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영지 김형일 기자] “집값을 2억~3억원까지 올리던 집주인들이 하루아침에 가격을 깎으면서 이번 주 안에 팔아달라는데 지켜보겠다는 매수자들을 설득하기 쉽지 않아요.”(송파구 A중개업소 대표)
강남3구와 용산구에 대한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 확대 재지정이 오는 24일 본격 시행될 예정인 가운데 20일 규제 지역 내 위치한 중개업소들은 마치 시한에 쫓기는 듯한 풍경이 연출됐다. 문의 전화가 빚발치는 와중 매도자인 집주인들은 조금이라도 덜 낮춘 가격에 빨리 매도하려, 매수자들은 일단 좀 지켜보겠다며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20일 송파구 잠실동에서 영업 중인 부동산 중개업소 전경 (사진=최영지기자)
이날 직접 찾은 서초구 반포동 한 중개업소 대표는 “반포동은 신반포4차, 반포미도 아파트를 중심으로 실거주보다 갭투자 수요가 많은 곳”이라며 “하루 아침에 규제지역으로 지정된 것은 충격적”이라고 했다. 이어 “어제오늘 갭투자가 언제까지 가능한지를 묻는 문의전화도 있었지만 앞으로 거래하려면 구청 허가가 필요해진 만큼 고객들 반응은 영 미지근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강남3구와 용산구 소재 아파트 단지 전체에 대해 토허제가 적용되는 만큼 이들 지역에 아파트를 매매하기 위해선 자금출처가 명확해야 하고 거래 내용을 구청에 확인받아야 한다. 그 뿐 아니라 실거주 의무가 생겨 갭투자(전세끼고 매매)가 불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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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송파구 잠실동 대단지 잠실레이크팰리스 전경. (사진=최영지기자) |
그만큼 이 일대 아파트를 팔려는 집주인(매도자)과 중개업소는 마음이 급해졌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아파트 실거래가)에 따르면 송파구의 아파트 매물은 19일 하루 만에 120건이 늘어났으며 강남구(100건), 서초구(90건), 용산구(30건)도 매물이 늘었다.
이날 혼란에 빠진 것은 강남3구와 용산구 중개업소만이 아니었다. 아파트 담보대출을 취급하는 은행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울 강남의 한 은행 영업점에서 근무 중인 B씨는 이날 대출 중단 여부를 묻는 고객들의 전화를 받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B씨는 “대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뉴스가 떴지만 본점에서 관련 공문이 내려오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19일 정부는 토허제 확대 지정을 발표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가계대출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다주택자에 대한 신규 주택담보대출 제한, 갭투자 방지를 위한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임대인이 주택 매수 과정에서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활용해 잔금을 치르고 소유권을 이전받는 경우) 제한이 핵심이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우리은행은 토허제 적용 아파트를 구입하려는 1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한 담보대출을 중단할 예정이다. SC제일은행도 26일부터 2주택 이상 보유 차주에 대한 생활안정 자금 대출 신청을 제한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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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초구 반포동 반도미도아파트 전경. (사진=최영지기자) |
“부동산 시장 읽을 수 있는 사람에 정부에 있나”
서울시가 토허제 해제 35일 만에 강남3구와 용산구로 규제를 확대하는 식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집주인들과 공인중개사들은 분개하며 규제 효과를 의심했다.
강남구 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정책이 너무 오락가락하고 4개 자치구에 대해 규제를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부동산 시장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정부에 있긴 한지 의심”이라고 거센 지적을 이어갔다. 이어 “오히려 강남3구와 용산구를 규제하겠다는 게 이 지역 집값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시그널로 읽혀 집값 상승의 자극제가 되고 있다”며 “당장 강동·성동·광진구 등 강남 인근 지역에서 매수가 늘 것이며 결국 이 지역에서 주택을 파는 사람은 상급지인 강남으로 오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문가들도 이번 토허제 재지정이 악수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규제를 피한 다른 지역으로 갭투자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어서다. 장소희 신한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 부동산팀 수석은 “토허구역 확대지정에 따라 거래량은 다소 줄어들겠으나 가격 상승세는 꺾이지 않을 것”이라며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가 몰려있는 지역인 강남 3구와 용산에 대한 수요는 토허구역 지정 여부와 무관하게 지속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토허제 해제 후 한 달 만에 다시 규제를 강화한 것은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시장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라며 “7월 예정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규제, 금리 인하 가능성, 정치적 변수 등과 맞물려 시장 혼란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