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과 우방국을 상대로 관세 폭탄을 퍼붓는 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은 종전(終戰)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 트럼프 2기 출범 후 종전 거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관측됐으나 미국발 관세 파도에 우크라이나를 향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분산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중국군이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싸우고 있다”고 주장하며 ‘중국의 러시아 파병설’로 전방위 여론전에 나섰다.
우크라이나 군은 연일 100기 이상의 무인공격기를 동원해 에너지 인프라 시설은 물론 모스크바 턱밑까지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러시아 군과 비교해 재래식 군사력이 열세인 우크라이나군은 1000㎞ 이상 비행할 수 있는 무인기와 자폭 드론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무인체계와 탄도미사일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러시아 군 방공망의 취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러시아 주요 공항에서 항공기가 정시에 이·착륙하지 못하거나 회항하는 등 수시로 운항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모스크바까지 무인기 위협에 노출되면서 러시아 국민 사이에 전쟁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휴전 합의안에 대해 ‘에너지 인프라 시설 공격 중단’을 역제안하며 지연 작전에 돌입했다. 우크라이나군의 필살기인 무인기를 무력화하기 위함이다.
최근 미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중재해 흑해 안전 항해 보장 및 군사 목적상 상업 선박 사용 금지 등을 규정하는 ‘흑해 해상 휴전’에 합의했다. 하지만 흑해 해상 휴전은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EU)이 제안한 ‘30일 임시 휴전안’에 미치지 못한 결과다.
지난달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가 한·미 연합연습 ‘자유의 방패’ 종료 직후 당일치기로 북한을 방문했다. 쇼이구 서기의 방북은 북·러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을 근거로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의 군사 개입 확신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이 크다. 최근 미·러 관계 개선과 우크라이나 종전 동향에 대한 전략 소통도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군용기가 한·미 연합연습 기간 여덟 차례에 걸쳐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해 울릉도 북방 약 20㎞까지 접근한 이유는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맞춤형 군사행동’으로 풀이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푸틴 대통령 특사의 당일치기 방북을 계기로 ‘북한 패싱’ 등 러시아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털어냈고, 파병 반대급부와 동맹 조약의 정상적 이행 공약도 확인했다. 최근 김 위원장의 현지 지도는 ‘잘 훈련된’ 특수작전군의 러시아 추가 파병 및 총체적인 전훈 분석을 통한 국방력 강화를 위한 노력과 무관치 않다.
조선중앙통신은 특수작전군 종합훈련에 대해 “현대전 발전 양상에 맞게 특수작전 무력 강화를 위한 새로운 전법과 방법론을 부단히 탐구 적용하고 실전훈련 과정을 통해 숙달시키기 위해 진행했다”고 밝혔다. 추가 파병과 현대전 분석 등 김 위원장의 의중이 반영된 담화로 해석된다. 김영복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이창호 정찰총국장, 신금철 총참모부 작전처장 등 파병부대 지휘부의 북한 국내 활동 노출이 작년 9월 이후 전무한 상황을 고려할 때 러시아 장기 주둔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들의 임무는 파병 부대 지휘·감독 외에 현대전의 변화 추이를 식별하고, 미래 군사력 건설 및 운용을 위한 전훈 분석이 과업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추가 파병 및 파병 장기화는 중·장기적으로 국방력 강화는 물론 전략적 지위 상승에도 도움이 된다. 다음달 9일 러시아 전승절 80주년이 가까워지면서 북한군의 열병식 참여와 김 위원장의 모스크바행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북·러 동맹의 심화 발전은 한국은 물론 동맹 미국에도 직접적인 위협이다.
최근 러시아 군용기의 KADIZ 진입 행태는 한국 신정부 출범 이후 불과 2개월 뒤 실시될 을지 자유의 방패(UFS) 기간 러시아의 고강도 군사적 압박 가능성을 시사한다. 한·미 연합 방위 태세를 흔들림 없이 유지해 초불확실성 시대의 ‘조용한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