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핑의 대가들[임용한의 전쟁사]〈379〉

5 days ago 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한 역사적인 회담을 했다. 예상대로 푸틴은 ‘돈바스’(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를 합한 지역)를 요구했고, 서유럽 국가들도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러나 푸틴은 돈바스를 주면 철수가 아니라 전투를 중지하겠다고 말했다. 돈바스는 시간 끌기용이고, 최대한 전선을 밀어붙여서 마지막에는 현재 전선에서 종전하자는 식의 속셈일 수도 있다. 아니면 뭔가 다른 것을 얻어내려는 ‘블러핑(bluffing·허세)’일 수도 있다.

6·25전쟁 때 휴전회담이 떠오른다. 뻔히 보이는 시간 끌기 수법이었지만 더 이상 전선 확대를 원치 않았던 미국은 개성 점령을 포기하고 모든 전선에서 진격도, 후퇴도 하지 말라는 희한한 명령을 내렸다. 이 때문에 전선의 주도권이 중공군에 넘어갔고, 유엔군은 고지에서 수동적인 소모전을 펼치며 헛된 인명 피해만 났다.

이번에도 그때 일이 재연될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트럼프는 푸틴만 만나면 소극적이 되는 것 같지만, 아마 공개하지 않은 자신만의 블러핑을 했을 것이다.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은 한발 한발 확실하게 매듭을 짓고 나가는 식이 아니다. 비무장지대를 활짝 펼쳐놓고, 마지막 순간까지 선을 이리저리 그으면서 끌고 나가는 식이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절반을 넘겨줬다가는 10년 내에 다시 세계대전의 위기가 온다는 점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건 우크라이나다. 미국이 개전 초부터 막대한 비용을 들여 1952년 6·25전쟁 고지전 같은 전쟁을 펼친 것이 되레 우크라이나군에 치명적인 인명 손실을 가져오는 실수가 됐다. 우리가 새길 교훈은 국제 정치에서는 늘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고, 힘이 없으면 우방이든 적이든 어떤 형태로든 우롱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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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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