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을 가진 보사노바는 브라질 음악 '삼바'에 재즈가 섞여 탄생한 음악이다. 삼바 역시 아프리카의 리듬과 유럽의 멜로디가 만나 빚어진 음악이었기에 보사노바가 탄생한 것은 비교적 최근인 1950년대 말이다. 격정을 가라앉히는 안정제와 같은 매력 덕분에 세계인들은 꾸준히 보사노바에 조용한 열광을 보낸다. 일본 출신 가수 리사 오노(63)는 보사노바 세계화의 중심에 있는 인물 중 하나다. 전설적인 보사노바 뮤지션과 함께 공연하고 30여장이 넘는 음반을 발표한 그 가수.
리사 오노의 목소리는 슬픔과 어두운 정서에 희망을 불어넣는 힘이 있다. 1989년 데뷔해 어느덧 36년차 커리어를 쌓은 그가 다음달 말부터 서울(5월 30~31일), 대구(6월 1일) 무대에 나선다. 그는 '드림'(1999), '프리티 월드'(2000) 등 음반으로 한국에 보사노바 열풍을 몰고온 장본인이다. 싸이월드 세대에겐 보사노바 전도사로도 유명한 인물. 개인 일정차 한국을 찾은 그를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에서 만났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나고 자란 그는 10살에 도쿄로 역(逆)이민을 하며 브라질을 향한 향수를 겪었다. "고향이 그리워 보사노바를 들었는데, 들을수록 이 음악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제 성량이 크지 않아 박력있는 노래를 하지 못했기에 보사노바와 만남이 더 반가웠답니다." 따뜻한 음색과 약간 뭉개지는 듯한 몽환적 발음의 포르투갈어 가사가 만난 그의 노래는 일본, 대만, 한국, 미국까지 이어지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2005년 첫 내한 공연을 가졌고 종종 한국을 찾긴 했는데, 서울 공연은 13년만이네요. 오랜만에 한국 팬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게 될 것 같아 설렙니다. 아리랑을 부를 준비도 하고 있어요." 리사 오노는 2010년 아시아 민속 노래 모음집이라는 음반을 통해 아리랑을 보사노바 풍으로 해석한 바 있다. 그 후 한국을 찾을 때마다 아리랑을 들려준다. 이번 한국 무대에서는 아리랑을 비롯해 그가 발표해온 수많은 히트곡들을 23~24개로 추려 들려줄 예정.
리사 오노는 팝, 재즈, 샹송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노래한다. 보사노바 가수의 정체성을 지켜가면서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던 그는 이제 록 음악부터 소울 음악까지 저변을 넓혀가는 중이다. 최근에는 클래식 음악도 즐겨 듣는다. 슈베르트와 쇼팽, 드뷔시의 서정에 흠뻑 빠졌다. "저는 아직도 저만의 '오리지널리티(원작으로서 예술의 독창성과 신선함)'를 찾고 있어요. 최근에는 피아노도 배우기 시작했고 작곡도 하고 있습니다. 악보를 손수 그리면서 음악을 만드는데 그 역시 제 오리지널리티를 찾기 위한 작업입니다. 언젠가 팬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은데, 가사는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해요.(웃음)"
리사 오노는 40년 가까운 생활 동안 음악을 했다. 긴 시간이잔 노래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고. "노래를 부르는 순간이 즐겁기 때문에 한곡, 한곡을 정말로 소중히 불러왔어요. 보사노바 가수로 꾸준히 살 수 있었던 원동력은 '즐거움' 그 자체입니다." 리사 오노는 보사노바가 어디에든 잘 스며드는 음악이라고 했다. "어떤 계절에도 잘 어울리는 멜로디고, 색깔로 치면 파스텔 색감을 지녔어요. 듣는 이들이 자신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서도록 만들어주는 음악이란 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나직하게 말을 잇는 오노의 성품도 마치 보사노바를 닮은 것 같다는 감상을 전하자 그는 조용히 웃었다. "자녀들이 가끔 저에게 엄마는 정말 어린 아이 같다고 할 때가 있어요. 좋게 말하면 순수함이긴 한데, 음악밖에 모르고 다른 분야에는 선뜻 발 들이기 어려워하는 성격이긴 하네요."
20년전과 똑같은 목소리의 비결을 묻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덕분"이라고 했다. 자연을 충분히 누리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도 비결이라면 비결. "강이 보이는 집에서 살아요. 강가에 살면서 노모를 모시고 피크닉을 자주 가지요. 사계절을 듬뿍 느끼는게 좋아요. 아침과 저녁, 강아지와 산책하면서 일상의 행복을 지켜 가려고 합니다."
그는 '라이브 음악'이 주는 힘을 믿는 사람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투어를 이어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의 발달로 우리는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진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정보에 불과하죠.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로 겪는 '경험'이에요. 그리움, 실패, 감동 등 여러가지 감정적인 경험이 있는데 라이브 공연은 우리 마음을 들여다보고 또 연결하는 매개이자 경험의 도구가 될 수 있어요."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