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지도자’ 中 후야오방의 셋째아들 후더화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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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톈안먼 사태의 도화선이 된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아들 후더화가 76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후더화는 생전 정치 개혁과 언론 자유를 주장하며 자유주의 사업가로 활동했으며, 2015년에는 시진핑 정부의 반부패 캠페인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그의 사망 소식은 후야오방이 1989년 톈안먼 사태와 연결된 역사적 맥락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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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톈안먼 사태 도화선된 개혁파
후더화도 정치개혁과 언론 자유 옹호해

후더화. 바이두 제공

후더화. 바이두 제공

중국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비운의 개혁파 지도자’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셋째 아들 후더화(胡德華)가 7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후더화는 지난달 30일 밤 베이징 자택 거실에서 심장마비로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 가족들이 발견했을 당시 생명 징후는 이미 없었다. 그는 2년 전부터 부정기적인 수혈을 받을 정도로 심한 빈혈에 시달렸다. 그의 부친 후야오방도 심장마비를 일으킨 뒤 입원 중 1989년 4월 15일 숨졌다.

국공내전이 한창이던 1948년 피난 중 석탄 트럭에서 태어난 후더화는 1994년 금융·사무용 소프트웨어 시스템 개발업체인 베이징탤런트테크를 설립했다.

후더화는 생전 태자당(太子黨·혁명 원로 자제 그룹) 가운데 드물게 정치 개혁과 언론 자유를 줄기차게 외쳤던 자유주의 사업가였다.

2015년 SCMP와 인터뷰에서 그는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 반부패 캠페인 등이 추진되자 “마오쩌둥 시대 이념으로 후퇴하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중국 공산당의 민감한 역사를 다루고 정치 개혁을 주장하는 자유주의 잡지 옌황춘추(炎黃春秋) 부국장을 맡았으나, 그해 중국 당국의 입김으로 경영진이 교체되면서 잡지 편집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 부임 후 3개월도 안 돼 자리에서 물러났다.

후더화의 아버지 후야오방은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인 1980년대 초중반에 다소 급진적인 자유화 조치를 시도하고, 1987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보수파의 공격을 받다가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에 의해 축출됐다.

1989년 중국 개혁·개방의 선구자로 평가받았던 후야오방의 사망은 그해 6월 4일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이후 중국에서는 후야오방이라는 이름 자체를 언급하는 것이 한동안 금기시됐다.

그의 장남 후더핑(胡德平)과 차남 류후(劉湖·입양)는 각각 통일전선공작부 부부장(차관급)과 화룬그룹 부사장을 지냈다. 딸 리형(李恒·모친 성을 따름)은 베이징의대를 나와 의료저널과 중국의학협회 등에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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