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카모토는 2023년 영화 ‘괴물’로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일본에서는 신드롬급 인기를 얻은 드라마 ‘도쿄 러브 스토리’(1991년)로 데뷔와 동시에 주목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년), ‘마더’(2010년),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2021년) 등 드라마·영화 작가로 잘 알려져있지만, 사실 그는 오래 전부터 희곡을 써온 극작가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은 올해 1월 출판사 ‘알마’가 희곡을 내놓으며 추진됐다. 사카모토의 팬인 알마 안지미 대표가 2018년 현지에서 공연된 이 희곡을 발견하고 번역을 제안했다고 한다. 최근 서면으로 만난 사카모토는 “희곡은 일본에서도 쉽게 출판되는 것이 아니라서 제안을 받고 놀랐다”면서 “해외 작품 번역은 그 나라 문화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 문화에 대한 경외도 커졌다”고 말했다.
‘또 여기인가’는 오래된 주유소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주유소를 운영하는 젊은 점장 지카스기. 이복형 네모리가 찾아와 아버지의 의료사고 소식을 알리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쉬운 작품은 아니다. 사건보다는 대화를 통해 인물들의 과거와 비밀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에 관객은 꽤 오랜 시간 인물을 이해하지 못한 채 대화를 따라가야 한다. 영화 ‘괴물’ 등에서 반복된 구성이다.
ㅡ 많은 작품이 인물의 목표나 관계를 빠르게 설명합니다. 그러나『또 여기인가』와『괴물』등에서 볼 수 있듯 작가님은 오히려 관객을 의도적으로 낯선 상태에 머물게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맞습니다. 저는 시작하자마자 등장인물상이 설명되는 유형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으며,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작품의 진입장벽이 높아진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현실과 아주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타인을 서서히 알아갑니다. 만나자마자 그 사람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그 사람을 알게 된 것이 아니죠. 그리고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여지도 필요하고요. 저는 창작에 있어서 ‘이해하는 것’보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더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ㅡ 작가님께서는 등장인물의 과거 이력을 상세하게 구상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또 여기인가』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집필하셨나요.
“드라마는 스토리보다 캐릭터의 매력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2시간 정도면 끝나는 영화나 연극은 그보다는 스토리를 중시하지만, 역시나 인물 소개서는 썼습니다. 대본을 쓰는 것과 비슷한 시간을 들여 모든 등장인물에 대해 계속 생각합니다.”ㅡ 사람을, 또 사람간의 관계를 이야기로 발전시킬 때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저는 사람을 그린다는 것은 이야기에 저항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일상에는 어느 날 갑자기 이야기가 찾아옵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타인도 등장하고요. 우리는 자신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이야기와 타인에 맞서 싸웁니다. 저는 그 저항하는 모습에서 매력을 느낍니다.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일상을 되찾아가는가.’ 그것이 제가 반복해서 다루는 주제입니다. 그 과정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고, 좀비가 등장할 수도 있으며, 악덕 기업의 직원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식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습니다.”

사카모토는 이전에도 몇 차례 낭독극과 단편 연극 대본을 쓴 적이 있다. ‘또 여기인가’는 그의 첫 장편 희곡으로, 오랜 친구의 의뢰를 받아 만들었다. 그는 “현지 공연의 연출가이기도 한 제 친구는 20대 때부터 술을 마실 때마다 ‘나를 위한 대본 한 편을 써달라’고 말하곤 했다”며 “항상 귀찮게 여겼지만, 어느 날 밤 기분이 좋을 때 수락해버리고 말았다”고 했다.
답은 장난스러웠지만, 그는 공연작업 또한 “평생의 업”이라고 여겼다. 영상작업을 주로 해온 그에게 관객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연극의 큰 매력이었다. 사카모토는 이번에도 방한을 계획했지만 새 원고 작업으로 공연에 참석하진 못했다. 그는 “최근 있었던 일 중 가장 아쉬웠다”며 “조만간 한국에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사카모토는 오래전부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왔다. 그는 여러차례 한국과의 협업에 관심을 보여왔고, 올해 4월엔 어머니와 함께 한국으로 여행을 오기도 했다. 한국과의 인연을 묻자 그는 불현듯 옛날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여섯 살이나 일곱 살 무렵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족들과 해수욕을 가던 길이었어요. 도중에 아버지가 휴게소에 들러 차에서 들을 카세트 테이프를 하나 사셨습니다. 그런데 실수로 한국 음악 테이프를 사신 거죠. 지금으로 치면 트로트라고 할까요? 설상가상으로 심한 교통 정체가 있었고, 저희는 6시간이 넘도록 전혀 알아듣지 못할 한국어 노래를 반복해서 들어야 했습니다. 어린아이였던 저는 그게 무척 불만이었지만, 지금도 그 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낯선 언어로 불리는, 감정이 듬뿍 담긴 노래. 바로 그 기억이 제게는 한국에 대한 원초적 경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는 한국 문화를 접할 때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을 발견하곤 합니다.”
ㅡ 그후로도 오래도록 한국문화에 매력을 느껴온 지점이 있다면요.“일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 문화를 ‘글로벌한 문화’로 인식하고 있어요. 물론 저도 K-POP을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지점은 그와 조금 다릅니다. 저는 홍상수 감독의 열렬한 팬입니다. 늘 신작을 챙겨보고 있는데요. 홍상수 감독이 한국 문화를 대표한다고 단정할 순 없겠지만, 저는 그의 작품 속에서야말로 늘 한국을 보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의 식당에서 술을 마시며 새벽까지 말다툼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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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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