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지하철 1호선 시청역 출구를 나서면, 어디선가 은은한 멸치 향이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치고 그 냄새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 냄새를 되짚어 5분 정도 걷다 보면 노란색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대선칼국수’. 이름 자체가 주는 강직함과 소박함이 이미 풍요로운 한 끼를 예약한 듯싶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반기는 건 부산스러우면서도 질서 정연한 주방의 소리다. 칼국수 면을 한 움큼 쥐고 쫙쫙 뽑아내는 손놀림, 깊고 맑은 육수가 보글거리는 주방의 숨결. ‘아, 이 집은 제대로 된 노포구나’ 하는 느낌이, 말보다 먼저 가슴에 와닿는다.
자리에 앉아 칼국수를 주문하면, 주방에서부터 육수 향이 먼저 달려온다. 멸치와 다시마가 오래 우러난 국물은 군더더기가 없고, 한 숟가락 뜨는 순간 마음이 먼저 풀린다. 쑥갓이 살짝 눌러주는 산뜻한 향, 들깨와 김가루의 고소함, 손으로 뽑은 면발의 은근한 탄력까지…. 시원하면서도 깔끔하고, 담백하면서도 깊다.대선칼국수가 처음부터 대전 신도심에 속하는 둔산에 있었던 건 아니다. 1954년 대전역 앞에서 시작해 중구 대흥동 시대를 거쳐 2001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71년이라는 전통도 전통이지만, 이 집의 진짜 매력은 칼국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메뉴판 한쪽에 소박하게 적힌 수육이야말로 단골들이 이 집을 기억하게 하는 특별한 맛이다. 김이 피어오르는 접시 위에는 섞박지처럼 어슷하게 썰어낸 고기가 올려져 있다. 기름이 번들거리지 않고 냄새 한 점 없이 부드럽다. 껍데기는 쫀득하고 살코기는 부서지듯 고운데 젓가락으로 집어 들면 탱탱함마저 느껴진다. 칼국수 국물 한 모금, 수육 한 점이 이어지면 그 조화가 참 마뜩하다. 한 끼의 소박함이 안겨주는 깊은 호사라고 해야 할까.
필자도 대전이 연고지여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대선칼국수는 현지 사람들이나 지금은 대전을 떠나 타지에 사는 이들에게 공히 노스탤지어를 안겨주는 노포다. 구도심인 대흥동에 있을 때부터 식객과 단골들에게 친정 같은 역할을 했다. 집밥에 물리거나 늘 거기서 거기인 식단이 고민스러울 때 가족과 함께 외식할 장소로 선택받는 곳이었다. 아니면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학교 동창이나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약속 장소로 잡는 곳이 대선칼국수였다. 왜냐하면 그 선택에 결코 후회할 일이 없었으니까.
이곳 ‘명품’ 칼국수 가격은 9000원, 수육은 소(小)자가 3만 원이다. 대선칼국수 사람들은 매일 오전 11시 반에 문을 열고 오후 10시에 문을 닫는다. 앞으로도 최소 70년은 더 갈 집이다.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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