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달레이에서 가르치던 학생 50명 중 절반 정도가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미얀마 제2 도시 만달레이, 최대 도시 양곤에서 한국어 교육기관 ‘코미스(KOMICE)’를 운영하고 있는 김유성 원장이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김 원장은 지난달 28일 규모 7.7의 강진이 만달레이를 강타할 때 양곤에 머물고 있어 화를 피했다. 하지만 만달레이에 있던 학생 상당수의 생사를 알 수 없다며 “지금 미얀마에선 가족, 이웃, 친구, 친척 중 누군가가 사망했거나 연락이 끊겨서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오랜 내전과 취약한 인프라로 구조 작업이나 구호품 전달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고 있다. 향후 수습이 더 문제”라고 우려했다.김 원장은 9년째 미얀마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교육기관 운영과 무료 강의(만달레이 외국어대)를 병행하고 있다. 대학생 시절 떠났던 미얀마 해외봉사에서 남을 도우며 큰 행복을 느낀 그는 석사 과정을 밟은 뒤 미얀마로 돌아갔다.
김 원장은 “순박하고 한국을 너무 좋아하는 미얀마 학생들을 가르치며 큰 보람을 느꼈지지만, 최근 코로나19 팬데믹과 정치 혼란을 겪으며 달라진 미얀마의 모습이 매우 낯설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지진 이후 코미스는 일주일간 모든 수업을 휴강하기로 했다. 강사진 전원이 만달레이에 있는 학생들에게 구호품을 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루에 한두차례씩 여진이 일어나다 보니, 우리 집이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이 커서 길거리에 돗자리나 박스를 깔고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식료품, 모기장, 쓰레기봉투, 생리대 등 기초적인 생필품도 구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만델레이에서는 지진으로 인해 단전 사태가 벌어져 수도까지 사실상 끊긴 상태다. 발전기를 돌릴 석유도 바닥을 보이고 있다. 이에 주민들은 태양광 발전기로 스마트폰만 충전해 겨우 외부와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언제 전기가 다시 들어올지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원래 만달레이에서 터를 잡았던 김 원장은 지난해 8월 내전이 만달레이 인근까지 확산하자 양곤으로 피난왔다. 한때 250여 명이었던 코미스 학생들도 상당수가 친척집이나 양곤 등으로 대피했다. 현재는 50여 명 만이 만달레이에 남아있다.
김 원장은 “한명 한명 전화를 돌렸는데, 절반 정도가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 단순히 통신이 복구되지 않은 것인지,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혼란스러운 국내 상황에 지진까지 겹쳐 학생들의 마음이 무너져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학생들은 굳세게 나아가고 있다.
이날 한 학생은 불과 사흘 전 대지진을 겪고, 이웃과 가족을 잃었지만 예정된 비자 인터뷰를 위해 만달레이에서 양곤까지 직접 운전대를 잡고 14시간을 내리 달려왔다. 한국 유학을 준비하는 그는 한번 잡힌 일정을 조정했다가는 자칫 최대 1년까지도 절차가 지연될 수 있어 이 같은 결단을 내린 것이다. 학생은 김 원장의 만류에도 일정을 마친 뒤 곧바로 만달레이로 돌아갔다. 그는 “가족이 있는 곳에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차에 올랐다고 한다.한국은 미얀마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국가다. 케이팝과 드라마 등 K-콘텐츠를 즐기며 자란 이들은 한국 문화에 별다른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에는 한국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도 크게 늘고 있으며, 한국어 실력을 살려 싱가포르 등 인근 국가에서의 취업을 꿈꾸는 이들도 많다.
“우리 학생들과 이야기해보니 국내 상황이 힘든 와중에 한국 드라마와 아이돌 노래가 큰 응원과 위로가 됐다고 해요. 저도 교육자로서 희망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아이들에게 너희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어요. 미얀마에 좋은 날이 꼭 다시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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