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에너지 리얼리즘'…친환경 투자 돌파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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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6.03.31 06:01 수정2026.03.31 06:01

[한경ESG] 투자 트렌드

다시 찾아온 '에너지 리얼리즘'…친환경 투자 돌파구는


이란 전쟁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환경을 뒤흔들었다. 전쟁 여파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친환경 투자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에너지 수급에 비상이 걸린 각국에서는 친환경(E)보다 에너지 안보가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기업들은 이제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만큼이나 지정학적 충격에도 견딜 수 있는 회복력(Resilience)을 증명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전문가들은 탄소 감축보다 에너지 안보와 가격 안정이 우선이라는 ‘에너지 리얼리즘(Energy Realism) 시대’가 찾아왔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변화하는 에너지 지형도

이란 전쟁은 그간 세계 각국이 의구심을 품은 채 추진하던 ESG 정책에 큰 변화를 줬다. 과거 ‘죄악 자산’ 취급을 받던 화석연료 중 탄소 배출이 적은 천연액화가스(LNG)와 탄소 배출이 거의 없는 원자력이 ESG 포트폴리오의 ‘현실적 대안’으로 복귀했다. 완전히 깨끗한 기업에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탄소 배출이 많은 기업이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과정에 자금을 지원하는 ‘실질적 지원’이 대세가 됐다는 평가도 자리 잡았다. 실제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 국가와 기업에 대한 밸류에이션 할인이 강화됐다.

에너지 지형도도 크게 바뀌었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며 에너지 안보가 ‘E’보다 우선시되는 에너지 리얼리즘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다. 예를 들어 데이터센터와 국방 전력 수요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기저 부하로서 원자력이 ESG 투자 범위에 공식적으로 편입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업계에선 고유가로 인해 막대한 현금을 확보한 전통 에너지 기업들이 이 자금을 바탕으로 재생에너지 기업을 인수하는 ‘에너지 전환의 주도권 교체’가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개별 국가 정책도 변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기업들의 행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요 ESG 공시 및 실사 법안을 대폭 수정했다. 지난 3월부터 발효 중인 ‘옴니버스 지침’을 통해서다. 이를 통해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과 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CSDDD)의 적용 대상 범위가 대폭 축소됐다. CSDDD의 경우 적용 대상 기업의 기준을 기존 ‘임직원 500명 이상’에서 ‘5000명 이상’으로, ‘매출액 1억5000만 유로’에서 ‘15억 유로’로 대폭 상향해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줬다.

중국은 제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4차 회의 개막식에서 정부 업무보고를 통해 완화된 탄소배출 기조를 발표했다. 15차 5개년 계획(2026~2030년) 기간 연구개발(R&D) 지출을 연평균 7% 이상 늘리고 단위 국내총생산(GDP)당 이산화탄소 배출은 5년간 17% 감축하겠다는 게 골자다.

미국 내에선 안티 ESG 움직임이 단순히 정치적 구호를 넘어 구체적인 ‘주주 행동주의’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 3월 열린 디즈니(Disney) 등 주요 대기업 주주총회에서 안티 ESG 단체들이 내놓은 3건 이상의 주주제안이 안건으로 상정됐다. 업계 관계자는 “이전에는 ESG 정책 자체를 거부했다면, 최근에는 ‘과도한 다양성(DEI) 정책이 주주 가치를 훼손한다’는 논리로 법적 소송과 연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성적표도 엇갈렸다. 글로벌 ESG 투자 시장은 지정학적 위기라는 변수를 만나 수익률의 극심한 양극화 현상을 보였다.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상품들은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불안과 안전자산 수요를 직접적으로 흡수한 자원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들이었다.

특히 금에 투자하는 ‘Franklin Responsibly Sourced Gold(FGDL)’는 안전자산 선호 현상에 힘입어 두 자릿수(12.4%) 수익을 냈다. 공급망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덕에 구리 채굴 기업에 투자하는 ‘United States Copper Index Fund(CPER)’ 역시 구리 가격 급등으로 높은 수익을 냈다. 배터리 핵심 광물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확보하는 기업들을 담은 ‘USCF Sustainable Battery Metals(ZSB)’도 뒤를 이었다.

반면, 고유가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박과 금리 인하 지연 전망은 신재생에너지 섹터에 치명적인 약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수익률 하락폭이 가장 컸던 상품은 태양광 테마인 ‘Invesco Solar ETF(TAN)’였다. 유럽 내 에너지 안보 우선주의로 인해 풍력과 태양광 프로젝트의 우선순위가 뒤처지면서 글로벌 클린 에너지 지수를 추종하는 ‘iShares Global Clean Energy(ICLN)’도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다시 찾아온 '에너지 리얼리즘'…친환경 투자 돌파구는

향후 투자 전략은

이런 가운데 ESG 투자자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3년 만에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추천한 KB증권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환경과 같은 공공재의 ‘공유지 비극’을 막기 위해선 페널티, 인센티브 두 가지가 필요한데 팬데믹 이후엔 두 가지가 모두 어려워졌다”며 “국가 부채 급증으로 인센티브 지급이 점차 줄어 지난 3년간 신재생에너지에 대해 보수적 의견을 가졌었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신재생 에너지 투자 비중을 확대하기로 한 것은 ‘AI전력’을 주목하고 있어서다.

이 연구원은 △AI전력 인프라를 강조한 트럼프 연두교서 △중간선거 ‘민주당 승리 가능성’ △이란 사태 이후 유가 급등과 에너지 자립 등을 이유로 꼽았다. 그는 “이란 사태가 끝나더라도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불안은 이어질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자국 내 에너지 발전의 필요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일론 머스크 역시 ‘과거 권력이 정보였다면 향후 권력은 전력’이라고 말했다”며 “하지만 ‘태양광·에너지저장장치(ESS)·풍력’ 등은 만들고 싶다고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들은 상당부분을 해외 업체에서 사와야 하고, 미국 민주당의 상원 장악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주가 모멘텀은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재원 한국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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