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좌파야 우파야" 퍼붓는 세상 흑백논리를 좋아하는 뇌가 문제

1 day ago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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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진행된 실험에서는 사회적으로 배제된 참가자들이 신성하지 않은 가치에 대해서도 신경학적으로 힘차게 반응하는 양상을 보였다.

레오르 즈미그로드 박사의 신간 '이데올로기 브레인'은 정치적 이념과 뇌의 관계를 탐구하며, 이데올로기가 개인의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극단주의적 사고는 결핍과 두려움에 의해 강화되며, 그 해결책으로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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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실수 두려워하는 기계
생존을 위한 인정욕도 갖춰
이데올로기가 그 갈증 충족
집단 속하며 외로움도 해결
결핍하면 정치에 더 잘 빠져
세계 극단주의 휩쓰는 이유
사회적 대화와 소통이 중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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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전투적인 지하디스트인 모로코계 젊은 남성을 대상으로 수년 전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따돌림당하는 뇌가 무슨 일을 벌이는지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참가자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공을 던지는 '사이버 볼' 게임을 했다. 일부 참가자는 공을 두 번 받은 이후 아예 공을 받지 못했고 어울리지 못한 채 게임을 쭉 지켜봐야만 했다. 그다음 과학자들은 두 가지 상황을 던져주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관찰했다. 하나는 무슬림 땅에서 미군을 쫓아내는 것처럼 목숨도 바칠 수 있는 신성한 가치였고 다른 하나는 스페인 학교에서 이슬람 경전을 가르치도록 투쟁하는 것처럼 소중하기는 해도 어느 정도 타협할 수 있는 가치에 관한 것이었다. 놀랍게도 사회적으로 배제당한 경험을 가진 참가자는 성스럽지 않은 후자의 가치에도 신성한 가치와 같은 신경학적 특징을 보였다. 버려진 기분이 들면 중요하지 않은 가치조차 기꺼이 싸우고 죽어갈 만한 가치가 된다.

전 세계에서 기승을 부리는 정치적 극단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극단주의에 빠진 사람의 뇌는 무엇이 다른 것일까. 진보와 보수의 뇌는 따로 있는 것일까. 신간 '이데올로기 브레인'(원제: Ideological Brain)은 정치라는 영역을 신경과학, 심리학과 연결해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책이다.

이데올로기 브레인 레오르 즈미그로드 지음, 김아림 옮김 어크로스 펴냄, 2만2000원

이데올로기 브레인 레오르 즈미그로드 지음, 김아림 옮김 어크로스 펴냄, 2만2000원

저자 레오르 즈미그로드 박사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신경과학자로 2020년 '포브스' 30세 이하 과학 분야 30인에 선정된 바 있는 젊은 석학이다. 그는 도파민과 정치 성향의 상관관계를 입증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이데올로기라는 단어는 정치적이고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단어였지, 과학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사회 전체 신념의 집합체일 뿐 아니라 개인의 뇌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뇌는 크게 두 가지 근본 원리를 갖고 있다. 첫째는 예측을 좋아하는 '예측 기계'다. 과거의 패턴을 파악하고 미래를 예견하고자 한다. 정확성을 좋아하며 오류를 최소화하려 한다. 둘째는 생존을 위해 외부와 소통하며 타인의 관심을 원한다. 이해와 인정,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한다. 이데올로기는 이 두 가지 욕구에 대해 아주 매력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복잡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확실하며 예측 가능한 패턴과 공식을 보여주고 우리가 속할 집단이 어디인지 분명하게 알려준다. 뇌가 이데올로기를 갈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선 사례와 비슷한 맥락에서 사회적 배제감을 느낀 학생들은 갱단이나 활동가 단체에 가입하도록 유도할 때 상대적으로 더 잘 설득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위해 싸우고 목숨을 버리고자 하는 경향도 더 크다. 집단에 속하고자 하는 심리적 욕구를 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또 외로움을 느끼거나 결핍을 느낀 뇌는 공허함을 메우고자 자신이 속할 집단을 찾으려 한다.

미국의 한 연구팀은 재정 자원이 한정돼 있다고 느끼는 결핍 조건에서 참가자 중 백인이 흑인에 대해 인종차별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원의 희소성과 결핍은 우리 안의 인종차별주의, 독단주의, 근본주의,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뇌의 편도체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처리하기 위해 극단주의로 빠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리 위 기차선로 위에 서 있다고 상상해보자. 트롤리 손수레 한 대가 통제력을 잃고 철로를 따라 질주하고 있다. 이 트롤리는 당신의 동료나 동네 주민 5명을 덮치려 한다. 당신이 개입하지 않으면 익명의 무고한 사람 5명이 죽음을 맞이하고 직접 개입하는 즉시 나의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집단을 위한 순교냐 나의 안전이냐를 놓고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서 있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나. 이 선택의 확신도는 몇 퍼센트인가. 집단을 위해 기꺼이 죽겠다고 답한 이타적인 사람들은 인지적 유연성 테스트에서 좀 더 경직성을 띠었다. 뇌가 좀 더 경직돼 새로운 정보나 관점을 수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이다. 이처럼 이데올로기는 개별 인간의 자율성과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저자는 극단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뇌는 의사결정 중심인 전전두엽 피질에 도파민이 비교적 덜 집중돼 있다는 자체 연구 결과도 소개하고 있다. 광신적 믿음은 나선형처럼 점점 가속화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한번 빠져들면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정치 성향이 타고나는 것인지, 아니면 만들어지는 것인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단 분명한 것은 독단주의의 유혹은 힘이 세다.

사실 이데올로기의 어원은 '이데아(관념)'와 '로고스(논리)'의 결합이다. 18세기 처음 태동했을 때만 해도 인간의 사고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중립적 개념이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이데올로기를 조롱의 언어로 썼고 그 후 마르크스가 지배구조를 정당화하는 '허위 의식'으로 간주하며 정치·철학적 개념으로 변질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극단적인 정치와 이념이 휩쓸고 있다. 진보와 보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 음모론, 우월주의, 인종차별주의, 급진주의 등이 정치의 영역을 넘어 일상의 감정과 윤리, 정체성에까지 침투하고 있다.

이념적 갈등이 심화하는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책이다. 또 이데올로기를 갈망하는 뇌의 본성에 맞설 때 극단주의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정치적으로도 대화와 소통의 문화가 절실하며 인간 소외와 고독, 결핍의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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