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신’ 최호종의 도전...“춤과 나는 서로를 성장시킨다” [인터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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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단 퇴단후 현대무용 탐구
지난해 ‘스테파’ 우승후 팬덤 커져
5월 무용수 단독 공연도 전석 매진
‘볼레로’ 독무 등 새로운 도전 계속
“끊임없이 탈피...상업·순수 투트랙”

완벽한 테크닉과 춤선으로 관객의 시선을 단번에 빼앗아 가는 무용수. 최호종(31)이 ‘무용수들의 무용수’로 불리는 이유엔 말이 더 필요 없다. 주역으로 활약하던 국립무용단에서 지난해 퇴단하고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이하 스테파)에 출연해 우승을 차지한 그가 5월 국내 무용수로선 이례적으로 자기 이름을 건 단독 공연 ‘최호종 퍼스트 무브노트 NOWHERE’를 서울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마쳤다. 하루에 총 2회 진행된 100분짜리 공연이 매진돼 국내 공연계에 불어온 ‘최호종 효과’도 재확인했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지난해 방송과 전국투어 갈라 콘서트가 이어지면서 빨리 새로운 작업을 하고 싶었다”며 “첫 단독 공연이라 염려도 많았지만 퀄리티도 놓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고 소회를 전했다. 무대 위 강렬한 카리스마와는 정반대로, 일상 속 폭넓은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최호종은 조용하고 차분했다. 그래도 큰 키와 맑은 눈빛에서 나오는 무용수의 아우라는 확실했다.

다음은 최호종과의 일문일답.

지난달 24일 서울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첫 단독 공연 ‘2025 퍼스트 무브노트 NOWHERE’를 열고 라벨 ‘볼레로’에 맞춰 독무를 선보이는 무용수 최호종. 사진제공=매니지먼트 낭만

지난달 24일 서울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첫 단독 공연 ‘2025 퍼스트 무브노트 NOWHERE’를 열고 라벨 ‘볼레로’에 맞춰 독무를 선보이는 무용수 최호종. 사진제공=매니지먼트 낭만

─연초까지 스테파 갈라 전국투어를 돌고 단독 공연에 올랐다. 만만찮은 일정이었을 텐데.

▶내 최장점이 체력이다. 며칠 이상 가만히 쉬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이전에도 여러 활동을 병행하며 무대에 계속 오르려고 노력했다. 이번 단독 콘서트는 내 염원을 담아낸 도전이었다. 아무래도 스테파 공연이 (같은 프로그램으로) 반복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빨리 새로운 걸 하고 싶기도 했다.

─창작을 병행하기엔 너무 강행군 아닌가.

▶한 예술가가 한순간에 많은 양의 아이디어, 작품을 뿜어낼 순 없다고 생각한다. 많이 쥐어짜야 하는 순간도 있다. 다행히 내겐 ‘총알’이 많았다. 평소에 생각해둔 것들, 안무노트에 기록해둔 것들이 있어서 창작도 쉬웠다. 내가 한국무용과 컨템포러리를 넘나들다 보니 (창작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됐을 것 같다. 대신 써버린 총알은 다시 쌓는 시간은 앞으로 필요하다.

─공연 중 라벨 ‘볼레로’ 독무 등을 새롭게 선보였다.

▶대중분들과 새로운 접점을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거라 무용이 어떤 장르와 결합할 수 있을지 영감을 모았다. 나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라는 무용수가 어떤 소재와 결합하는지도 중요했다. 이번 공연 중 ‘인어’는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에 나온 생명체(양서류 인간)에서 영감을 받아서 춤뿐 아니라 캐릭터 연기를 해봤다.

볼레로는 무용계에 너무나 기념비적이고 혁신적 작품이다. 올해 라벨의 탄생 150주년도 기념하고 싶어서 도전했는데, 내가 제일 크게 판 무덤이었다. 곡이 발레를 위해 쓰이기도 했고, 항상 스타 무용수들이 해온 곡인데, 군무도 있던 작품을 혼자 하다니… 여러 도마 위에 올라간 기분이었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 즐기면서 임했다. 사랑과 정열이 핵심인 작품인데, 그걸 결핍으로 해석해 쏟아냈다. 볼레로의 특성인 반복성과 고조되는 광기를 몸으로 표현했다. 기존의 볼레로에 아름답고도 야하고 강렬한 느낌이 있다면 내 볼레로엔 인간의 취약함과 처절함이 있다. 발레 작품이지만 아프리카 스텝, 민속적 소재도 도입했다.

무용수 최호종. 사진제공=매니지먼트 낭만

무용수 최호종. 사진제공=매니지먼트 낭만

─하루에 100분짜리 공연을 두 번 치렀다. 체력적 한계는 없었나.

▶처음 시도해보는 난이도라 연습을 많이 했다. 혼자서도 런스루(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해보는 총연습)를 반복하며 체력 분배에 신경을 많이 썼다. 혹여나 힘든 상황에서 퀄리티를 높이려고 하면 반드시 부상 염려가 뒤따르는데, 다행히 무사히 끝났다. 그래도 다음엔 하루 한 회 공연만 하려고 한다. (웃음)

─벌써 다음 단독 공연 계획도 있나?

▶구체적 계획은 아직이지만 기회만 주어진다면. 안 꺼낸 작품이 많고, 해보고 싶은 게 무궁무진하다. 다음에 또 단독 공연을 열게 된다면 더 재밌게, 더 잘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공연을 열어보니 순수예술의 대중 예술화에 대한 답이 보이던가.

▶그 답을 명확하게 찾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 한 명의 개인이 그걸 해낼 수 있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그저 한 발짝 내디뎠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엄청난 큰 변화를 원한다기보다 이런 형식의 공연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 그걸 이렇게 사랑해주시는 분들도 계신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앞으로도 욕심부리지 않고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싶다.

─올해 1분기 현대무용 분야 티켓 판매액이 전년 동기 대비 2507% 증가(공연예술통합전산망)하는 등 무용계 전체에도 ‘스테파 효과’가 나타났다. ‘최호종 효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의 노력이다. 제 이름이 그렇게 언급되거나 많은 분이 무용에 관심 가져 주시는 것에 감사하다. 이런 시기일수록 무용계, 무대에 오르는 분들이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렷하게 깨어있지 않으면 관객분들이 공연장에 찾아오는 용기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된다. 그거야 말로 독이 될 수도 있다. 관객들의 소중한 발걸음을 기억하면서 겸허히 생각하려고 한다.

지난달 24일 서울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첫 단독 공연 ‘2025 퍼스트 무브노트 NOWHERE’를 열고 엠넷 ‘스테이지 파이터’ 방송 중 미션 안무였던 ‘악몽’을 선보이는 무용수 최호종.  사진제공=매니지먼트 낭만

지난달 24일 서울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첫 단독 공연 ‘2025 퍼스트 무브노트 NOWHERE’를 열고 엠넷 ‘스테이지 파이터’ 방송 중 미션 안무였던 ‘악몽’을 선보이는 무용수 최호종. 사진제공=매니지먼트 낭만

─대중의 관심이 커지고 팬덤이 생긴 게 예술가 최호종에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스테파 출연 전, 지난해 국립무용단에서 나온 후에 내 예술관을 깊이 관찰하고 디렉터나 안무가로서의 영역으로 나아가려고 생각했다. 출연 이후 명확하게 생긴 방향성이 있다면, ‘투트랙’이다. 소속사를 통해 대중과 무용의 접점을 늘리는 작업을 계속하고, 내가 부예술감독을 맡은 무용단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ubverted Anatomical Landscape·SAL)을 통해서는 순수 예술 작업을 계속하려고 한다.

─8월엔 CJ ENM의 K팝 콘서트 케이콘LA도 출연하는데.

▶출연은 확정했지만 어떤 무대를 선보일지는 아직 논의 중이다.

─상업적 무대일수록 이미지 소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는 없나.

▶투트랙에 대한 방향성은 명확히 가져가려 한다. 둘 다 놓치고 싶지 않다. 둘 중 한쪽에서 ‘이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딱히 하지 않는다. 순수 예술 쪽에선 내 표현을 가감 없이 하면서 진정성을 갖고 나아갈 거고, 대중과의 접점이나 상업적인 부분에서도 공수 전환은 확실히 할 거다. 내 본질이나 정체성이 변할 것 같지는 않다.

─예술가로서 항상 탈피하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끊임없는 변화와 도전의 원동력은 뭔가.

▶피하고 싶은 것이 분명하다. 정체돼 있거나 고여 있고 싶지 않다. 심지어 내가 오늘 믿는 것들이 당장 내일의 착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나라는 예술가는 깨어 있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명이 있다. 자연스럽게 계속 거듭나기 위한 몸부림을 하게 된다.

─몸부림 끝에 이루고 싶은 목표, 가 닿고 싶은 목적지가 있나.

▶맹목적인 성취에 대한 갈망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명확한 목표는 없다. 어떻게 되겠다 하는 것조차 오늘의 내가 하는 착각일 수 있다. 그저 나이에 맞는 경험이 자연스럽게 무대에서 춤으로 표현된다고 믿는다. 그 중심을 잃지 않는 게 목표라면 목표다.

─영감을 얻기 위해선 어떤 경험을 하나.

▶글을 많이 읽고 쓴다. 타이핑의 힘이 크더라. 맨날 춤추는 걸 상상하며 지내니까 일상에서 뭔가 떠오르면 늘 스마트폰에 받아 적는다. 어떤 소재나 글귀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고, 몸을 움직이는 메커니즘에 관한 문장을 발견할 수도 있다. 배고프면 밥을 먹듯이 그때의 관심사에 관한 마음의 양식을 읽는 편이다.

─무용을 배우기 전 고등학교 때 극단 생활을 했다. 그 경험이 텍스트로 무대를 이해하는 데 영향을 줬을 수도 있겠다.

▶극단에서 캐릭터를 분석하고 서사를 빌드업하는 걸 배웠다. 무용을 다루는 데도 도움이 된다. 감각적으로 그 영역을 다루는 분들도 있지만 난 텍스트에서 영감을 받다 보니, 한번 글로 정리한 후 몸으로 표현하는 편이다.

─지금의 관심사는.

▶근래에 다루고 싶었던 ‘고통’이란 주제로 7월 살(SAL) 공연에서 ‘버진 소일’을 안무한다. 단순히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권력에 점유된 비인간성, 학살, 인체 실험 등을 다룬다. 이런 것에서 비롯된 고통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점유하는지, 인간이 인간에게 변명할 여지가 있는지 이야기를 던지는 작품이다. 고통에서 비롯되고 고통에서 끝나지만 그 안에서 창조성이 나온다.

무용수 최호종. 사진제공=매니지먼트 낭만

무용수 최호종. 사진제공=매니지먼트 낭만

─남들보다 늦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무용을 배우고 열등감을 느끼면서 춤 때문에 괴로운 적도 있었다. 이후 기량이 늘며 동아국제무용콩쿠르 금상을 받고 국립무용단에 최연소 입단하기까지, 춤으로 한계를 극복하고 치유한 경험이 있다.

▶몸이 열리면 마음도 열린다는 말이 있듯이, 몸과 마음에는 하나의 통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굉장히 내성적이고 소극적이고 자존감 낮은 사람이었는데, 몸을 통해서, 무용을 하면서 마음도 성숙해졌다. 무용수는 몸을 깨부숴야 하는 직업이고 몸을 극한으로 다룬다. 춤과 내가 서로의 성장을 돕는 관계가 된 것 같다.

─여전히 춤은 행복과 치유의 과정인가.

▶누구에게나 슬럼프는 있다. 2년 전 말도 안 되는 스케줄을 소화하며 밥도 잘 안 먹던 시기에 횡문근 융해증을 앓았다. 근육이 5kg 녹아내리고 난 뒤에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감각’이 찾아왔다. 그 병을 앓기 전엔 분명 춤을 통해 자유에 가까워졌다는 만능감이 몸에 깃들었는데, 병을 앓고 난 뒤로 싹 사라졌다. 착각이었던 셈이다.

한두 달 만에 회복은 했지만, 아무리 다시 운동하고 춤을 춰도 만능감이 돌아오진 않았다. 정신적으로도 트라우마였다. 한동안 그걸 되찾으려고 애썼다. 이젠 내려놨다. 과거의 감각을 좇으려 하지 말고, 지금 내 몸에서 방향성을 제시하며 직접 체험하는 존재가 되겠다고 생각하면서다. 슬럼프가 와도 이렇게 매번 극복하는 방법이 생기고, 깨달음과 발상의 전환을 얻는다. 이런 과정이 행복하다.

─요즘도 일정이 극악해 보이는데, 건강 관리를 잘해야 하겠다.

▶지금은 다이어트도 안 하고 잘 먹으면서 운동하고 관리하고 있다.

─쉴 땐 뭘 하나.

▶몸을 쓰는 직업인지라 가만히 누워서 하는 게 좋다. 또 너무 일벌레라 뇌의 화제를 전환할 게 필요해서 게임을 하는 편이다. 동아무용콩쿠르 금상(2016년) 받았던 무대 30분 전에도 게임하고 있었다. 긴장도 풀리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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