 색도 한 가지 색처럼 보이지만 엄밀히는 여러 색을 갖고 있고, 비슷하게 보이는 색도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회화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유 화백은 미술 교육과 행정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이화여대에선 조형예술대학장을 지냈고, 한국문예진흥원 운영위원장, 아시아국제미술전람회 한국위원회 회장 등을 거쳐 서울시립미술관 관장과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역임했다. 2022년부터는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초빙석학교수로 임용돼 이공계 분야 교수 등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예술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송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