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귀족 가문의 몰락...골로블료프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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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러시아 농노제는 이미 쇠퇴하고 있었다. 그러나 골로블료프 가문은 상당히 번영 중이다. 이 영지 확장의 주인공은 단호하고 완고한 성격의 독재적인 지주 아리나 페트로브나다. 그녀의 남편 블라디미르는 천성이 부주의하고 게으르다. 그는 바르코프의 운율을 읊조리고 늘 술에 취해있다. 그는 아내를 ‘마녀’라 부른다. 아리나 페트로브나는 오로지 경제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 사이에 아들 셋과 딸 하나가 있는데 그녀는 이들을 위하고 돌본다면서도 실은 큰 짐으로 여긴다.

이 귀족 가문의 몰락과 죽음에 관한 연대기가 삼대에 걸쳐 펼쳐진다. 농노제 폐지(1861) 전야와 그 이후의 러시아에 대한 무자비한 묘사는 전에 없던 방식으로 펼쳐진다. 『골로블료프가의 사람들』은 이후 예브게니 자먀틴의 『어느 시골 이야기』(1912), 막심 고리키의 『어린 시절』(1913) 등 많은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골로블료프 가문의 이야기는 살티코프 셰드린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아리나 페트로브나의 이미지는 살티코프 셰드린의 어머니 올가 미하일로브나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녀는 실제로 불복종을 용납하지 않는 횡포한 여성이었다고 한다. 상속 문제로 소송에 연루되었던 형 드미트리는 소설 속 포르피리로 형상화되었다.

러시아 작가, 살티코프 셰드린 초상(1879)

러시아 작가, 살티코프 셰드린 초상(1879)

모든 이에게 내려앉은 우울

장남 스테판은 대학을 졸업하고 관료로 일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아리나 페트로브나는 그를 위해 모스크바에 집을 샀으나 스테판은 그 집을 순식간에 탕진해 버린다. 나이 사십에 무일푼이 된 그는 영지 골로블료보로 돌아온다. 아무 쓸모 없는 자식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 아리나 페트로브나는 다른 아들들이 참여하는 가족회의를 통해 일을 결정함으로써 부담을 덜고 싶어 한다. 법정을 연상시키는 (이때의 긴장감은 확실히 도스토옙스키에 필적한다) 회의에서 그래도 장남이니 볼로그다 영지를 주려는 아리나 페트로브나를 차남 포르피리는 낭비일 뿐이라며 만류한다. 결국 스테판은 골로블료보 한쪽 구석에 유폐되어 궁핍하게 지내다 끝내 죽음을 맞는다.

딸 안나는 경기병과 도망쳐 부모의 허락 없이 결혼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다. 아리나 페트로브나는 딸이 남긴 쌍둥이 딸 안닌카와 류빈카를 맡아 돌본다. 차남 포르피리는 이름보다는 별명 ‘유다’로 불린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어머니의 비위를 맞추며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헌신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남달랐다. 막내아들 파벨은 독신으로 말이 별로 없고 매사에 무관심하며 음주벽이 있다.

10년이 지나고 한때 횡포하고 자신감이 넘쳤던 아리나 페트로브나는 막내아들 파벨 집에서 죽은 듯이 살아간다. 남편이 죽자 그녀는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누었는데 골로블료보를 비롯한 가장 좋은 재산은 포르피리에게, 그보다 못한 영지 두브로비노는 파벨에게 주었다. 파벨은 어머니와 고아 조카들을 받아들이는 대신 집안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한다. 집안일은 가정부 울리투쉬카가 맡았다.

파벨 자신도 술을 좋아하는 성향 때문에 곧 병에 걸린다. 동생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포르피리는 즉시 두브로비노로 가서 주인 행세를 하며 재산을 셈한다. 파벨이 죽은 후 ‘유다’는 두브로비노를 삼키고, 흡혈귀 같은 둘째 아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았던 아리나 페트로브나는 딸 안나에게 주었으나 이제는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영지 포고렐카로 손녀들을 데리고 이사한다.

쿠크리니츠이가 그린 삽화 (1939) / 사진출처. © shelf 웹사이트

쿠크리니츠이가 그린 삽화 (1939) / 사진출처. © shelf 웹사이트

총체적 외로움

얼마 지나지 않아 손녀들, 즉 안닌카와 류빈카는 시골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고 모스크바로 떠났고, 곧 하리코프로 가서 배우가 되어 극장 무대에 올랐다(고 편지에 써 보낸다). 혼자 남겨진 아리나 페트로브나는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때때로 골로블료보를 방문해 그토록 미워했던 유다와 다시 시간을 보낸다. 악에 받쳐 재산 그러모으기에만 급급했던 포르피리도 쇠약해졌다.

포르피리의 장남 블라디미르는 자살했고, 차남 표트르는 도박에 빠져 공금을 횡령했다. 표트르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나 포르피리는 역시 매몰차게 거절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를 목격한 아리나 페트로브나는 이 사건을 충격으로 여겼고 (장남 스테판의 죽음이 그녀의 양심을 깨웠다) 유다를 저주하고는 오래 지나지 않아 포고렐카에서 세상을 떠난다. 표트르는 유죄 판결을 받고 유형지로 이동하던 중 죽는다.

유다는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고 서재에 틀어박혀 지낸다. 골로블료보로 돌아온 조카 안닌카를 대면하는데 그들이 함께하는 일이란 술을 마시는 것 뿐이다. 어느 밤, 화인 맞은 양심에서 새살이 돋듯 괴로움이 생긴 포르피리는 속죄의 의미로 어머니의 무덤을 방문하기 위해 집을 나왔다가 길에서 쓰러져 죽는다. 배우로 생활하다 세상에 버려진 안닌카도 열병으로 죽어간다. 가문의 재산은 먼 친척에게 상속된다.

러시아 문학에서 영지와 저택의 이미지는 작가마다 다르게 표현된다. 투르게네프에게 저택은 일반적으로 ‘자연과 예술의 시’로 덮여 있다. 곤차로프의 영지에 대한 설명에서는 ‘가부장적 지혜’가 우세하다. 톨스토이의 토지들은 주로 ‘건강한 시골 생활’을 비춘다. 골로블료프의 저택은 “부패의 냄새, 삶의 파멸”을 지니고 있다.

블라디미르 밀라솁스키가 그린 판화 (1936) / 사진출처. © shelf 웹사이트

블라디미르 밀라솁스키가 그린 판화 (1936) / 사진출처. © shelf 웹사이트

영혼의 검시관

‘유다’는 어린 시절 그의 형 스테판이 포르피리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어머니의 결정에 교묘하게 영향 미치는 법을 익혔다. 아리나 페트로브나는 둘째 아들의 거짓된 온유함과 애정 뒤에 계산적인 성격이 있을 것이라고 늘 의심했고, 그녀의 생각은 결국 옳았(음이 밝혀진)다. 유다의 삶과 죽음은 완전한 도덕적 마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 죄를 깨닫지만, 속죄의 기회를 얻지는 못한다.

유다는 눈 내리는 3월 밤에 갑자기 집을 떠나 교회 마당에 도착하기 전에 얼어붙는다. 살았으나 죽은 영혼인 그의 상태를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어느 순간까지 아무렇지 않게 살아왔던 사람이 자기 삶에 어떤 악이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하는 그런 때가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그 악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 대부분의 경우 당사자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으며, 또한 무엇보다도 악의 기원, 악이 생긴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셰드린은 살아있는 인물의 죽은 영혼을 부검한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어디서 왔는지, 언제, 어떻게, 어떤 이유로 이 사람에게서 부패가 시작되었는지, 이 부패가 어떻게 영혼을 잠식해 들어갔는지 냉정하게 보여준다.

세르게이 알리모프의 일러스트(1986) / 그림출처. © Foma Magazine

세르게이 알리모프의 일러스트(1986) / 그림출처. © Foma Magazine

소설 전반에 걸쳐 작가는 골로블료프가의 교활한 경건함이 어떻게 비인간적 행위와 결합하는지에 주목한다. 종교는 거의 잔인함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기까지 한다. 아리나 페트로브나는 큰아들 대면하기를 거부하면서도 “사람들이 이 일로 나를 정죄하지 않을 것이고, 하느님께서도 나를 벌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포르피리는 모든 예배에 참석하고, 끊임없이 복음서를 인용하고, 가난한 아들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서도 “하느님은 욥에게서 모든 것을 취하셨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았다”라고 오히려 상기시킨다. 그는 성상에 둘러싸여서 모든 의식을 생각 없이 수행하면서도 자신이 천상의 중재자를 찾았다고 확신한다.

셰드린은 유다의 종교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가 기도드리는 까닭은 하느님을 사랑해서도,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려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악마를 두려워하여 자기를 악마로부터 구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기도했다.” 그러다 마지막 순간 그는 철저히 혼자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농노제에 대한 총결산

골로블료프가는 하인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부양할 수 없음이 곧 밝혀진다. 아리나 페트로브나의 걱정처럼 “춤추고, 노래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셰드린은 농노제가 주인들만 타락시킨 것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주인의 환심을 사려고 했던 농노 여인 울리투쉬카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작가는 그녀의 노예적 야망을 고발한다. “그녀는 쓸모 있는 하녀의 모든 자질을 완벽하게 지니고 있었다. 교활하고 독설 내뱉기를 잘했으며 어떤 배신이라도 감행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간교함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바꾸어버리는 억제할 수 없는 복종심을 결함으로 지니고 있었다.”

셰드린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골로블료프가 죽음에 이르게 된 사회적 배경이다. 이 모든 죽음은 정확히 지주들이 대부분 기생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했고, 스스로 일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녀들 또한 일하는 데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났다. 그는 “게으름, 어떤 사업에도 적합하지 않음, 음주벽”이라고 원인을 진단한다. 그로부터 쓸데없는 생각과 텅 빈 내면과 무질서가 필연적으로 생겨난다는 것이다. 무위도식의 죄로부터 면죄부를 받을 유일한 사람은 아리나 페트로브나인데, 그녀조차 극도의 물질주의적 생활 태도로 자녀들에게 영지를 물려주는 것 말고는 어떠한 가치도 전혀 계승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유죄다.

세르게이 알리모프의 일러스트(1986) / 그림출처. © Foma Magazine

세르게이 알리모프의 일러스트(1986) / 그림출처. © Foma Magazine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최후의 생존자인 포르피리와 안닌카는 이 가족의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가한 “오래된 죽음과 단절”을 회상한다. 이 순간 유다는 “무서운 진리가 양심을 밝히는 것”을 느낀다. 살티코프 셰드린은 그의 병적인 상태(“돌 주머니에 갇혀 있는 자기 자신이 삶에 귀환하리라는 희망도 없이 고통스러운 후회의 희생양이 된 것을 본다.”)를 지적하고, 실제로 그의 자살을 선언한다 (“돌 주머니에 머리를 깨뜨리는 음울한 결심의 순간을 이용하는 것 이외에는, 헛되이 갉아 먹히는 이 고통을 가라앉힐 방법이 없다.”). 그의 영혼은 각성했으나 생활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너무 늦었다. 셰드린은 회복된 유다를 불쌍하게도, 우스꽝스럽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유다는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고 위선적 언행을 일삼지도 않는다. 모두 완전한 파멸에 이른다.

러시아에서 19세기 중반이 고골의 『죽은 혼』의 시대였다면, 19세기 말은 살티코프 셰드린의 『골로블료프가의 사람들』의 시대였다. 시대의 진실은 오늘날 어떤 작품을 통해 형상화되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할 것인가.

소련 영화 '골로블료프가의 사람들' (1969) 스틸컷 / 사진출처. © shelf 웹사이트

소련 영화 '골로블료프가의 사람들' (1969) 스틸컷 / 사진출처. © shelf 웹사이트

서정 에세이스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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