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하고 명료하지만 몽상적이며 다채로운 이미지로 가득하다.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1875~1937)에 대한 평가다. 올해 라벨 탄생 150주년을 맞아 세계 음악계가 그를 기리는 연주와 행사로 분주하다.
음반계가 가장 먼저 주목한 건 올해 30세가 되는 조성진이 17일 DG(도이체 그라모폰) 레이블로 내놓은 라벨 피아노곡 전곡 음반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물의 유희’ ‘거울’ ‘밤의 가스파르’ ‘쿠프랭의 무덤’ 등 라벨이 피아노를 위해 쓴 작품 모두를 연대순으로 실었다. 관현악곡을 라벨이 피아노용으로 편곡한 ‘라 발스’는 싣지 않았다.
19일 온라인 화상회의로 열린 간담회에서 조성진은 “라벨은 완벽주의자였다”고 말했다. “모든 음악이 잘 짜여져 있죠. 오케스트라적으로 피아노곡을 쓰려고 한 것 같아요. 성부마다 오케스트라의 어떤 악기를 재현하려 한 게 느껴지고, 대위법(여러 선율이 독립적이면서 조화롭게 어울리도록 하는 기법)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풀어내는 게 놀랍습니다.”그는 라벨 음악을 열한 살 쯤 처음 접했다. “‘거울’ 중 ‘어릿광대의 아침 노래’를 선생님이 추천하셨죠. 베토벤이나 쇼팽과 완전히 달라서 새로운 세상 같았어요. 파리 유학 초반에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를 배웠는데, 지금도 연주할 때마다 파리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조성진은 라벨과 함께 프랑스 인상주의 양대 거장으로 불리는 드뷔시의 피아노곡 앨범을 2017년 발매했다. “드뷔시와 라벨이 어떻게 다른지도 이번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드뷔시는 자유롭고 더 로맨틱한 면이 있죠. 라벨은 드뷔시보다 지적이고, 완벽주의자로서 자신이 원하는걸 분명히 알았던 것 같아요.”조성진은 25일 오스트리아의 빈 콘체르트하우스를 시작으로 라벨 리사이틀을 연다. 빈에 이어 뉴욕 카네기홀을 비롯한 미국에서, 4월부터는 유럽, 한국에서는 6월과 7월에 투어를 한다. “리히텐슈타인에서 먼저 이 프로그램으로 해봤는데 세 시간이 걸리더군요. 마지막 곡을 연주할 때는 정신이 혼미했는데(웃음), 하고 나니 굉장히 뿌듯했어요.”
그는 4월 11일 안드리스 넬손스 지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라벨 피아노협주곡 음반(피아노협주곡 G장조,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을 내놓을 예정이다. 국내 연주로는 라벨 전국 투어 외에는 12월 11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김선욱 지휘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협연한다.그는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이고 (더 평범한)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이란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가족과 친구들이 건강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음악을 많은 관객들과 공유하고 맛있는 걸 먹는 데서 행복을 느껴요. 천재 작곡가들이 쓴 곡을 연주하면서 그들의 정신세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으니 피아니스트라는 직업도 정말 행복하죠.”
이번 앨범에 대해 음반전문지 ‘프레스토 뮤직’은 “조성진은 라벨의 명료함과 기하학적이고 고전적인 특성을 매력적이고 섬세하게 표현하며 생명력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했다. “귀족적이고 감상적인 왈츠는 귀족적인 면모를 더 부각하며 점잖고 품격 있는 심사를 떠올리게 한다. 차갑거나 기계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감정 또한 풍부하다”고 프레스토 뮤직은 덧붙였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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