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쓰는 용적률 다른 동네에 판다[부동산 빨간펜]

19 hours ago 2

서울시 ‘용적 이양제’ 도입 추진
북촌, 풍납토성 인근 등 유력
뉴욕-도쿄처럼 고밀 개발 가능
지역 균형 발전 저해 우려도

이르면 내년 서울에서 용적률(땅 면적 대비 건물 바닥 면적의 합)을 사고파는 일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서울시가 지난달 건물을 높게 짓지 못해 남는 용적률을 거래하는 ‘용적 이양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 일본 등에선 유사한 제도가 시행 중인데요. 국내 도입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용적률을 누가 어떻게 사고판다는 건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이번 주 부동산 빨간펜에서는 용적 이양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Q. 용적 이양제는 어떤 제도인가요?

“제도를 이해하려면 먼저 용적률 개념부터 짚어야 합니다. 용적률은 건물 가치와 개발 사업의 수익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땅 크기가 같아도 용적률이 높으면 건물을 더 높게 지을 수 있습니다. 국토계획법 시행령에는 난개발을 막고자 땅의 용도별 용적률 상한을 정하고 있습니다. 개별 땅의 용적률은 인허가 권한을 가진 지방자치단체가 법적 상한 이내에서 정합니다.

용적 이양제는 말 그대로 어느 한 지역의 용적률을 다른 지역으로 넘기는 제도입니다. 물론 공짜로 넘기는 건 아닙니다. 용적률을 건네받은 땅 주인은 건물을 더 높게 지을 수 있으니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용적률이 1000%까지 가능한 지역에서 다른 규제 때문에 용적률을 400%만 쓰고 있다면 나머지 600%를 다른 지역에 파는 거죠.”

Q. 지자체가 용적률 규제를 완화하면 될 텐데 낯선 제도를 왜 도입하는 건가요?

“지자체가 법적 상한까지 용적률을 높여주려고 해도 다른 법률에 막혀 불가능한 지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재 보호구역이나 공항 인근 지역이 대표적입니다. 문화재 보호구역 인근에는 ‘앙각 규제’로 불리는 건물 높이 규제가 있습니다. 서울 숭례문이나 풍납토성 등 문화재 주변에 고층 건물을 짓지 못하는 주된 이유죠. 공항 인근에도 항공기 운항에 지장이 없도록 엄격한 건물 높이 규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용적 이양제가 도입되면 이처럼 법적 상한 용적률까지 건물을 올리지 못한 땅 주인의 재산상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남는 용적률을 팔아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동시에 역세권, 도심처럼 고밀 개발이 필요한 지역은 용적률을 추가로 확보해 사업성을 더 높일 수 있습니다. 이론상으로 용적률을 파는 지역과 사는 지역 모두에게 이득인 제도죠. 지자체는 용적 이양제를 활용해 규제가 필요한 지역은 보존하면서 개발이 필요한 지역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즉, 보존과 개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셈이죠.” Q. 제도가 시행되면 서울 전역에서 용적률을 사고팔 수 있게 되나요?

“그건 아닙니다. 서울시는 시가 지정한 지역에만 용적 이양제를 시행할 계획입니다. 용적률을 팔 수 있는 지역이 가장 큰 관심사일 텐데요. 서울시는 제도 초기인 만큼 문화재 인근처럼 앞으로도 규제 완화가 어려운 곳을 대상지로 정한다는 방침입니다. 유력 대상지로는 서울 중구 숭례문 일대, 종로구 북촌한옥마을, 송파구 풍납토성 주변 등이 거론됩니다.”

Q. 용적률 가격은 어떻게 정하나요?

“서울시에 따르면 용적률 가격은 거래 당사자가 합의해서 정합니다. 다만 원활한 거래를 위해 서울시가 가격을 정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공시지가와 감정평가액을 활용하되, 용적률을 파는 지역과 사는 지역의 땅값 차이를 고려해서 가격을 매기도록 할 방침입니다.”

Q. 해외에선 용적 이양제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나요?

“미국에는 ‘개발권 양도제(TDR)’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뉴욕 맨해튼 철도 차량기지 용지에 들어선 ‘허드슨야드’가 TDR 제도를 통해 고밀 개발한 대표 사례입니다. 주변 건물의 용적률을 넘겨받아 용적률을 기존 1000%에서 3200%까지 높였습니다. 일본은 미국과 달리 특정 지역에서만 용적률을 사고팔 수 있습니다. 도쿄역은 문화재로 지정돼 고밀 개발이 불가능한데요. 신마루노우치 빌딩, 그랑도쿄 등 도쿄역 인근 건물 6곳이 도쿄역의 남는 용적률을 사들여 고층 건물로 지어졌습니다.”

Q. 국내에 첫 용적 이양제 사업지는 언제 나올까요?

“서울시는 국토교통부와 협의를 거쳐 연내 제도 시행 근거를 담은 ‘용적 이양제 운영 조례’(가칭) 제정안을 입법 예고하는 게 목표입니다. 이후 가장 먼저 제도를 시행할 대상지를 ‘용적 이양 선도사업지’로 지정할 계획입니다. 규제 완화가 어렵고, 노후도가 심하고, 선도사업 의의가 큰 지역을 대상으로 주민 의사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서 선정할 방침입니다. 조례 제정이 연내에 완료된다면 첫 선도사업지는 이르면 내년 중 정해질 수 있습니다.”

Q. 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게 최우선 과제입니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제도 운영을 위해서는 상위법인 법령 개정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조례 제정만으로도 제도를 시행할 순 있지만 법적 상한 이내로만 용적률을 추가한다면 제도 도입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서울시도 법령 개정 권한을 가진 국토부와 협의를 거친 뒤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제도가 지역 간 균형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도 해소해야 합니다. 또 용적률 거래로 생기는 수익에 대한 세금은 어떻게 부과할지도 향후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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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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