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라 춤비평가] ‘고상한 예술은 저리 가라!’
딴따라의 쇼로 감동을 주겠다는 안무가 김보람이 이끄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작심하고 판을 벌였다. 이들의 정체성이 담긴 ‘바디 콘서트’(2월 26일~3월 9일)는 2010년 초연 이후 지속적으로 전국 극장과 축제 현장(40개 도시, 60개 이상 공연장)을 넘어 해외 관객까지 매료시킨 작품이다. 10만 원이 넘는 티켓값 책정부터 1004석인 CJ토월극장에서 15회 장기 공연이라니 무용계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일반적인 춤 공연이 길어봐야 3일이고 5만 원이 넘지 않건만, 공적 지원금이나 후원 없이 올린 이번 공연은 김보람이 또 다른 춤 공연 문화를 선도하겠다는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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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콘서트’의 한 장면(사진=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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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콘서트’의 한 장면(사진=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
그간 김보람은 현대무용이 어렵다는 인식에 정면으로 맞서며 김보람식 연출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척했다. 초창기에는 동작과 리듬을 모조리 분절적으로 쪼갠 말초적인 감각에만 몰두해 보였으나, 그의 퓨전적인 구성력은 점차 김보람만의 독창적인 춤 언어가 됐다. 자신이 습득한 여러 장르의 몸쓰임 경험을 민첩성과 속도로 추출해 낸 ‘바디 콘서트’는 대중이 찾아가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대표작이 됐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춤사위를 무대라는 블렌더에 섞어 춤의 평등과 춤 어휘의 지평을 넓힌 작업이 된 셈이다. 말끔한 수트에 초록색 양말을 신고 수영모와 선글라스를 장착한 유별난 의상도 이젠 시그니처가 됐다. 콜드플레이나 이날치 밴드와 협업도 한몫했으나 이들은 낯선 현대무용의 대중적 보급에 누구보다 앞장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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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콘서트’의 한 장면(사진=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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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콘서트’의 한 장면(사진=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
15주년을 맞아 70분 풀버전으로 새롭게 구성된 공연은 도처에 가득한 춤과 음악으로 저마다 뽐을 낸다. 스트릿 계열의 춤부터 클래식 발레와 전통 춤사위까지 총집합했다. 바흐, 엠시 해머, 일렉트릭 펑크, 가요까지 무대는 국적과 시대, 장르를 한곳으로 수렴한다. 헨델의 아리아를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해석하고, 진도 아리랑 같은 구슬픈 음도 무겁지 않게 신식으로 환원해 낸다. 대놓고 가볍다가도 비장하고 장렬하게 숨을 몰아붙이는 춤꾼들의 퍼포먼스가 몰입감이 있다. 특히 11편으로 구성된 에피소드 중 ‘다잉’(Dying)은 죽음을 목도한 사라질 몸에 대한 해석이 돋보이며 흥취와 동시에 덧없음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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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콘서트’의 한 장면(사진=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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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콘서트’의 한 장면(사진=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
‘바디 콘서트’는 여전히 관객과 교감하려 땀과 숨을 객석으로 품어냈다. 여러 결의 음악 속에서 아우성치는 몸짓들은 여전히 재밌어 고개 짓으로 동조하게 된다. 불혹 즈음의 나이에도 온몸을 불사르는 춤꾼들과 함께 순간적인 해방의 시간을 공유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여성팀과 남성팀으로 조합하는 변화와 함께 새 멤버가 합류해도 동일한 메소드를 유지하며 15년이란 시간의 물줄기를 이어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양성과 협업이란 단어가 자연스러운 요즈음, 김보람이 15년 전부터 크로스오버를 실천한 결과물이 바로 ‘바디 콘서트’다.
퍽퍽한 무용계 문화에 흡수되기보단 자신만의 이상적인 춤 세계로 달려가는 김보람이 돈키호테 같다. 경제적으론 무모한 이번 도전이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모멘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