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이 미국보다 싸면 뭐합니까. 정부와 협회가 수출을 늘리지 말라고 압박하는데…."
29일 한 대형 철강 업체의 한 임원은 지난달 한국의 대미(對美) 철강 수출액이 1년 전보다 16% 넘게 급감한 것에 대해 이같이 푸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달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철강협회, 업계가 모인 간담회에서 '대미 수출을 무리하게 늘리지 말라'는 얘기가 나왔다"며 "이후 업계는 서로 눈치를 보면서 예년 수준보다 수출량이 늘어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렴한 중국산 철강재의 공격에 신음하고 있는 철강 업계가 매년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다주던 미국 시장에서도 고전하고 있다. 지난달 12일부터 25%의 관세를 내면서 마진이 줄어든 데다 수출량도 늘리지 못하면서다.
미국에 비해 한국의 철강재 가격이 크게 낮아 수출량을 늘리면 돈을 벌 수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단 것이다.
철강재 가격의 대표적인 지표인 열연강판 거래 가격은 미국 정부가 철강재와 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 부과를 결정하자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날 원자재 분석기관 CRU에 따르면 지난 23일(현지시간) 기준 미국에서 유통되는 열연강판 가격은 t당 1043달러(150만5000원)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 1월22일 750달러)보다 38.4% 올랐다. 열연강판 가격 인상이 관세 효과로 인해 잠깐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있었지만 철강 관세가 시작된 지난달 12일 이후 계속 t당 1000달러 이상을 계속 넘고 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열연강판 가격과의 격차도 커지고 있다. 지난 25일 기준 한국의 열연강판 거래가격은 t당 80만원. 여기에 물류비(t당 50달러)와 관세(25%)를 더해도 미국 유통가격보다 40만원 저렴한 110만원 수준에 그친다.
업계는 철강 수출 쿼터(연 263만t) 폐지로 더 많이 수출해 관세로 인한 손실을 메울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지만 현실은 다르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1기 당시 미국 수출을 급격히 늘린 일부 업체 탓에 한미 간 철강 협상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얘기를 정부에서 강조하고 있다"며 "협회 차원에서도 압박을 하고 있어 연 263만t 쿼터제 안에서 수출했던 물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정책 불확실성이 없어져야 수출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보편 관세와 철강, 자동차 분야의 상호관세 등에 대한 양국 협상이 끝나야 방향을 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 전까지는 부진한 수출 흐름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