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공항 방위각시설 개선
기초대 지하화·둔덕경사 조정
부러지기 쉬운 구조물로 변경
안전구역 국제 기준만큼 연장
제주항공 사고원인 미궁 속
제조사 보잉 책임론도 나와
미국서 책임소송 제기 추진
정부가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당시 인명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된 ‘콘크리트 둔덕’을 비롯한 전국 공항 위험 시설을 대대적으로 개선한다. 사고 재발 방지 대책은 일부 속도를 내고 있지만 사고 원인 조사는 여전히 의문점을 남기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2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방위각 시설 등 공항 시설 안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앞서 전국 14개 공항에서 특별안전점검을 실시한 결과 7곳에서 위험 시설물이 확인됐다. 로컬라이저를 콘크리트 기초대를 통해 단단하게 지지했는데 오버런(이착륙 시 활주로를 벗어나는 상황) 상황에서 항공기가 이에 부딪혀 충돌할 위험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국토부는 콘크리트 기초대의 높이가 낮은 광주공항(0.7m)의 경우 로컬라이저 주변으로 흙을 쌓아 땅을 평평하게 만들고 기초대를 지하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포항경주공항(0.7m), 김해국제공항(0.8~0.9m), 사천공항(0.6m)도 비슷한 방식이 추진된다. 둔덕의 높이가 4m에 달하는 여수공항은 콘크리트 둔덕을 제거하고 시설을 부러지기 쉬운 구조물로 다시 설치하는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 개선 공사는 늦어도 연내 완료를 목표로 한다. 사업비는 최대 2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종단안전구역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권고하는 최대 수준인 240m로 연장한다. 공항 용지 내에서 충분한 안전구역 확보가 어렵다면 활주로이탈방지시설(EMAS)을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콘크리트 블록 등을 깔아 지면과의 마찰력을 높여 항공기 오버런을 최소화할 수 있는 EMAS는 미국, 중국, 일본, 대만 등에 설치돼 있지만 국내에 도입된 사례는 없다. 다만 EMAS를 설치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아 실제 도입 과정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아울러 국토부는 공항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를 손질하기로 했다. 국내외 규정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올해 상반기 내 개정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공사 시설을 상시 감독할 수 있도록 전담팀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처럼 공항의 안전성을 끌어올리는 개선 방안은 진행되고 있지만 제주항공 사고 원인을 밝히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주항공 사고기가 충돌하기 직전 4분간 기록이 저장되지 않아 진상 규명에 지연이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사고기가 셧다운 상태에 빠지면서 블랙박스도 기록이 중단됐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사고기의 블랙박스에 보조배터리(RIPS)가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당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은 블랙박스에 RIPS를 옵션으로 제공했는데 제주항공 사고기의 리스사가 이를 구매하지 않았다.
앞서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블랙박스인 비행기록장치(FDR)와 조종실 음성기록장치(CVR)를 모두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에 보냈다. FDR은 커넥터가 소실돼 국내에서 자료 추출이 어려웠고, CVR은 한국에서 자료 추출이 끝났지만 교차 검증을 통한 신뢰성 확보를 위해 함께 미국으로 이송됐다.
일각에서는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의 잘못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종선 법률사무소 나루 변호사는 보잉 등을 상대로 기체 결함에 대한 ‘제조물 책임소송’을 미국에서 제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 변호사는 2013년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사고에서 사고 탑승객들을 대리해 소송을 진행한 바 있다.
미국의 항공기 인증기준에 따르면 대형 조류가 흡입됐을 때 엔진에서 화재가 일어나지 않아야 하고, 중형 조류 7마리가 동시에 흡입되더라도 엔진이 갑자기 꺼지지 않고 최소한의 엔진 추진력이 20분까지 유지돼야 한다. 소형 조류는 16마리까지 버텨야 한다. 이번 사고에서는 조류 충돌로 엔진 2개의 작동이 모두 중단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기가 조류 흡입을 견뎌내는 저항력을 갖추지 못한 것은 결함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게 하 변호사의 주장이다.
하 변호사는 “에어버스320은 소형 풍력 터빈을 통해 백업 전원을 확보하는 등 추가 안전판을 제공하는 강화된 중복성을 설계에 반영한 반면 보잉은 이를 누락한 설계 결함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