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넘 신임 英총리 취임…“생활비 도움 주는게 급선무”

17 hours ago 4

“중앙정부 권력 지방에 분산하고
英 재산업화 10년 계획 제시할 것”

앤디 버넘 노동당 대표가 20일 버킹엄궁을 예방하고 찰스 3세 국왕을 알현한 뒤 국왕의 새 정부구성 요청을 받아들이며 새 총리가 되었다. 취임 직후 국왕와 새 총리가 나란히 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 뉴시스

앤디 버넘 노동당 대표가 20일 버킹엄궁을 예방하고 찰스 3세 국왕을 알현한 뒤 국왕의 새 정부구성 요청을 받아들이며 새 총리가 되었다. 취임 직후 국왕와 새 총리가 나란히 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 뉴시스
“사람들에게 숨 쉴 공간을 주고 생활비에 대한 도움도 주겠다.”

앤디 버넘 영국 집권 노동당 대표(56)가 20일 제59대 총리에 취임했다. 그는 이날 런던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 국왕을 접견하고 정부 구성 요청을 수락했다. 버넘 총리는 사흘 전 노동당 특별 당대회에 단독 출마해 당 대표가 됐다. 의원내각제인 영국은 집권당 대표가 총리직을 수행한다.

버넘 총리는 국왕 접견 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의 총리 관저에서 취임 연설에 나섰다. 연단과 대본 없이 거리에 선 그는 “정치경제적으로 최근 40년 간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생활비 위기 해소와 지방 분권 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취임 후 첫 정책으로 “노숙(rough sleeping)을 종식시키겠다”며 이날 오전 노숙자 쉼터를 다녀왔다고 공개했다. 영국 더타임스는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에 대한 총리로서의 헌신을 강조한 행보라고 평가했다.

버넘 총리는 2016년 6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가 국민투표로 가결된 뒤 7번째 총리다. 브렉시트 후 저성장과 고물가가 고착화한데다 잦은 총리 교체로 정치사회적 혼란 또한 극심해진 만큼 그의 앞에도 각종 난제가 놓여있다. 경제난을 해소하고, 최근 급부상 중인 영국개혁당 등 극우 정당의 도전도 제어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의 관계 설정에도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 “40년간 최대 변화 가져올 것”

앤디 버넘 영국 신임 총리가 버킹엄궁 취임 후 곧장 총리관저로 직행해 직원, 당원 및 취재진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뉴시스

앤디 버넘 영국 신임 총리가 버킹엄궁 취임 후 곧장 총리관저로 직행해 직원, 당원 및 취재진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뉴시스
버넘 총리는 이날 영국 보수의 거두 마거릿 대처 전 총리(1979~1990년 집권)가 실시한 민영화 등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1980년대 영국은 몇 번 잘못된 방향으로 갔다. 정치 권력이 중앙집중화되고 경제력이 사유화되었다”고 비판했다. 이로 인한 각종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방 분권이 불가피하다며 “(중앙 정부에 집중된) 권력을 빼앗아 그들(지방 정부)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영국을 재산업화하기 위한 새로운 10년 계획을 제시하겠다”며 “정치적 경제적으로 지난 40년 동안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도 선언했다.

버넘 총리는 이미 지난달 29일 연설에서 수도 런던에 집중된 공공 인프라를 전국 곳곳으로 이관하고 총리 관저 및 중앙정부의 일부 기능 또한 자신의 정치적 거점인 맨체스터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국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 및 버스 요금을 인하하고 소득세 부가가치세 건강보험료 등을 인상하지 않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이를 위해 긴 대기 시간으로 악명 높은 국민보건서비스(NHS) 등의 대대적인 개혁도 추진하기로 했다. 전임자 키어 스타머 전 총리가 추진했던 모든 성인을 위한 정부 발행 디지털 신분증 계획은 폐기할 것으로 보인다.

주요 장관의 인선 또한 대부분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은 루시 파월 노동당 부대표가 부총리에, 셔바나 마무드 내무장관이 재무장관에 기용될 것으로 점쳤다. 에드 밀리밴드 에너지장관은 외교장관, 조너선 레이놀즈 노동당 원내총무는 기업통상부 장관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 美, 북해 유전 개발 압박 등 과제 산적

영국 스카이뉴스에 따르면 버넘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가장 먼저 통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가 북해 유전 개발을 거듭 촉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어떻게 대처할 지도 관심이다.

화석연료를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버넘 총리의 취임 전날인 19일 트루스소셜에 “북해 유전이 영국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만들어 줄 것”이라며 유전 개발을 종용했다.

버넘 총리는 2024년 총선의 노동당 공약인 ‘북해 유전의 신규 개발’은 불허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에너지 가격 급등 등을 의식해 기존 유전의 시추 확대는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에너지 가격 급등이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음을 인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현재의 지원 기조를 고수할 뜻을 밝혔다.

버넘 총리는 1970년 리버풀 인근 랭커셔주 에인트리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대 피츠윌리엄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2001년 하원의원에 뽑혔다. 고든 브라운 내각에서 문화·미디어·스포츠부, 보건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2017년 5월~올해 6월 맨체스터 광역권인 그레이터맨체스터의 3선 시장을 지냈다. 코로나19 펜데믹 당시 지방정부에 강력한 봉쇄 정책을 요구하면서도 충분한 재정 지원에 나서지 않은 보리스 존슨 전 총리를 비판하는 등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북부의 왕’으로 불렸다. 대학에서 만난 네덜란드인 부인과 세 자녀를 두고 있다.

그의 부친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 아들이 총리에 오른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다고 한다. 버넘 총리는 최근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나를) 자랑스러워하셨을 텐데 슬프다”고 토로했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
이지윤
김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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