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단자사·종금사 퇴출 교훈 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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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단자사·종금사 퇴출 교훈 잊었나

내년은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출간한 지 250년 되는 해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이 이끄는 시장의 힘을 강조했다. 시장은 자주 실패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당시 스코틀랜드 은행들의 무제한 발행어음 경쟁을 예로 들었다. 그의 경고는 한국 금융 규제를 향한 날카로운 질문으로 되살아난다.

최근 금융당국은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초대형 증권사에 발행어음 사업을 확대하고 종합투자계좌(IMA) 업무를 인가했다. 모험자본 공급을 늘리는 것이 핵심 목표다. 모험자본은 말 그대로 부실 위험이 크다. BBB 등급 이하 회사채가 한 예다. 은행은 대출을 꺼린다. 벤처캐피털은 자본력이 달려 장기 투자가 부담된다. 사정이 이러니 증권사라도 나서야 한다는 게 금융당국 설명이다. 발행어음은 증권업계 판도를 결정할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모험자본 확대가 정책 기조임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발행어음은 증권업계에만 국한된 이슈가 아니다. 자칫 금융시장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 따져야 할 부분이 많다.

첫째, 증권사 발행어음 확대는 은행업-증권업 간 경계를 허무는 중대 사건이다. 발행어음은 만기 1년 이내 단기 금융상품이다. 은행예금과 별 차이 없다. 최대 투자자는 가계(64%)다. 단기 자금을 장기로 굴리면 당연히 기간 미스매치가 발생한다. 유동성 리스크가 큰 것이다. 그런데 증권사 발행어음은 은행예금보다 안전망이 느슨하다. ‘원금보장형’임을 홍보하지만 법상 보호가 안 된다. 중앙은행의 최종대부 지원 대상도 아니다. 비(非)은행 증권사가 은행예금처럼 돈을 모으면 언젠간 사달이 날 소지가 큰 이유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단자사·종금사, 3개(한국·대한·국민) 투신사 사태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단자사·종금사는 앞다퉈 자기어음(통칭 자발어음)을 발행했다. 투신사는 족보 미상 수신상품 ‘신탁형예금’으로 시중 자금을 빨아들였다. 이들 제2금융권 상품은 투자자에겐 은행예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돈으로 장기·고위험 투자에 ‘몰빵’하다 결국 무너졌다. 애먼 은행, 증권사, 기업으로 충격이 번졌다. 정부가 단자사·종금사의 업종 자체를 전면 폐지한 사연이다. 투신사 신탁형예금도 중단됐다.

둘째, 중·소형 증권사보다 대형 증권사가 시스템 리스크를 더 키울 수 있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초대형 증권사는 중·소형사보다 안전할까. 이 논리는 절반의 진실이다. 자본이 많을수록 더 복잡하고 더 위험한 자산을 다룬다.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가 ‘글로벌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G-SIB)을 지정할 때 ‘덩치’(size)를 위험요소로 보는 이유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해외 부동산·인프라 투자 손실 대부분은 ‘빅6’ 증권사(한국투자 미래에셋 NH 삼성 KB 신한)에서 발생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도 대형사가 압도적으로 컸다. 규모가 크면 은근히 대마불사(Too Big To Fail)를 기대한다. 고위험 투자를 부추기는 도덕적 해이가 굳어질 수 있다. 이런 구조야말로 시스템 리스크의 진짜 원인이다.

셋째, 느슨한 규제가 리스크를 키운다. “모험자본 공급은 정책 지원이 전제돼야만 고려할 수 있는 조건부 선택이 아니라 금융투자회사의 존재 이유이자 본연의 역할이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발언이다. 하지만 모험자본 공급은 상응하는 규제가 있어야 뒤탈이 준다. 미국 유럽도 모험자본은 대형 증권사가 공급한다. 미국 대형 증권사는 은행과 똑같은 자기자본규제(바젤 방식)를 받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당국이 요구하는 최저 순자본비율(NCR)이 70%인데, 대형 증권사는 대부분 1000%를 초과한다. 더욱이 모험자본 대출은 레버리지(자기자본 대비 총자산) 규제 대상에서 배제했다. 대형사에 특혜를 베푼 것이다.

은행업-증권업 간 경계선 훼손의 심각성은 당국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부작용을 감수하고 도입한 정책인 만큼 안전망은 더 보강해야 하지 않을까. 발행어음, IMA 업무가 허용된 초대형 증권사엔 규제를 한 단계 높이는 것(바젤 방식 자본규제 적용)이 타당해 보인다. “특권은 언제나 시장의 적이다.” 250년 전 애덤 스미스의 주장은 지금 들어도 어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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