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테르테 체포 뒤엔 '가문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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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ICC 교도소에 수감
세습 정치 만연한 필리핀
마르코스家와 불화탓 분석

'필리핀의 트럼프'라 불리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마약과의 전쟁' 명분으로 반인도적 살상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수감됐다. 그는 자신이 모든 일에 책임을 지겠다면서 계속 국가를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닐라 불틴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항공편을 통해 이날 ICC가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도착했고 곧바로 ICC 구금센터로 이송됐다. ICC는 건강검진을 실시한 뒤 수일 내 예비 심문기일을 잡을 예정이다. 본격 재판은 수개월 뒤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유죄 판결 시 최대 종신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체포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2분가량 영상에서 "나는 법 집행기관과 군대를 이끈 사람"이라며 "나는 여러분을 보호하고 이 모든 일에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해왔다"고 밝혔다. 또 지지자들을 향해 "난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 긴 법적 절차가 될 것이지만 계속 국가를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영상은 항공기 안에서 촬영됐다. 그는 재판기간에 ICC 구금센터 내 약 10㎡ 넓이 방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기소된 건 2019년 무죄 선고를 받은 로랑 그바그보 전 코트디부아르 대통령 이후 전직 정부 수반으로는 두 번째 사례다.

그에 대한 체포영장이 집행됐다는 사실이 전해진 뒤 폴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살인 희생자 수천 명에 대한 책임을 묻는 데 매우 중요한 단계"라는 입장을 밝혔다. 카림 칸 ICC 검사장도 "피해자들에게 중요하다"며 "국제법이 일부 사람들의 생각만큼 약하지 않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체포는 현재 집권 중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과 두테르테 가문 간 불화가 직접적인 요인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2022년 대선에서 마르코스 대통령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딸 사라 두테르테와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당선됐다.

족벌·세습 정치가 만연한 필리핀에서는 오랫동안 엘리트 가문 간 경쟁과 연합을 통해 권력이 창출돼왔다. 마르코스와 두테르테 간 연합은 대선 승리를 가져다줬지만 출범 후 지속적으로 갈등이 발생했고 양측 간 '정치적 동맹'은 오래가지 못했다.

예컨대 마르코스 대통령이 친미 노선을 걷고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중국과 충돌하자 친중 성향인 두테르테 측과 대립이 심화됐다. 특히 두테르테 집권 시절 마약과의 전쟁 관련 불법 행위 조사를 둘러싼 갈등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됐다.

사라 부통령은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에서 정부 내에서 자신을 암살하려는 계획이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죽으면 마르코스 대통령과 그 가족을 암살하라고 경호원에게 지시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 회견은 사라 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를 앞당기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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