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함이 아닌 관대함[이은화의 미술시간]〈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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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풀밭 위 자주색 담요에 남녀가 포개어 누워 있다. 곁에는 과일 바구니와 술병, 잔이 놓였고 멀리 마을과 산이 보인다. 페르난도 보테로가 2001년에 그린 ‘소풍’(사진)이다. 연인의 한가로운 소풍 장면 같지만, 시선을 붙드는 건 두 사람의 몸이다. 얼굴도, 팔다리도 풍선처럼 부풀어 비례가 전혀 맞지 않는다. 그는 왜 인체를 이렇게 그렸을까. 피카소가 형태를 해체했다면, 보테로는 비례를 해체했다. 그는 사실적 비례를 의도적으로 비틀어 부피감을 극대화했다. 그 결과 사람은 물론 동물과 악기, 과일까지 하나같이 풍만하다. 1956년 멕시코에서 악기 ‘만돌린’을 그리던 그는 울림구멍을 작게 표현하자 몸통이 거대해 보이는 효과를 발견했다. 이를 계기로 세상의 모든 비례를 자기 방식으로 재창조했다. ‘보테로 스타일’의 탄생이었다. 이 독창적인 양식은 정규 미술교육의 틀에 갇히지 않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스무 살 무렵 유럽으로 간 보테로는 미술학교에 잠시 몸담았을 뿐, 대부분의 시간을 미술관에서 거장들의 걸작을 모사하며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했다. 옛 거장들이 그의 스승이었다. ‘소풍’ 역시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를 연상시키지만, 화면을 지배하는 풍만함은 보테로만의 조형언어다. 그는 뚱뚱한 사람을 그린 게 아니라, 대상이 지닌 생명력과 형태의 관대함을 부피로 표현하고자 했다. 화면을 가득 채운 부푼 몸들은 특유의 포근함을 자아낸다. 비현실적인 몸과 무표정한 얼굴임에도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묘하게 마음이 풀어지는 이유다. 어쩌면 보테로가 부풀린 것은 인체만이 아니라, 팍팍한 세상을 견디느라 위축된 우리 마음의 여백인지 모른다. 팽팽한 긴장과 완벽주의에 지친 현대인에게 그림 속 풍만한 연인은 속삭이는 듯하다. 조금은 느슨하고 넉넉해져도 괜찮다고. 애써 웃지 않아도 된다고. 이은화 미술평론가©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지금 뜨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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