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詩, 6명 시인들 목소리로 음악이 되다

6 hours ago 2

'문학주간 2025' 폐막식서 낭독회
신작 시집 후배 시인들과 함께 읽어
시의 여운으로 소극장 채운 2시간
"시의 유머, 절망 속 피어나는 매운 연기"

  • 등록 2025-09-21 오후 1:37:09

    수정 2025-09-21 오후 1:54:03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마지막으로 나는 여자 하나를 이 집에서 오려내야 한다 / 종이처럼 가벼이 해야 한다 // 나는 저 여자의 이름을 알아 // 오려낸 그 여자를 책갈피 속에 고요히 눕혀야 한다” (‘저녁의 인형놀이’ 중)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열린 ‘문학주간 2025’ 폐막식 ‘김혜순, 시 하다-신작 시집 낭독회’에서 김혜순 시인이 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연극과 무용을 주로 공연하는 이곳에 시인 6명이 등장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주간 2025’ 폐막식으로 마련한 ‘김혜순, 시 하다-신작 시집 낭독회’. 김혜순 시인의 시 ‘저녁의 인형놀이’ 낭독을 마친 시인들은 무대 위에서 가볍게 인사를 하고 퇴장했다. 그러나 관객들은 여운이 오래 남은 듯 자리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이날 행사는 김혜순 시인이 최근 출간한 신작 시집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 낭독회였다. 김혜순 시인은 후배 시인 김상혁, 신해욱, 안태운, 유선혜, 황유원 등과 함께 약 2시간 동안 신작에 실린 시를 함께 낭독했다.

다른 ‘북토크’처럼 출연자들의 인사말이나 소감, 질의응답은 없었다. 김혜순 시인이 사전에 녹음한 시집 속 ‘시인의 말’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고, 곧바로 무대 위에 등장한 김혜순 시인이 무대 왼편에 앉아 이번 시집 첫 번째 시 ‘그리운 날씨’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나지막한 김혜순 시인의 목소리가 그가 쓴 시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열린 ‘문학주간 2025’ 폐막식 ‘김혜순, 시 하다-신작 시집 낭독회’에서 김혜순 시인이 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날씨와 나, 둘만 있어 / 다정했다 매서웠다 날씨의 기분 // 나는 날씨와 둘만 살아 / 날씨에 따라 당연히 옷을 갈아입고 / 춤춰줄까 물구나무서줄까 물어봐” (‘그리운 날씨’ 중)

이어서 차례차례 무대에 오른 후배 시인들은 혼자서, 또는 시인들과 같이 시를 낭독했다. 시인들의 목소리는 악기였고, 김혜순 시인이 쓴 시는 그들이 연주하는 악보였다. 시와 목소리, 그리고 조명만이 만들어낸 무대는 언어가 어떻게 음악이 되는지를 온몸으로 체감하게 했다. 낭독회의 여운을 더 깊이 간직하려는 듯 관객들은 극장 로비에서 진행된 김혜순 시인의 사인회에도 길게 줄을 늘어섰다.

김혜순 시인은 캐나다 그리핀시문학상, 스웨덴 시카다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독일 세계 문화의 집 국제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번 시집은 ‘죽음 3부작’인 ‘죽음의 자서전’(2016), ‘날개 환상통’(2019),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2022) 이후 3년 만의 신작이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문학주간 2025’ 폐막식 ‘김혜순, 시 하다-신작 시집 낭독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시인 김상혁, 황유원, 신해욱, 안태운, 유선혜, 김혜순.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날 낭독회에서 이번 시집에 대한 김혜순 시인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대신 낭독회를 위해 김혜순 시인이 직접 쓴 오프닝 글을 통해 이번 시집과 시에 대한 시인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혜순 시인은 “오늘 낭독하게 될 이 시집의 시들은 아주 최근에 씌어진 것들”이라며 “이 시들을 쓸 때, 저와 타자, 저와 동물·식물·사물·광물의 경계를 지우려고 했다. 시간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도 넘나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시들에 담긴 유머가 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시가 수행하는 죽음으로부터의 단절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한없는 절망의 나락에 떨어졌을 때, 피어나는 매운 연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되어졌다”며 “제가 사용하는 언어가 대상을 죽이는 차가운 관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상을 어떻게 풀어줘야 하는지, 그것을 하는 것이 시라는 장르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내내 했다”고 전했다.

또한 김혜순 시인은 “시는 거대 담론도 아니고, 구체적인 방향 제시도 아니지만 그런 것을 하여는 어떤 의지의 발현이고, 그것에 대한 예술적인 일어섬이다”라며 “이 시들을 쓰면서 시라는 장르가 수행할 수 있는 담론과 맞붙은 어떤 이미지와 리듬의 일어섬에 대해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열린 ‘문학주간 2025’ 폐막식 ‘김혜순, 시 하다-신작 시집 낭독회’에서 김혜순 시인이 사인회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