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도 흔들린다…미국 경제 불안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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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미국 상위층 이미지 / 챗GPT 생성

불안한 미국 상위층 이미지 / 챗GPT 생성

미국의 경제 불안이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넘어 고소득층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고용과 증시 등 전통적 지표가 양호해도 생활비와 은퇴, 자녀 세대 전망에 대한 불안이 계층 전반으로 번지고 있는 영향으로 분석된다.

2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WSJ이 미국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자신을 상류층 또는 상위 중산층으로 분류한 응답자들조차 현재 재정 상황과 전망, 자녀 세대의 미래에 대해 높은 수준의 우려를 보였다. 이번 조사는 지난 5월 7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됐고, 전체 표본의 오차범위는 ±2.2%포인트다.

고소득층 86% "자녀의 삶, 나보다 나아지지 않을 것"

조사에서 상류층 또는 상위 중산층이라고 답한 미국인 가운데 '40% 이상'은 편안한 은퇴 생활을 위한 저축이 충분하지 않다고 밝혔다. 자신의 재정 안정성이 현재 인생 단계에서 기대했던 수준에 도달했다고 답한 비율은 약 40%에 그쳤다. 휘발유 가격 부담을 느낀다는 응답도 거의 5명 중 3명에 달했다.

자녀 세대에 대한 비관론은 더 두드러졌다. 상류층과 상위 중산층 응답자의 86%는 자녀의 삶이 자기 삶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데 자신이 없다고 답했다. 이는 2019년 조사 당시 64%에서 크게 오른 수치다. 부유층의 비관론이 경제적으로 더 취약한 계층과 비슷한 수준으로 높아진 셈이다.

정치, 경제 시스템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상류층과 상위 중산층의 65%는 미국의 정치·경제 시스템이 “나 같은 사람들에게 불리하게 짜여 있다”고 답했다. 2017년 같은 인식은 29%에 그쳤다. 미국에서 가장 혜택을 많이 받아온 집단으로 분류되는 계층에서도 제도 불신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자신이 속한다고 보는 경제 계층을 상류층, 상위 중산층, 중산층, 노동 계층, 하류층 가운데 선택했다. 전체 응답자의 2%는 상류층, 20%는 상위 중산층, 39%는 중산층, 31%는 노동 계층, 5%는 하류층이라고 답했다. 3%는 모르겠다고 하거나 응답을 거부했다.

중산층 25%만 "편안한 은퇴 가능"

고소득층의 불안이 눈에 띄는 이유는 소득 수준이 낮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상류층 또는 상위 중산층이라고 답한 이들 가운데 거의 3분의 2는 연간 가구소득이 15만달러 이상이었다. 이 중 25%는 25만달러를 넘었다. 공화당 성향 여론조사 전문가 애덤 겔러는 이 계층도 노동 계층이나 중산층과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매우 실제적인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중산층의 압박은 더 뚜렷했다. 응답자들이 생각한 중산층 소득은 대체로 가구당 6만5000~13만5000달러 범위에 몰렸다.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본 응답자들은 좋은 급여, 평균 소득, 주택 같은 자산 보유, 기본적 생활비 감당 능력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같은 중산층 응답자들은 안정적 생활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손에 닿지 않는다고 답했다. 은퇴 저축, 건강보험 비용, 주거비, 식료품비 등이 주요 부담으로 꼽혔다. 중산층 응답자 가운데 중산층을 편안한 위치라고 본 비율은 약 5명 중 1명에 불과했고, 비슷한 비율은 스트레스를 받는 위치라고 답했다. 약 절반은 둘 다라고 밝혔다.

부유층도 흔들린다…미국 경제 불안 확산

중산층 응답자 중 비상 지출을 넘어서는 저축을 할 만큼 충분히 번다고 답한 비율, 편안한 은퇴를 위한 자금이 충분하다고 답한 비율, 현재 기대했던 수준의 재정 안정을 달성했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약 4명 중 1명 수준이었다. 매달 갚지 못하는 신용카드 빚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이와 비슷했다.

대학 학위에 대한 신뢰도 낮았다. 중산층 응답자의 3분의 1만 4년제 대학 학위가 비용만큼 가치 있다고 답했다. 반면 56%는 비용 대비 가치가 없다고 봤다. 과거 중산층 진입과 경제적 성공의 사다리로 여겨졌던 대학 교육에 대한 회의가 커진 것이다.

전통적 경제 지표와 체감 불안 사이의 간극도 이번 조사에서 확인됐다. 최근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로 오르고 고용도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미국 경제는 유럽 등 다른 선진국보다 좋은 성과를 냈다.

그러나 휘발유 가격 상승은 1년 넘게 쌓인 임금 상승분을 지웠고, 인공지능이 사무직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불안도 커졌다. 물가도 부담으로 남아 있다. 팬데믹 시기보다 인플레이션은 진정됐지만, 미국 중앙은행(Fed)의 목표치인 2%를 여전히 웃돌고 있다. 소비자 부담도 누적되고 있다. 뉴욕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90일 이상 연체된 신용카드 잔액 비중은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상류층과 상위 중산층은 여전히 다른 계층보다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유효한 여권 보유, 매년 휴가, 항공편을 이용한 여행은 중산층과 노동 계층보다 이들 계층에서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이들은 전체 미국인보다 결혼했거나 자녀가 있거나 맞벌이 가구일 가능성이 높았고, 주식과 주택을 보유한 비율도 높았다.

응답자 70%만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국가 경제와 정치에 대한 평가는 계층을 가리지 않고 비슷하게 악화했다. 모든 계층에서 미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약 4분의 1에 그쳤다. 반면 약 70%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향후 1년간 개인 재정이 나아질 것이라고 본 비율도 모든 계층에서 약 30% 수준이었다.

이번 결과는 미국 경제 불안이 특정 저소득층의 문제가 아니라 계층 전반의 구조적 불안으로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류층과 상위 중산층은 여전히 자산과 소득에서 우위를 갖고 있지만, 은퇴 안정성, 자녀 세대 전망, 생활비 부담, 제도 불신에서는 다른 계층과 비슷한 불안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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