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정 동국대 법학과 특임교수·전 한국상사법학회장] 최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을 보면 안쓰럽다. 내용이 부실한 법이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바로 너였다’라는 누명을 쓰더니 문명국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기이한 모습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개정 상법은 입법이유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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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정 동국대 법학과 특임교수 |
첫째, 신설 조항을 보면 기업가치나 주가 하락의 책임이 지배주주나 경영자에게 있다고 전제했다. 이게 과학적인 진단인지 의문이다. 진단이 어설프니 처방이 바를 수 없다.
둘째, 상법에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규정하는 입법례는 없다. 일부에서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을 예로 드나 이는 정관에 이사의 면책 금지 사유로 충실의무 위반을 기재할 수 있다는 내용이며 판례도 회사와 총주주의 이익이 다르지 않다는 관점에서 예외적으로만 주주보호의무를 인정하고 있다. 일본은 해석과 지침·판례로 주주보호를 인정하고 있으나 이것을 법상 충실의무의 내용으로 보기는 어렵다.
전자주주총회를 의무화하는 사례도 주요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주주총회가 관객 없는 극장처럼 형해화한 지 오래고 주주권리 강화는 주총장 밖에서도 다양하게 행사할 수 있음을 인정했으면 한다. 미국은 오히려 경영자주의를 강화하는 추세다.
셋째, 개정 상법은 법률 요건이 모호한 선언적 규정으로 보인다. 법률에서는 적극 피해야 할 정의하기 어려운 용어를 쓰고 있다. 주주들은 배당, 등기임원, 전매차익, 장기이익과 단기이익 등 목표가 다르다. 기후변화가 중요하니 탄소배출사업을 접으라는 주주제안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총주주’는 누구인가. 누구에게 맞추는 것이 ‘충실’한 것인가. 이해관계자주의는 설 자리가 없는가. 2011년 신설한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조항에 이어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의 실효성은 더 의심스럽다. 함부로 유권 해석을 할 수도 없다. 분쟁을 겪으며 법원이 판결을 쌓아가는 동안 기업의 에너지와 도전기회는 소진돼 갈 것이다.
넷째, 분쟁이 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근거 없는 낙관론이다. ‘의무’를 이행하면 좋지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해석하지 않는 한 분쟁은 늘고 사회적 비용은 커진다. 평판가치의 하락은 결국 주주의 손실로 이어진다.
다섯째, 개정을 서두르기에 앞서 따로 할 일이 있었다. 일에는 선후 경중이 있다. 먼저 할 일은 배임죄 같은 과중한 책임을 합리적으로 정비하는 입법적 조치가 포함된다. 특히 일부에서 개정 상법의 보완조치로 특별배임죄 폐지를 주장하나 실무상으로는 이미 전혀 활용되지 않는 사문화된 조항이라 폐지해도 아무런 실익이 없다.
배임 여부를 묻기 위해서는 경영 판단의 원칙의 적용 요건도 보다 명확해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결과책임을 묻는 것보다 기업을 격려하는 일이다. 늘 위험과 기회의 기로에 있는 기업이 도전과 혁신을 꺼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사가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지더라도 임원배상책임(D&O)보험으로 해결된다는 보도도 봤다. 이것 또한 무지한 말이다. 이사의 과중한 책임이 전가되면 주식회사인 보험회사는 면책조항을 늘리거나 보험료를 올릴 것이다. 지금 선진국에서 그러한 조짐이 강하다.
여섯째, 굳이 주주보호가 상법개정의 이유라면 법 제1조(목적)에 ‘투자자보호’를 명시하고 있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는 게 옳다. 그러나 거기서도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신설해서는 안 된다. 주주를 보호하는 데 보다 실효성 있는 내용의 구체적·기술적 제도를 발굴해 개정에 반영할 일이다.
법률제정권은 국회에 있다. 헌법은 다수결원리를 승인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 정신은 입법 과정에서 인내심 있는 토론과 설득, 합의를 바란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내국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증시의 매력은 ‘기업의 혁신’이다. 그동안 한국 기업이 모두 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국회가 나서서 기업의 혁신과 도전을 법률위험으로 소진해서는 안 된다.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