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오토바이 타듯 덜덜"…15m 벽에서 마주한 추락 공포 [고태강의 빌드업 클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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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흔히 클라이밍은 혼자 하는 운동으로 알려져 있지만, 혼자서는 절대 못하는 종목이 있다. 15m의 수직 벽을 타는 리드클라이밍(Lead Climbing)이다. 등반자는 중력을 거슬러 위로 오르고, 빌레이어(Belayer·확보자)는 땅에서 로프를 내어주거나 하강시킨다. 빌레이어는 등반자의 안전을 책임지고, 등반자는 빌레이어를 믿고 벽을 오른다. 누군가와 줄로 연결돼 함께 한다는 것, 그 자체가 리드클라이밍의 매력이다.

두 달간의 클라이밍 기초반 과정을 마치고, 지구력 클라이밍에 익숙해질 넉 달째에 리드클라이밍을 접하게 됐다. 마침 2020년 일본 도쿄올림픽에 처음으로 클라이밍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던 때였다. 줄을 달고 거침없이 수직 벽을 오르는 선수들의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옆이나 위로만 살짝 이동하는 지구력과는 다르게 강렬한 포스가 느껴졌다.

등반자 빌레이를 보고 있는 모습. 빌레이를 보는 중에는 절대 등반자에게서 눈을 떼서는 안 된다. 사진=고태강 차장

등반자 빌레이를 보고 있는 모습. 빌레이를 보는 중에는 절대 등반자에게서 눈을 떼서는 안 된다. 사진=고태강 차장

내 목숨을 지켜줄 ‘8자 매듭’과 빌레이어의 무게

리드클라이밍은 장비부터 실전이었다. 하네스, 퀵드로우, 확보기, 장갑, 줄(로프)가 있어야 했다. 안전벨트인 하네스를 처음 착용하니 참 어색했다. 본인의 허리에 맞게 하네스를 조여야 하는데, 뱃살이 많아서 그런지 조금씩 풀리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를 알아챘는지 선생님의 당부가 이어졌다. “허리 쪽에 하네스를 느슨하게 착용하면 몸에서 하네스가 빠져서 위험하니 단단히 매야 합니다.” 하네스에 있는 줄을 손으로 꽉 더 잡아당겼다. 조금이나마 안심이 됐다.

첫 수업은 8자 매듭을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우선 팔을 뻗어 적당량의 줄을 잡고, 고리를 만들어서 8자를 만든다. 8자를 하네스 앞쪽에 끼운 다음, 다른 쪽 줄로 아래쪽에서부터 따라가면 된다. 두 줄로 8자가 만들어지면, 갑자기 추락해도 절대 풀리지 않는 ‘절대 매듭’이 완성된다.

손재주가 없는 탓인지, 8자 매듭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처음엔 8자 모양 자체도 만들어지지 않아 줄이 그냥 일자로 나오기도 할 정도였다. 초반에는 당황한 표정이 웃겨서 동기들과 깔깔대고 웃기도 했지만, 이게 곧 내 생명을 지키는 동아줄이라는 생각에 수십번을 반복했다.

8자 매듭을 배우고 난 뒤 과정은 줄로 퀵을 거는 과정이었다. 15m 벽에는 1m마다 퀵드로우(줄을 거는 고리)가 설치돼 있다. 이 퀵은 올라가는 등반자가 추락했을 때, 바닥에 몸이 닿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등반자는 8자 매듭을 한 뒤에 이 줄을 걸면서 올라가야 하는데, 잘못해서 이미 걸려 있는 줄을 끌어올려 걸게 되면 'Z클립‘이 된다. 그러면 이 클립이 등반자가 올라가는 걸 막는 장애물이 된다. 추락할 때도 제대로 충격 흡수가 안 되어 위험하기 때문이다. 빌레이어는 등반자에게서 절대 눈을 떼지 않고, 등반자가 Z클립으로 걸면 바로 경고를 해야 한다. ’나 때문에 등반자가 다치지 않아야 한다‘는 묵직한 책임감이 생겼다.

손을 뗄 수 없었던 5m 높이의 공포

높이에 대한 공포도 이겨내야 했다. 자동으로 줄을 당겨주는 오토빌레이로 5m 벽을 처음 올랐을 때, 완등이 아니라 손을 놓는 게 문제였다. 홀드를 잡은 손을 놓아야 자동으로 바닥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손바닥에 땀이 나면서 홀드는 점점 미끄러워지니, 손을 놓으면 바닥으로 뚝 떨어질 것 같아 불안했다. 전완근이 땡땡해져갔지만, 좀처럼 내 손가락은 펴질 생각이 없었다. 뒤에선 선생님의 “집에 안 갈거예요?”라는 외침이 들렸다. 평생 매달려 있을 순 없다는 생각에 “엄마”를 외치며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줄 하나에 몸을 맡긴 그 순간에 가슴이 철렁하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이후 수업은 빌레이어가 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빌레이어는 등반자가 줄을 잘 걸 수 있도록 제때 줄을 내어주고, 추락할 때 줄을 제동해야 한다. 줄은 오른손으로 제동하는데, 줄을 내어줄 때에도 오른손을 절대 놓으면 안 된다. 등반자가 갑자기 떨어졌을 때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재차 이 부분을 강조했다. 등반자가 “텐션”을 외쳤을 때 오른쪽 줄을 잡아당기면서 뒷걸음질 쳐야 등반자를 당길 수 있었다.

그리고 등반자가 끝까지 벽을 올라갔을 때 “완료”를 외치면 오른쪽 줄을 잡아당겨서 팽팽하게 만들고, 등반자가 “하강”을 외치면 그때 오른쪽 줄을 슬며시 풀어줘야 하는 과정을 배웠다. 등반자에게 눈을 절대 떼지 않고, 바로 움직여야 하는 민첩성이 요구됐다.

“나 때문에 등반자가 다치면 어쩌지” 걱정으로 가득했던 시험

빌레이어를 보려면 자격증이 필요했다. 한 달여간의 수업을 마치고, 인천 ICN으로 가서 시험을 봤다. 1, 2층으로 나뉘어진 수많은 리드 클라이밍 루트에 압도당했다. 실제 15m 벽은 너무도 높게 느껴져서 쳐다볼 때 고개가 아플 지경이었다.

시험 감독자는 텐션을 외쳐야 할 지점과 추락을 해야 할 곳을 미리 지정해 줬다. “4번째 퀵을 걸고 텐션을 외치고, 한 7번째 퀵을 걸기 전에 추락.” 듣는 순간부터 발바닥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줄을 꽉 잡았지만, 괜히 줄이 슬며시 손을 빠져나가는 느낌까지 들었다.

등반자가 첫 번째 퀵을 걸기 전에는 떨어질 수 있는 등반자를 몸으로 받치는 ‘몸 빌레이’를 보고, 등반자가 첫 퀵을 걸자 바로 빌레이 모드로 전환했다. 텐션을 할 때 즈음이 되자 줄을 조금씩 빼면서 슬슬 뒷걸음질 칠 준비에 들어갔다. “텐션”이라는 소리에 자동으로 줄을 당기면서 걸음을 뒤로 옮겼다. “출발” 소리가 들리자, 똑같이 “출발”을 외치고 다시 줄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등반자가 “추락”을 외치자 오른손으로 줄을 확 잡아당기면서 상체를 뒤로 젖혔다. 다행히 등반자는 많이 떨어지지 않았다. 등반자를 땅으로 내리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결과는 시험을 본 동기들 모두 ‘합격’을 받았다. 이제 누군가의 등반을 지켜줄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게 뿌듯했다. 이제야 비로소 리드 클라이밍의 입구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영등포 스포츠 클라이밍 경기장에서 리드 클라이밍을 하고 있는 본인(=버건디 상의)의 모습. 사진=고태강 차장

영등포 스포츠 클라이밍 경기장에서 리드 클라이밍을 하고 있는 본인(=버건디 상의)의 모습. 사진=고태강 차장

15m 벽이 30m처럼 느껴지던 인공 외벽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자 야외 인공외벽에 도전했다. 도림2동 유수지에 있는 클라이밍 경기장으로 향했다. 가장 쉬운 5.9 난이도를 등반하는데, 15m 벽이 30m처럼 느껴졌다. 오르면 오를수록 홀드가 더 생기고 있다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완등까지 퀵을 두 개 정도 남겨놓자 발을 떼기가 무섭다는 공포감이 몸을 휘감았다. 팔이 짧아져서 다음 홀드를 못 잡을 것 같았고, 홀드 위를 딛고 선 발도 쭉 미끄러져서 추락할 것만 같았다. 추운 날씨도 아니었는데 두 다리는 덜덜 떨리기만 했다. 높은 곳에 오르니 도로에서 쌩쌩 달리는 차 소리까지 들려 무서웠다.

마지막 앵커에 있는 탑을 남겨두고, 텐션을 외치고 손을 탈탈 털었다. 다시 “출발”을 외치고 손을 쭉 뻗어서 마지막 홀드를 잡고 줄을 끌어올린 다음에 “완료”를 외쳤다. 드디어 해냈다는 생각에 얼굴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땅에 발이 닿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빌레이어를 봐준 파트너가 “오토바이 한 대 타고 내려왔네”라고 했다.

북한산 국제 클라이밍 센터에서 리드 클라이밍을 하고 있는 본인. 사진=고태강 차장

북한산 국제 클라이밍 센터에서 리드 클라이밍을 하고 있는 본인. 사진=고태강 차장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자 더 높이 올라갔다

리드 클라이밍을 하면서 얻은 교훈은 ‘절대 지레짐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벽을 오르기 전에 잡을 홀드를 미리 살피는 ‘루트 파인딩’을 하는데, 이때 생각이 등반의 결과를 좌우한다.

초반에는 ‘홀드가 잡기 까다로울 것 같은데, 너무 멀어 보이는데 내가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실제로 등반하면 홀드를 잡고 퀵을 걸기도 어려워서 버벅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비슷한 난이도라도 ‘한 번 해보자, 안 되면 말고’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붙었을 때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높이 올라갔다. 내 실력으로는 엄두도 못 낼 5.11대도 첫 퀵만 걸고 내려오더라도 일단 붙어볼 용기가 생겼다.

인생에서도 미리 겁먹고 걱정하느라 시작조차 못 하는 일이 너무 많다. 완벽한 계획과 정교한 전략이 늘 성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빠르게 행동하고 부딪히며 겪는 시행착오가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헤맨 만큼, 다 내 땅이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여전히 하강은 무섭고, 추락도 두려워서 퀵을 걸기 전 뒷걸음질 치는 다운 클라이밍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두려움도 ‘한 번 해보자’라고 다짐하면 언젠가 극복할 것이라 믿는다. 조금씩 성장할 내 모습을 기대하며, 오늘도 홀드를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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