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작 영화 <첨밀밀>이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장만옥과 여명이 출연한 이 영화는 홍콩으로 이주한 두 남녀를 그린다. 홍콩이 반환을 앞두고 이방인들의 거처로 기능하던 시절, 연인은 분투를 나눈 사이이기도 했다. 이 영화의 원제가 <Comrades, Almost a Love Story: 전우, 거의 사랑이야기>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각자 세월을 겪은 연인은 우연히 재회한다. 거리에 흘러나온 추억의 뉴스가 걸음을 멈추게 한 것이다. 고등학생 때 그 영화를 접한 이후, 나는 두 가지 환상을 품었다. 사랑은 생각보다 우정에 가깝고, 우연이 사랑의 순도를 보장한다는 것.
운명적인 재회의 장소는 브로드웨이(Broadway)와 브룸 스트리트(Broome street) 교차로. 뉴욕 차이나타운과 소호 사이의 복작한 거리다. 영화 속 전자 제품점은 잡화점이 되었지만 인파는 여전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연인 아닌 길 찾기에 몰두하고 있을 뿐이다. “어디쯤이야?” “거의 다 왔어.” 앞장서는 친구를 뒤쫓아가면서도 나는 의심하고 있다. 차이나타운에 제대로 된 김밥집이 있을 리 없는데. 딤섬이나 인삼젤리면 몰라도.
도착한 곳은 거대한 유리문 앞이다. 시들한 붕어 네 마리가 헤엄치는 어항, 철지난 트리와 먼지 쌓인 전구가 보이는 입구를 지나면 90년대 결혼식장 같은 푸드코트가 펼쳐진다. 싸구려 원형 탁자와 낡은 의자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다소 허름하지만 묘하게 정감 가는 공간이다. 오른쪽 끝 김밥집에서 우리는 참치김밥을 주문한다.
주인은 머리카락을 단정히 감춘 두건과 붉은 립스틱이 인상적인 50대 여성이다. 몸집은 작지만 강단 있어 보인다. 서툰 영어로 몰아치는 그의 환영에 나는 이 말로 화답한다. “저, 한국인이에요.” 우리는 비효율의 세월을 만회하려는 듯 유창한 수다를 떨었다. 그러나 유창함은 마음을 요약하게도 한다. 내가 한 말은 고작 “김밥 진짜 맛있어요!” 였다.
몇 번 더 그곳을 찾았다. 주인 Y는 각종 주제를 넘나들며 수다를 떨다가 늘 같은 말로 대화를 맺었다. “근데 자기, 연속극에 나오는 탤런트 닮았는데. 가만 있어보자…” 그는 사진을 찾다 말고 주방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김이 피어나는 분식을 두 손 가득 쥐어주는 것이 그의 배웅 이었으므로.
“빈대떡 좀 부쳤어. 탤런트는 다음에 올 때까지 찾아놓을게.”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날엔 코트 주머니에서 딱딱한 껌의 형태가 만져졌다. 빛바랜 빨간 색지에 꼬불거리는 폰트로 적힌 ‘이브’라는 한글. 나는 단무지 몇 조각에도 팁이 붙는 맨해튼에서 정(情)의 감각을 잃지 않은 그의 비결이 궁금해졌다.
Y는 IMF가 터진 1998년, 뉴욕으로 향했다. 목동에서 웨딩숍을 함께 운영하던 친구가 자금을 인출해 도주한 후였다. “뉴욕으로 날랐다는 거야. 그래서 바로 쫓아갔지.” “그때는 뭐가 좀 달랐어. 무협지대 같은 느낌이 있었어. 진짜 깡패들도 있더라. 마피아 같은 거. 밤에 보면 그런 사람들끼리 우르르 몰려다니는 걸 볼 수 있었지.” “전철은 토큰으로 탔어. 엽전처럼 생긴 거. 구멍 뻥뻥 뚫린 거. 버스로 갈아타려면 창구에다 얘기를 해야 했지. 얘길 하면 종이를 하나 줬어.” 그가 뜻하지 않게 90년대 뉴욕의 증인이 되어가던 중, 친구의 행방은 여전히 요원했다.
한 달쯤 지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시뻘겋게 부어오른 팔과 뻐근한 무릎을 부여잡은 채 Y는 캐널 스트릿역에 내렸다. 주머니에는 사촌이 병원 주소를 적어준 쪽지와 현금 40달러가 들어 있었다. “차이나타운은 처음이었어. 막 헤매다가 어떤 사람이 저기서 걸어오는데 글쎄, 우리 신랑인 거야.” “.....네?”
“그때 남편을 만났어. 멀버리 스트릿 과일가게 코너 있잖아. 바로 거기 즈음에서.” 근처에 살던 중국인 행인은 간절하게 길을 묻는 이 한국 여자를 외면하지 않았다. 둘은 쪽지에 적힌 이스트브로드웨이 스트릿의 한 침술원으로 향했다. 중국 남자는 떠나지 않고 통역을 자처했다.
무릎이 아파요.(我的膝盖) 팔이 저려요.(我的胳膊麻了)
이 사람은 중국어를 못합니다. (这个女人不会说中文)
“그러다 내가 너무 무서워서 덥석 손을 잡아버렸어. 진료 끝나고, 삐삐 번호를 물어봤지. 커피 한 잔 마시자고.” 이름 대신 병명부터 알게 된 두 사람에게 언어가 중요했을까? 우연은 둘만의 언어가 되었다. 둘 다 영어를 잘 하지 못했지만, 밤새 홍콩 영화를 함께 보며 데이트를 이어갔다. 몇 년 뒤, 그들은 시티홀에서 웨딩드레스도 없이 결혼식을 올렸다. 지난 30년간 이런 방식으로 인연을 만나왔다는 그의 말에는 진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우연은 사랑만이 아니라 그의 생존 방식이기도 했다. “그냥 어떻게든 통했어. 몰라도 그냥 다 알아 들어. 언어가 퍼펙트하지 않아도 친구가 돼.”
내게도 비슷한 연결의 추억이 있다. 최저가로 구한 숙소에서 중국 학생들과 이층침대를 나눠 썼던 이십 대의 어느 날, 열뼘짜리 부엌에서 그들은 탕을 한 솥 가득 팔팔 끓이다가 내게 물었다. “두 유 원트 썸?” 팔꿈치도 올려놓기 힘든 플라스틱 탁자에서 국수를 불어먹던 밤, 나는 그 순간이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임을 직감했었다.
그에게도 음식과 생색없음이라는 언어가 있었다. 하지만 평생의 꿈이었던 김밥집을 열기까지, 그는 반려견 출장 미용, 베이비시터, 케이타운 예식당 보조 등 여러 일을 거쳤다. “사실 식품 위생 관리 있잖아. 인팩션(inspection). 그건 2007년도인가 따 놨었어. 근데 돈도 돈이고, 용기도 잘 안 나고......” 그는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다가 문득 결심이 섰다. 그렇게 1년 반 전, 가장 저렴한 점포를 구해 김밥집을 열었다.
평생 식당을 운영한 Y의 할머니는 아현동에서 도토리묵을 팔았다.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Y였다. 하루는 한인으로 보이는 청년이 푸드코트를 뺑뺑 돌며 망설이고 있었다. 이를 본 Y가 말을 붙였더니 청년이 답했다. “에이, 김밥이 다 거기서 거기죠.” Y는 맛이 없으면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청년은 툴툴대며 야채김밥 한 줄을 포장해 갔고, 다음 날 다시 찾아왔다. “아, 진짜 맛있어요, 막 그러더라니까. 그럴 수밖에. 야채는 아침에 직접 사러 가고, 깨도 내가 직접 볶으니까. 김밥 하나는 자신 있거든.”
어제의 안티는 오늘의 단골이 된다. 다름 아닌 정성과 실력을 통해서다. 그는 그렇게 만난 손님들과 친구가 되었다. 스무 살 차이가 나는 패션 디자이너 학생부터 프랑스인 엔지니어, 태국인 심리학 교수까지, 그가 친근한 문자를 주고받는 이들의 목록은 다양했다. 며칠 전에는 콜롬비아 출신 경찰과 쇼핑을 다녀왔다고 Y는 내게 자랑했다. 그리고 매번 같은 말이 이어졌다. “잠깐만, 내가 사진 보여줄게. 얘도 내 친구야. 처음엔 단골에서 시작했어.”
이날의 인터뷰는 단골들에 의해 여러 번 중단됐다. 그들이 주고받는 언어는 서로 다른 모국어를 쓰는 연인들의 브로큰 잉글리시처럼 덜컹거렸지만 포옹과 미소가 그 틈을 메웠다. Y는 상대가 누구든 이모나 선생님으로 불리는 걸 질색했다. “그냥 언니라고 불러줘.” 그 모습은 그를 내가 본 누구보다 뉴요커처럼 보이게 했다. 30년의 시간이 아니라, 경계를 두지 않는 태도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붙들고 있는 예의와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나를 갈등하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나에게는 그처럼 불완전한 조건에서도 환대를 지속할 자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에 대한 짧은 인내심은 모국어에 대한 환상을 부추긴다. 즉시 이해하려는 충동, 완벽하게 공유된 세계에 대한 강박, ‘모름’을 회피하는 두려움. 이중언어 작가 다와다 요코는 모국어가 우리를 가둔다고 썼다. 이미 알고 있다는 착각, 지나치게 매끄러운 소통 속에서 개인의 고유한 이야기는 미끄러질 위기에 놓인다. 언어를 대신할 무언가가 총동원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새로운 상상력을 잃는다. 인연은 스쳐간다.
Y는 유창함을 산뜻하게 거부하고 환대를 돛 삼아 인생을 건넌다. 나는 그가 나를 위해 로제떡볶이를 만드는 동안, 영화 <첨밀밀>의 마지막 장면을 다시 떠올린다. 남녀가 서로를 마주친 순간 함께 좋아했던 노래만이 흐르던 장면. 기막힌 우연은 서로를 말없이 마주하게 한다. 뉴욕 거리는 여전히 우연의 거리다. 그러나 우연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알아보고 붙잡는 일이다. 스친 인연에게서 단골의, 더 나아가 친구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마음. 우연과 비언어를 재료로 인생의 단골을 만들어내는 일.
그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테이블에 두고 간 휴대폰에 리마인드 알림이 떴다. “뉴욕 최고의 김밥집이 될 거야! 그렇게 내가 꼭 만들 거야!” 그러나 Y의 김밥집은, 최고가 아니라 유일한 곳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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