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 인보사 사태 이웅열 1심 무죄
재판부 "과학에 대한 사법적 통제 생각해볼 필요"
2020년 기소후 4년4개월 만
"허가후에 성분 바뀐것 알아
이 회장 범죄 고의성 없어"
FDA, 과학적으로 안전성따져
우려 해소 후에는 임상 재개
한국선 판매 금지시키고도
수년간 소송·재판 허송세월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인보사)'의 성분을 속이고 제조·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인보사 사태'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접근 방식을 비교하며 "과학 분야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볼 문제"라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부장판사 최경서)는 약사법 위반과 사기,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와 시세조종, 배임증재 등 7개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이 회장에게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범죄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주식 차명 보유 관련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는 2019년에 이미 확정 판결을 받아 면소 판결을 내렸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이우석 전 코오롱생명과학 대표 등 대부분 임원들에 대해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코오롱과 코오롱티슈진, 코오롱생명과학 법인도 무죄 및 면소 판결을 받았다.
이날 선고는 2020년 7월 기소된 후 4년4개월 만에 이뤄졌다. 재판부는 선고에 앞서 "공판·증거기록만 15만장이 넘는다" "판결문이 450장에 달한다"고 언급하며 오랜 기간 이어진 재판을 실감하게 했다.
인보사 사태는 2017년 국내 첫 유전자 치료제로 품목 허가를 받은 인보사가 2019년 3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 과정에서 세포 성분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최초 보고한 '연골세포'가 아닌 종양 유발 가능성이 있는 '신장유래세포'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시작됐다. 식약처는 결국 그해 7월 인보사 판매 허가를 취소했고, 코오롱은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2020년 7월 검찰은 수사 끝에 이 회장이 2017~2019년 성분 요류를 인지하고도 인보사를 제조·판매하고, 2015년 FDA의 임상 중단 명령(CH)을 숨기고 코오롱티슈진의 코스닥 상장 등을 추진했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법원은 인보사의 실제 성분이 다르다고 해서 식약처의 품목 허가를 거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서류상 성분과 실제 제조·판매된 성분이 다르다고 해서 허가받지 않은 의약품으로 평가하고 범죄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보사 성분 착오에 관한 피고인들의 인식 시점은 제조·판매 시점보다 늦은 2019년 3월 이후"라며 식약처의 허가를 믿고 인보사를 제조·판매한 이 회장 등은 범죄의 고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FDA의 CH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혐의도 범죄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고 봤다.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주가 부양 의지를 확인하기 어렵다"며 검사의 주장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선고 말미에 우리 사회가 과학적 검증보다 법정 공방과 형벌을 앞세운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한다는 관점에서 인보사의 제조·판매를 중단하고 그 원인을 파악하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면서도 "그런데 그 이후 우리나라와 미국의 조치와 진행 경과는 사뭇 다르다"고 운을 뗐다.
재판부는 "미국 FDA는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과 안전성에 대해 과학적 관점에서 차분히 검토한 후 우려가 해소되자 자국민 임상시험을 승인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반면 한국은 품목 허가 취소 후에도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고 수년간 형사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며 "막대한 소송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과학적 분야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실제 코오롱그룹은 2020년 4월 FDA의 요청 사항들을 만족시키며 인보사의 임상 재개를 승인받았고 현재 3상 투약까지 마친 상태다. FDA는 임상 보류를 결정한 지 1년이 채 안 돼 보류 해제를 통지했다. FDA는 식약처와는 달리 임상 보류 결정을 해제하면서 "인보사가 안전성과 효능 면에서 전혀 문제가 없고 모든 임상 보류 이슈들이 만족스럽게 해결(Fully Satisfied)됐다"고 밝히며 3상 재개를 허가했다.
이날 선고는 민사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피해환자 대리인 측 엄태섭 변호사는 이날 "민사에서는 고의뿐 아니라 과실 역시 위법성 판단의 근거가 되므로 코오롱 측의 과실을 입증해 배상 책임을 지울 것"이라고 예고했다. 검찰은 "법원의 판단을 바로 수긍하기 어려워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한 후 항소를 적극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민우 기자 / 박준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