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나리]외교장관에게 필요한 ‘방념(放念)’과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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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리 정치부 기자

신나리 정치부 기자
외교부 조직 내에는 다른 정부 부처에선 잘 쓰지 않는 ‘방념(放念)’이란 독특한 표현이 있다. ‘OO국에 전달해 해결했으니 아까 요청드린 건은 방념하십시오’와 같은 방식으로 사용된다. 사전적 의미는 ‘마음을 놓는다’는 뜻이지만 용례를 들어보면 미묘한 뉘앙스가 있다. ‘잊어버리지는 말되, 우선순위에선 제쳐 두라’는 의미라는 게 전현직 외교관들의 공통 해석이다. “방념하라기에 가뿐한 마음으로 술 마시고 잤다가, 다음 날 새벽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욕을 먹으며 일어났다”는 한 외교관의 전언을 보면 ‘마음을 놓는다’는 뜻과는 거리가 있다.

이 단어가 떠오른 건 최근 조현 외교부 장관의 ‘뒤끝’ 있는 행보 때문이다. 장관 지명 첫날 “취임하면 미국부터 먼저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자 그는 취임 후 보란 듯 이례적인 ‘선(先)일본 방문’을 결정했다. 이 결정 직후 외교부가 “지명 당시 조 지명자의 언급은 미국 방문에 앞서 일본을 먼저 갈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는 뒤늦은 해명을 내놓은 건 더 이례적이었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14일 기자들과 만나 “조 장관이 지난달 말 미국보다 일본을 먼저 찾은 건 이재명 대통령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관 임명 한 달이 다 돼 가는데도 조 장관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제기된 부동산 ‘투기’ 의혹에 빠뜨리지 않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달 초 한미 외교장관 회담 출장길엔 이 의혹을 지적한 한 칼럼에 개인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감을 표했다. 지난주에 비슷한 내용의 또 다른 칼럼을 겨냥해선 “매체 품격을 떨어뜨린다”며 저격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야당이 “한미 관세협상 등 중대한 외교 현안을 앞두고 있으니 개인 공격은 자제하자”며 청문 보고서 통과에 대승적으로 합의했는데도 여전히 청문회에서 과거 부동산 투자 의혹을 충분히 해명하지 못했다며 못내 아쉬워한다.

외교 수장의 이런 대응이 이 시점에 국익과 실용 외교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근래 장관의 대외 메시지들은 더 아슬아슬하다. 3일 보도된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중국이 주변국들에 다소 문제가 되고 있다”고 밝힌 직후 중국 측은 즉각 반발했고, 급기야 대통령실이 이례적으로 별도 입장문을 냈다.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을 향한 한국의 입장을 묻자 동북아 변화 상황이 더 시급하다는 취지로 말하며 “솔직히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살피는 사치(luxury)를 누릴 수 없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이 각각 6일, 4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 40여 년 외교관으로 현장을 누빈 조 장관이라면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필요한 것에 선택과 집중을 하고 불필요한 것은 방념해야 한다. 외교장관이 회담 출장길에도 즉각 개인 신상 해명에 나서는 것보다 국익에 도움 되는 전략적 메시지를 다듬고, 협상 의제를 빈틈없이 챙기는 모습에 국민들은 더 박수를 보낼 것이다. 자기방어는 방념하고 미국이 요구하는 ‘동맹현대화’와 우리 앞에 놓인 여러 혼란에 치밀하게 대처하는 자세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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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리 정치부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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