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장
미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메트)에서 15년 넘게 한국 미술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한국 미술을 알리는 데 앞장섰던 그가, 이젠 미 서부의 관문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시아 미술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습니다. 최근 샌프란시스코 시장과 함께 한국을 찾은 이 관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메트 亞전시실 ‘마지막 방’
이 관장의 예술적 뿌리와 안목은 어린 시절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머물렀던 해외 생활에서 싹텄습니다. 한국을 잘 모르던 나라들에서 살았던 기억은 지금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었습니다.“1980년대 초반 영국에 살았을 때입니다. 당시 한국 정부가 ‘한국 미술 5000년’이란 대규모 순회전을 기획했고, 공보처 소속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는 이 전시를 홍보하고 외국 기자를 상대했어요. 1950년대 이후 처음으로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행사였지만 쉽지 않았죠.”
당시 미디어를 통해 전해진 한국의 이미지는 독재 정권과 이에 맞서는 최루탄 가스 가득한 시위대가 주를 이뤘고, 이런 나라의 문화에 호기심을 갖고 귀 기울이는 매체는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컬럼비아대에서 미술사 박사 과정을 밟던 중 재직하게 된 메트의 사정도 비슷했습니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 한국실은 가장 나중에 생겼습니다. 이 관장은 “중국, 일본, 인도, 심지어 동남아시아관까지 자리를 차지한 뒤 생긴 작은 방이 한국실이었다”고 했습니다. “한국실이 너무 작다며 실망하는 관객도 있었죠. 그런데 당시에는 뉴욕 중심지에서 한국 문화를 보여준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었거든요. 거기에 자부심을 갖고 사이즈가 아니라 임팩트가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한국 정부와 국립 기관, 또 리움 같은 사립 미술관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이 관장은 메트에서 가장 소중했던 경험으로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과 협력해 기획한 ‘황금의 나라, 신라’(2013년) 전시를 열었던 때를 꼽았습니다. “이 전시를 보고 꼭 한국에 가보고 싶다, 경주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척 보람을 느꼈다고 하면서요.
변방에서 매력적 주체로
2018년부터 하버드대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로 근무하다 지난해 한국계 큐레이터로는 처음으로 AAM 관장이 된 그는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예전엔 한국 문화를 알리려 애썼는데, 이제는 저보다 더 한국을 잘 아는 현지인을 만나니까요. 한국 대중문화가 단순히 인지도가 높은 수준이 아니라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변방의 시각에 머물러 ‘아시아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려 노력하기보다는, 아시아 예술과 문화가 이미 글로벌 문화의 중심에 있다는 시각으로 미술관을 이끌겠다는 것이 이 관장의 비전입니다.
“아시아 문화는 이미 세계 문화의 주체입니다. 그 중요성이 무엇이고 앞으로 세계 문화를 어떤 방향으로 주도해 나가게 될 것인지 그려보는 것이 미술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이 관장의 시각은 이미 현실이기도 합니다. 올해 가을 샌프란시스코에선 방탄소년단(BTS) 멤버 RM의 소장품을 소개하는 특별전 ‘RM X SFMOMA’(10월·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와 ‘하종현: 회고전’(9월·AAM) 등 한국 관련 전시가 연달아 개막합니다. 이는 한국을 통해 아시아 문화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계기라고 이 관장은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어리어의 아시아계 인구가 무려 40%”라며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의 서부인 동시에 아시아의 동부”라고 정의했죠.
“샌프란시스코는 아시아 이민 역사가 가장 깊은 곳이자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미국을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이곳의 아시아미술관은 특정 국가의 박물관이 아니라 지역 사회의 모든 이들이 모이는 ‘문화적 허브’가 돼야 하죠. 지역 사람들이 미술관에 와서 서로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자기만의 정체성을 찾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합니다.”AAM 소장품 중에는 고미술 비중이 크지만, 앞으로는 ‘아시아’라는 큰 카테고리와 그 속에서의 교류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라고도 귀띔했습니다. 이를 위해 동시대 미술품 소장을 늘리고 관련 연구와 전시도 보강할 것으로 보입니다.
“동남아를 비롯해 아시아의 젊은 작가들도 정말 역동적입니다. 전통을 재해석하는 방식부터 기술과 예술을 접목하는 감각이 미래 지향적이에요. 이런 것을 토대로 미술관은 전통문화와 동시대의 역동성이 교차하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한국만의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적 맥락에서 아시아 문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과거의 유물을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라 다양한 관객이 와서 자기만의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는 공간, 이를 통해 아시아의 새로운 문화를 배양하는 거대한 실험실이자 광장으로 거듭나기 위해 AAM은 이 관장과 함께 꿈틀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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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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