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오마르 야기 전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UC버클리) 교수가 미국을 떠나 중국 칭화대에 전격 합류했다. 미국과 첨단기술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중국의 '인재 블랙홀' 전략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세계의 공장' 넘어 '세계의 두뇌' 되나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칭화대는 지난 3일 야기 교수가 인공지능(AI) 기반 연구센터에 합류해 연구팀을 이끌게 됐다고 발표했다. 그는 앞으로 AI가 신소재의 설계와 합성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그 개발 주기를 얼마만큼 단축할 수 있는지를 연구할 계획이다.
야기 교수는 임명식에서 "물 부족, 탄소중립, 지속가능한 발전과 같은 주요 환경 문제에 대응할 소재를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울러 "AI 기반 화학 분야의 젊은 과학자들을 양성하는 데도 기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더 빠르고, 더 저렴하며, 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소재를 만드는 데 AI 기술을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야기 교수는 금속유기골격체(MOF)에 관한 연구 공로로 리처드 롭슨 호주 멜버른대 교수, 기타가와 스스무 일본 교토대 교수와 함께 지난해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탄소를 포집·전환하고 사막의 공기에서 물을 수확하며 수소를 흡수해 청정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연구를 했다.
그는 UC버클리에서 약 200명의 연구자를 길러냈는데, 이들 가운데 절반이 중국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중국 학생들이 과학적 문제에 대해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이해력이 빠르다"는 말을 주변에 자주 해왔다고 SCMP는 전했다.
야기 교수는 1965년 요르단 암만의 팔레스타인 난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15세에 미국으로 건너갔고, 일리노이대에서 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과거에도 칭화대, 난징대, 푸단대 등 중국 주요 대학들과 협력해왔다.
세계적 석학들이 중국행 택하는 배경
최근 5년간 하버드대·브라운대 등 미국 주요 대학에서 활동하던 세계 정상급 과학자들이 잇따라 중국 대학과 연구기관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AI, 재료과학, 생명공학,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수학·통계 등 전략 분야 '간판급 인재'가 줄줄이 중국행을 택하면서 중국이 첨단기술 경쟁력이 빠르게 향상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은 꾸준히 중국계 해외 과학자의 귀국, 공동연구센터 설립, 겸직 교수 초빙 등을 통해 인재 네트워크를 넓혀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한 단계 더 나아가 미국 최상위 대학에서 장기간 활동한 석좌급 연구자들을 중국 대학의 전임 교수나 연구소장으로 영입하고 있다.
하버드대 출신 찰스 리버가 대표적이다. 리버 교수는 나노과학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다. 2020년까지 하버드대 화학과장을 지냈다. 지난해부터는 칭화대 선전국제대학원에 재직하고 있다.
브라운대·스탠퍼드대 출신 가오화젠 교수도 2024년 칭화대로 자리를 옮겼다. 재료공학 석학인 그는 약물에 내성을 갖고 있는 박테리아를 없앨 수 있는 생체의학 소재 등을 개발해 여러 과학상을 타기도 했다.
하버드대 통계학자 류쥔 교수도 지난해 칭화대로 자리를 옮겼다. AI 시대에 통계학과 데이터과학이 기초 인프라로 부상한 상황이라 류쥔의 중국행이 학계 주목을 받았다.
베이징 학계 관계자는 "중국 지도부는 최고급 인재 부족을 공공연하게 인식해왔다"며 "글로벌 첨단기술 패권 경쟁에서 장기적으로 우위를 차지하려면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을 이끌 인재가 필요한 생각이 많다"고 말했다.
통상 해외 석학들은 중국 정부의 막대한 연구자원 집중 투자와 연구 인프라 활용에 매력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수직 하나의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연구 거점과 인재 양성 체계를 설계할 권한을 갖기 위해 중국행을 택하고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업계에선 미국의 대중 첨단 기술 통제와 연구 보안 심사가 강화될수록 중국계 과학자뿐 아니라 비중국계 석학도 연구 환경과 자금, 실험 인프라를 기준으로 중국행을 검토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AI, 재료과학, 생명공학, 뇌과학, 양자, 통계·수학처럼 대형 장비와 장기 투자가 필요한 분야에서 중국 대학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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