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성민]치매 인구 100만 한국, ‘국가책임제’ 환상 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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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정책사회부 차장

박성민 정책사회부 차장
지난해 일본을 방문해 치매 노인을 위한 소규모 공동주택인 ‘그룹홈’을 취재했다. 일반적인 대규모 요양시설과 달리 층마다 5∼9명씩 소규모로 맞춤형 돌봄을 하는 것이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이다. 3개 층에 총 27명이 거주 중인데, 이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는 25명이나 됐다. 야간에도 돌봄 인력 1명당 환자 수를 3명 이내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치매 환자라고 해서 늘 시설에만 머물지 않는다. 아침 식사를 마치면 두세 명씩 직원과 짝을 이뤄 산책을 나간다. 근처 유치원 아이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해 함께 그림도 그리고, 핼러윈이나 명절에는 같이 파티도 연다. 담당자에게 시설의 문턱을 어떻게 낮췄는지 묻자 “인지증(치매) 노인이 고립되지 않고 이웃과 교류하며, 지역사회 일원으로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상당수 치매 노인이 집이나 시설에 고립돼 쓸쓸히 여생을 마치는 한국의 현실이 떠올라 씁쓸했다.

일본도 처음부터 치매에 관대한 사회는 아니었다. 오랜 수발에 지친 자녀의 간병 살인이 잇따랐고, 학대당하거나 홀로 방치되는 치매 노인이 많았다. 급속한 고령화로 2040년 치매 환자가 노인 인구의 절반인 약 18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자 일본 정부는 1980년대 후반부터 치매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2004년엔 ‘어리석다’는 의미의 치매를 ‘인지증’으로 바꿨다.

이런 노력들이 일본을 ‘치매와의 공존’에 성공한 사회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전역에 8000곳 이상 운영 중인 ‘치매 카페’다. 한 달에 한 번 치매 노인들이 점원으로 일하며 주문을 받고 손님과 어울리는 곳이다. 평소에도 치매 가족들이 교류하는 ‘사랑방’ 역할을 한다. 지방정부와 지역 기업도 이를 적극 후원한다. 정부와 기업, 치매 가족의 노력이 모여 ‘치매 환자는 격리 대상이 아니라 공존하는 이웃’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치매 인구가 100만 명에 이른 한국은 어떨까. 2017년 정부는 ‘치매 국가책임제’를 내세우며 치매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치매 전담 시설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중증 치매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낮추는 효과는 있었지만, 거의 10년이 지나도록 치매 가족의 돌봄 부담이 크게 줄었거나 치매에 대한 인식 개선을 이뤘다고 느끼는 국민은 많지 않다.

최근 발표된 제5차 치매관리 종합계획(2026∼2031년)도 마찬가지다. 치매 환자의 자산을 정부가 관리해 주는 ‘치매머니 공공신탁’ 도입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73개 세부 과제를 담았지만, 대부분은 치매 안심병원이나 주치의제 등 기존 사업을 확대하는 수준이다. 민간 복지 자원을 활용하는 고민도 부족하다.

가장 시급한 건 치매 환자의 절반 이상(52.6%)을 차지하는 홀몸노인과 돌봄 인프라가 취약한 농어촌 치매 환자에 대한 지원이다. ‘국가책임제’라는 거창한 구호보다는,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지방정부에 ‘맞춤형 치매 및 노인 정책’을 설계할 권한을 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부처 간 칸막이 탓에 분절적으로 쓰이는 재원만 잘 활용해도 일본과 유럽 부럽지 않은 치매 친화 마을을 여럿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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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정책사회부 차장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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