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종교적이되, 더 부처님 닮은 절 꿈꿨어요”

4 days ago 14

세계건축상 대상 강릉 인월사… 주지 재범 스님의 사찰건축 철학
산불 폐허 위 현대적 건축물 구상
불필요한 형식-권위서 벗어나… 법당-명상실-공양간 3곳만 남겨

올해 3월 세계적인 건축 전문 플랫폼인 WAC(World Architecture Community)가 주관하는 제53회 세계 건축상(World Architecture Awards)에서 대한불교조계종 강원 강릉 인월사·담마센터(주지 재범 스님)가 대상을 받았다.

종교 건축물의 수상 자체도 드문 일이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끈 건 2023년 4월 강릉 산불로 폐허가 된 인월사의 과거와 그 속에서 현대식 건축물로 다시 태어나게 한 주지 재범 스님(사진)의 사찰 건축 철학이었다. 지난달 27일 낙성법회를 가진 재범 스님은 이틀 뒤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왕 다시 짓는 거 ‘덜 종교적이되, 더 부처를 닮은’ 공간이 됐으면 했다”라고 말했다.

―화재 뒤 남은 게 일주문(一柱門)뿐이었다고요.

“인근 동네 주택과 건물 등 200여 채가 소실될 정도로 큰불이었으니…. 대웅전과 관음전, 요사채 전부 잿더미가 됐지요. 절의 시작을 알리는 일주문과 입은 옷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저도 저지만, 절을 세우신 스승님께서 더 상심이 크셨어요. 매일 눈만 뜨시면 저를 보고 ‘언제 다시 짓나, 언제 다시 짓나’라고 하셨으니까요.”

―새로 지은 건물은 절이라기보다 현대식 미술관처럼 보입니다.

세계건축상 대상을 받은 강원 강릉시 인월사 전경. ⓒ김종오

세계건축상 대상을 받은 강원 강릉시 인월사 전경. ⓒ김종오

“절 뒤가 바로 강릉 경포호예요. 도심 속 관광지 옆에 있는 절을 굳이 전통 사찰처럼 지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요. 딱히 유명한 문화유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절이 명상과 포교 중심이거든요. 그 기능을 좀 더 편리하게, 잘하기 위해서는 종교적인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건축가에게 ‘덜 종교적이되, 더 부처 닮은’ 공간이 되고 싶다고 했지요.”

인월사(印月寺)는 인근 경포호에 찍힌 달의 도장이란 뜻이다. 이름처럼 일주문을 지나면 ‘카르마의 거울’이라 불리는 작은 연못이 방문객을 맞는다. 그 뒤 빨강, 노랑, 파랑 등 다양한 색의 블록과 그 사이의 공간으로 이뤄진 곡선의 벽(인드라 월)은 우주 만물이 끝없이 연결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거대한 그물인 ‘인드라망(인타라망·因陀羅網)’을 형상화했다. 인월사의 또 다른 매력은 절 뒤 작은 언덕에 올라 경포호를 바라보는 맛. 강릉 화재 이전에는 이 작은 언덕이 100년이 넘는 고목들로 빽빽해 하늘이 안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종교 시설인데 덜 종교적으로 되고 싶다는 게….“우리 불교가 부처님 뜻과 달리 자기만의 틀을 만들고 불필요한 형식과 권위에 갇힌 부분이 많아요. 예를 들어 부처님은 여성을 차별하지 않으셨지요. 하지만 지금 한국 불교가 비구와 비구니가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안의 모든 것이, 부처님의 참뜻에서 벗어나 어떤 ‘틀’에 갇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싶었습니다.”

―건물에 법당과 명상실, 공양간 딱 세 곳만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인지요.

“기도와 명상, 두 가지 외에는 다 불필요한 것 같아서…. 그 대신 누구든, 언제 어느 때라도 와서 시간 구애받지 않고 명상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5분이든, 몇 시간이든 상관없어요. 요즘 사람들 정말 잠시도 쉬지 않고 살지 않습니까. 심지어 쉬려고 여행 왔는데, 또 사진 찍고, 맛집 가고 바쁘게 돌아다니고요. 예약? 그런 거 필요 없어요. 공간은 충분하니까 그냥 앉아서 잠시라도 자신을 멈추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이 공간은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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