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개봉 영화 '미키17'원작소설 분석해보니
'기생충' 이어 6년만의 신작
행성개척 임무 맡은 복제인간
죽은 줄 알았는데 생존 후 귀환
그새 복제된 '새로운 나' 등장
기억 통해 인간 정체성 사유해
봉준호 감독의 8번째 장편영화 '미키17'이 오는 2월 28일 한국 개봉을 확정했다.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기생충' 이후 6년 만의 봉 감독 신작이다.
'봉준호 신작'이란 설명만으로도 가슴이 떨려오는 '미키17'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아직 시사회도 열리지 않은 새 영화의 내용을 예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지만 '미키17'은 좀 다르다. 이 영화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7'을 원작으로 삼았기에 기본적인 설정은 예측 가능해서다.
봉 감독의 영화 '미키17' 스토리라인의 근거가 될 409쪽짜리 SF 소설 '미키7'(황금가지 펴냄)을 펼쳐 밑줄을 그어봤다(단 영화관에 앉기 전 한 줌의 정보조차 알고 싶지 않다면 이 기사를 읽지 않는 게 좋다).
'미키7'은 '소모용 인간'을 뜻하는 '익스펜더블'을 통해 인간의 불멸을 이야기한 작품이다. 첫 문장은 이렇다.
'지금껏 죽어 본 중에 가장 멍청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9쪽)
31세 남성 주인공 '미키7'은 지난 8년간 6번 죽었다. 지금은 7번째 삶이다. 익스펜더블은 미완성 백신 실험, 치명적인 방사능 피폭 등으로 삶이 종결되면 다시 태어나는데, 죽은 뒤 '바이오 프린팅'으로 새 몸이 생성되면 미리 업로드된 기억(정신)이 삽입돼 다음 생이 가능한 특이한 존재다. '전임자의 기억'이 유지되는 불멸의 존재는 '온몸의 뼈가 조각나고, 피부가 녹아 증발하고, 산 채로 불태워져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이런 신체적 능력 덕분에 익스펜더블인 미키7은 극도로 위험한 행성 개척 업무를 맡는다.
소설은 7번째 생(生)을 살던 미키7이 왼발을 헛디뎌 동굴 깊숙한 곳으로 추락하며 시작된다. 생체신호가 끊기자 상부는 미키7이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미키7은 살아 있었다. 그러나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숙소에 돌아왔을 때 누군가 미키7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상부가 '미키8'을 벌써 복제한 것이다. 자, 미키7과 미키8은 사고 순간을 제외하곤 모두 동일한 기억을 가진, 심지어 DNA도 똑같은 두 개의 몸이다. 이제 질문은 불가피하다. '둘은 같은가, 다른가?'
미키7과 미키8은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다. 각자가 서로를 '또 다른 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만 합의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존재가 발각되면 둘 다 '시체 구덩이'로 끌려가 같이 소거돼서다.
정말 큰 문제는 '배급량'이다. 우주 공간 특성상 식량이 부족한데 1인당 하루 배급량은 1400칼로리뿐이다. 한 명의 배를 채우기도 부족하다. 둘은 야위어간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긴 역사에서 불멸하는 존재는 신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소설 '미키7' 속 익스펜더블은 '2등 시민'으로 인간 이하 취급을 받는다. 독특한 사회 분위기 혹은 신앙이 그곳에 엄존하기 때문인데, '한 명의 정신엔 하나의 육체만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나탈리즘 때문이었다.
익스펜더블은 나탈리스트들에게 혐오스럽고 역겨운 하등 생물로 여겨진다. 미키7과 미키8은 나탈리스트들에게 들키지 않고 살아남을까.
소설 '미키7' 속 주인공 미키는 7번째 삶이고, 영화 '미키17' 속 주인공 미키는 17번째 삶이란 점이 두 작품의 차별점이다. 따라서 봉 감독이 원작 소설을 영화에서 어떻게 변주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원작 소설도, 봉 감독의 신작도 동시에 '기억과 정체성'을 질문하리란 추정은 가능하다.
불멸에 관한 거대한 사고 실험인 소설 속 한 단락을 보자.
"당신은 죽는다. 당신은 죽고 내일 아침부터 다른 사람이 당신의 삶을 대신 산다. 그는 여러분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당신이 아니다. (중략) 당신은 전날 밤 잠자리에 들었던 그가 아니다. 당신은 겨우 오늘 아침부터 존재했을 뿐이고 오늘 밤 눈을 감을 때까지만 존재한다. 자신에게 물어보자. 만약 그렇다면 당신의 삶에서 실제적으로 달라지는 점이 있을까?"(19쪽)
육체의 재생이 가능하고, 이전 육체의 기억도 새 육체에 이식할 수 있다면 이전의 '나'와 새로 태어난 '나'는 같은 인간일까? 미키7과 미키8은 한 존재의 본질적인 정체성을 두고 대화하기도 한다. "그(새 존재)가 나(원 존재)라고 생각하는 이상, 사람들이 그를 나라고 생각하는 이상, 그는 내가 아니라는 걸 증명할 방법이 없고, 그럼 그는 나야."(335쪽)
봉 감독의 전작 '기생충'은 제한된 자본을 두고 피 튀기게 싸우는 기택 부부와 문광 부부 간 계급전투를 담아냈다. '미키7'으로 '미키17'을 추정해본다면 '두 미키'는 제한된 칼로리(통제되는 배급량)란 조건 속에서 연대하는 인간이란 주제를 다룰 것으로 짐작된다. 소설 후반부엔 벼랑 끝에 내몰린 두 미키가 상부 명령에 반기를 드는 표정이 자세하다. 영화 '미키17'에선 두 미키가 어떤 운명의 어둠 속으로 치달을까.
봉 감독은 오는 20일 한국 기자들과 만나 '미키17'을 소개한다.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