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특유의 재치 있는 언어와 유희, 희극의 정교한 구조가 돋보이는 셰익스피어의 대표 희극 ‘베니스의 상인’이 오는 7월 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올라온다. 극은 개막 전부터 화려한 캐스팅 라인업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역에는 박근형이, 베니스의 법과 질서를 상징하는 ‘공작’ 역에는 신구가 출연한다.
계약과 거래의 상업도시 ‘베니스’와 사랑과 선택의 목가적 공간 ‘벨몬트’. 서로 다른 두 세계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샤일록과 안토니오 사이의 한 건의 계약을 통해 서서히 얽히게 되고, 끝내 안토니오의 목숨을 건 재판으로 치닫는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대표 희극이자, 올여름 기대작으로 꼽히는 연극 ‘베니스의 상인’에 오경택 연출을 주축으로 국민배우 신구, 박근형이 참여해 힘을 보탰다. 이야기 중심에 있는 인물이자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역에는 박근형이 전 회차 단독 원캐스트로 무대에 오른다. 베니스의 상인이자 친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건 ‘안토니오’ 역에는 이승주와 카이가, 지혜와 재치로 법정의 흐름을 뒤바꾸는 ‘포셔’ 역에는 최수영과 원진아가 함께 한다. 사랑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바사니오’ 역에는 이상윤이 출연한다. 베니스의 법과 질서를 상징하는 ‘공작’ 역은 신구가 맡았으며, 샤일록의 딸로 아버지를 떠나 사랑을 선택하는 ‘제시카’ 역에는 김슬기와 김아영이 참여한다.
이 밖에도 박명훈, 조달환, 최정헌, 한세라 등뿐만 아니라, 이번 ‘베니스의 상인’에선 신구와 박근형이 참여한 ‘연극내일기금 프로젝트’에 선정된 배우들까지 함께 참여해 의미를 더한다.
오늘날 펼쳐지는 셰익스피어의 ‘가장 논쟁적인’ 희극
‘베니스의 상인’은 오늘날에도 가장 논쟁적으로 읽히는 셰익스피어 작품 중 하나이다. “희극의 형식을 취하지만, 그 중심에는 비극적 긴장이 내포되어 있다”(-하버드대 인문학 교수 스티븐 그린블라트)라는 말처럼, 희극으로 시작해 웃음이 걷힌 자리엔 ‘정의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이 남는다.
1596~1598년 사이에 집필된 이후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극은 시대마다 전혀 다른 얼굴로 무대에 올려져 왔다. 샤일록을 희극적 악인으로 다루던 시대에서 비극적 인간으로 재해석하는 시대를 거쳐 인종과 종교, 법과 자비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시대까지 왔다.
지난 5월 12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오경택 연출은 “‘베니스의 상인’을 희극으로 이야기하지만, 현대에는 문제극으로 분류한다. 왜냐하면 희극의 얼굴을 하고, 비극적 내용이 많이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극중 샤일록은 유대인 차별, 혐오로 인해 생겨난 복수심으로 안토니오의 생명을 앗으려고 하고, 이러한 행위가 잔인하고 폭력적이라 샤일록은 보통 악인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동시대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차별과 박해를 받은 샤일록을 마냥 악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이번 무대는 이러한 의문에서 시작해 ‘선이 악을 이기는’ 희극적인 결말 대신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이에 대해 오경택 연출은 “희극으로 시작해 비극의 질문으로 끝나는 법정극이라 장르를 명명했다”고 말하며, 이어 “돈과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자비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열심히 만들도록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연극 ‘베니스의 상인’ 오경택 연출, 출연진과의 Q&A
“훨씬 더 공감하고,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샤일록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
(※ 다음 기사는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질의응답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Q 신구 선생님과 박근형 선생님은 ‘고도를 기다리며’에 이어 고전 무대에 도전하고 계시다. 고전을 지금의 이야기로 올리는 것이 두 분께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A 박근형 신구 형님과 저는 연극 2세대로, 처음으로 대학극, 동아리 연극을 했다. 우리가 고전을 계속 공연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위상에 비해 연극 부분 특히 희곡에 대한 움직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장르에 종사하다 연극에 돌아와서 보니 방법부터 구성까지 50~60년 전과 변화가 없었다. 형님과 4년 가까이 정통극을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잘하고 있다는 격려의 말씀도 들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정통극을 할 것이고, 좋은 희곡이 나왔으면 한다.
Q 故 이근삼 극작가가 1959년 연극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을 연기한 박근형 배우를 ‘가장 큰 수확’이라고 평한 바 있다. 67년 만에 다시 샤일록으로 무대에 오르게 되었는데.
A 박근형 학창시절 연극을 할 땐 마음대로 해체하고 마음대로 표현했었다. 당시 내가 했던 것이, 교수님께서 보시고 괜찮다고 생각하셔서 글을 써주신 것 같다. 소극장 시절부터 대극장으로 옮겨오는 동안 정말 좋은 연극을 하기 위해 애를 써 왔다. ‘베니스의 상인’은 완성이 되었어도 공연이 끝나는 날까지 배우가 실험을 할 수 있는 극이다. 과거 나는 샤일록을 단순하게 권선징악 구조로 표현했던 것 같다. 당시엔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하나라고 생각해 즐거운 희극을 만들었다. 60년이 지나 이제는 진정한 배우이자 예술가로서 샤일록이란 인물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집중하고 있다. 지금은 ‘사람’을 표현하고자 한다. 그때보다 완숙되고, 조금은 더 나을 것 같다. 자신 있게 내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Q ‘베니스의 상인’은 과거엔 선악구도가 분명했던 희극인데, 지금은 그렇게 볼 수 없다. 이 작품을 해석하며 지금 관객에게 어떤 면을 보여주고자 하는지 궁금하다.
A 오경택 유대인인 샤일록의 복수 행위의 잔혹성 때문에 그가 악인으로 비치는 현상이 많았다.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자연스럽게 ‘샤일록이 나쁜가?’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 이유는 샤일록이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이 본인이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입장에서 봤을 때, 비록 샤일록이 잘못을 저질렀으나 판결을 통해 재산을 몰수하고, 종교적 개종을 강요하는 것 자체도 상당한 폭력일 수밖에 없는 행위이자 정의라고 볼 수 없다는 시점을 가지고 있다. 이번엔 직접 각색을 통해 샤일록과 딸 제시카를 중심으로 원작의 구조를 유지하되, 그의 인간적인 모습과 동기 등을 강화했다. 평소 다른 매체에서 보셨던 것보다 훨씬 더 공감하고,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샤일록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이다.
Q 신구, 박근형, 이상윤 배우는 원캐스트로 진행된다. 더블캐스트인 다른 역할들에 비해 부담이 없는지.
A 이상윤 그동안 더블, 트리플캐스트로 연극을 해왔다. 박근형 선생님과 함께 연극을 했을 때 선생님께서 ‘연극은 한 팀으로 구성을 해서 해야 한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세일즈맨의 죽음’ 지방 공연에 갔을 때 일정상 한 달 정도를 혼자 한 적이 있는데, 그러다 보니 생기는 호흡들이 있더라. 이런 걸 선생님이 말씀하셨구나 싶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근형 선생님이 샤일록을 혼자 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나 역시 원캐스트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습도 저는 (캐스팅별)두 번씩 하고 있다 보니 경험도 늘고, 다른 배우들과 티키타카하며 각자의 디테일들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은 것 같다.
Q 카이 배우는 차기작으로 뮤지컬이 아닌 연극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 비해 극장 규모가 커졌는데,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A 카이 평소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좋아했다. 음악, 오페라, 영화부터 최근에 셰익스피어 책도 즐겨보는 편이다. 지금까지 연극 ‘라스트 세션’,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등을 하며 (제작사)파크컴퍼니에 셰익스피어 작품을 꼭 한번 해보고 싶다고 의사를 여러 번 전달하기도 했다. 뮤지컬과 연극은 형식적으로 다르다. 배우가 관객과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라는 기본적인 요소가 나를 연극 무대로 이끄는 가장 큰 요소인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도 셰익스피어 작품 속 언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느끼고 표출하는 데 노력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신구, 박근형 선생님과 함께 작업을 한다는 것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Q 최수영, 원진아 배우가 맡은 포셔 역은 고전극임에도 주체적인 여성으로 그려졌는데, 어떻게 표현하고자 하는지 궁금하다.
A 최수영 포셔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여성 캐릭터이다. 작품 제안을 받았을 때 정말 반가웠고, 리딩을 거듭할수록 작품이 담고 있는 다양한 정서와 메시지 가운데 특히 ‘선택권’이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극중 인물들은 각자 선택에 대한 딜레마에 직면하는데, 포셔는 시대적 제약과 아버지의 유언 때문에 선택권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하려는 모습이 멋지고 지혜롭게 느껴졌다. 현대적인 시대에 맞춰 포셔 캐릭터에 나의 매력을 어떻게 더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대본과 원작을 볼 때 고전이다 보니 포셔는 우아하고, 클래식하고, 지혜가 많아 보였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정의를 위해 남장을 하고 재판에 참여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재치와 모험심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포셔를 보다 입체적인 인물로 표현하고자 연출님과 상의하며 캐릭터의 개성을 살리려고 하고 있다.
Q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은 특히 상징적인 공간이다. 해오름에서 연극 작품을 올리는 경우도 많지 않은데, 공간과 관련해 신구, 박근형 선생님의 특별한 기억이 있는지.
A 신구 나로서는 새삼스럽다. 국립극장이 명동에 위치해 있다가, 지금 자리에 신축했다(1973년). 첫 작품이 이순신 장군의 공연이었던 것 같은데 그 당시가 생각이 난다. 그 뒤로 국립극단의 단원으로 있으며 몇 작품을 했었다. 극장 규모가 공연을 하기엔 크다. 제가 이 작품을 의논하면서 ‘그 극장이 약 1,000여 석이 넘는데, 공연 전체가 만석이 되려면 공연 기간 한 달간 3만 명은 와야 하지 않겠냐’라는 얘기를 했다. 이 도시가 천만 도시라고 하는데 3만 명을 부르는 게 무슨 일인가 했다. 어떻게든 채워보자고 얘기를 하고 있다. 크게 홍보가 돼 극장을 채웠으면 한다.
박근형 국립극장 무대에 올랐을 때 느낀 점이, 너무 커서 한구석에서 연기하는 것 같았다. 제 생각에는 이 극이 상업극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서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상업극이 나오는 연극이라는 첫 번째 발걸음이라 생각이 들고 완성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Q 유대인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피해자였지만, 오늘날 국제 정세 속에선 가해자의 위치에도 놓여 있다. 또한 ‘베니스의 상인’을 읽다 보면 샤일록은 정당한 계약서를 가지고 법정으로 향하는데, 이런 식의 재판이 과연 가능했을까 하는 새로운 시선도 생긴다.
A 오경택 사실 샤일록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 제 생각엔 모든 인간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선과 악으로 나뉠 수 있고, 상황의 선택에 따라 그 공정성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선택적 공정성’이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작품 속엔 이중성, 양가성, 복잡성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담겨 있다. 답이 내리는 것이 아닌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 질문은 ‘정의란 무엇이고, 무엇이 공정한 것이고,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가’라는 것이다. 연극은 답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좋다. 이번 극을 재미있게 보다가 ‘이건 뭐지?’라는 질문이 가슴 속에 자리하면 어떨까 하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글 매경 시티라이프부 이승연 기자lee.seungyeon@mk.co.kr][사진 파크컴퍼니]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34호(26.06.1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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