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전쟁과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도 4일 전세계 주식 시장이 사상최고치를 경신했다.
4일(현지시간) 로이터와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이 날 MSCI 세계지수는 최대 0.3% 상승한 888.24포인트를 기록해 2월에 기록한 이전 최고치 887.72를 넘어섰다. 이는 4월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 관세 발표 직후 기록한 저점에서 23%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이 같은 반등은 상호관세 유예 및 미중 관세전쟁 휴전 등 초기보다는 완화된 무역 전쟁 기조와 미국과 유럽 기업들의 실적이 기대보다 견조한 것으로 발표된 영향이 컸다. 또 최근 미국의 고용 시장 등 경제 데이터가 우려했던 것보다 양호한 것으로 나타난 것도 위험 선호 심리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
이 날 아시아 시장에서는 수개월 지속된 정치리더십 공백이 해소된 한국 증시가 2.7% 급등하는 등 아시아 기술주가 오름세를 보이면서 MSCI 신흥시장 지수가 1.2% 상승했다. 달러화 약세 속에서 신흥시장 통화 지수는 소폭 상승했다. 닛케이225는 0.8%, 홍콩 항셍지수는 0.6% 올랐다.
파인브리지 인베스트먼트의 글로벌 국가채권 및 경제 부문 책임자인 안데르스 파르게만은 "4월 초 몇 주 동안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했던 이후 신흥시장 심리가 급반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책의 불확실성은 여전하지만 미국 경기 침체 위협이 완화되면서 신흥 시장 투자자들이 탄탄한 신흥시장의 펀더멘털과 달러 약세, 그리고 긍정적인 기술적 요인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유럽 증시의 강세도 계속되고 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5개월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상승한 10대 주식 시장 중 8곳이 유럽에 있다. 달러 기준으로 독일 닥스 지수는 30% 이상 상승했으며 슬로베니아, 폴란드, 그리스, 헝가리등 도 20% 이상 올랐다.
범유럽 스톡스 600지수는 독일의 역사적인 재정 지출 계획과 유로화 강세에 힘입어 달러 기준으로 S&P 500 지수를 18%p 상회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 참가자들은 무역 및 재정 부채에 대한 우려가 미국 경제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회복력 있는 기업 실적과 예측 가능한 통화 정책, 미국 증시대비 매력적인 밸류에이션 덕분에 유럽 증시가 글로벌 투자 자금을 끌어들일 것으로 전망했다.
에드몬드 드 로스차일드 자산운용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벤저민 멜먼은 "투자자들이 트럼프의 무역 정책과 관련하여 'TACO'(Trump Always Chickins Out:트럼프는 항상 발뺌한다)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즉, 트럼프가 초기에는 과장된 위협으로 시작했다가 시장의 반응을 의식해 수위를 낮추는 것을 보며 투자자들이 트럼프의 과장된 위협에도 매도에 나서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무역 합의 위반을 비난하면 불확실성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협상이 매우 어렵다”고 말하며 양국의 무역 협상이 험난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1분기 실적 호조와 인공지능(AI)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높아지면서 주식 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AI 트렌드를 선도하는 엔비디아가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으면서 전 날 뉴욕증시에서 시가 총액 기준으로 세계 최대 기업이 됐다. 블룸버그 매그니피센트 세븐 지수는 4월 저점 이후로 30% 급등해 시가총액이 3조 5천억 달러 이상(약 4,783조원) 이상 증가했다.
김정아 객원기자 k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