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자회사 지분 100%를 보유한 기업의 내부거래를 심사할 때 이들 기업의 ‘특수성’을 고려하기로 했다. 완전자회사는 사실상 모회사와 하나의 사업자와 유사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보다 유연한 심사 잣대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지침 개정을 환영하면서도, 법 개정을 동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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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 전경.(사진=이데일리DB) |
완전모자회사 ‘특수성’ 고려
공정거래위원회는 27일 ‘부당한 지원행위의 심사지침’ 및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행위 심사지침’ 개정안을 마련해 이날부터 다음달 17일까지 행정예고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부당내부거래 사건의 위법성을 판단할 때 완전모자회사 관계의 특수성을 합리적으로 고려하기 위한 판단 기준을 마련한 것이 골자다. 부당지원행위와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사익편취행위)의 위법성 요건이 서로 달라 각각 개정했다.
우선 공정위는 부당지원행위의 부당성 판단 기준을 신설했다. 완전모자회사 간 거래의 경우 그 특수성으로 지원의도와 지원행위로 인한 경제상 이익, 경쟁여건 변화 등 측면에서 공정한 거래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낮을 수 있다는 점을 추가로 고려하기로 했다. 이때 특수성은 완전자회사가 독자성을 상실하고, 모회사가 자신의 사업 일부로서 자회사를 운영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한 지배력을 행사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완전모자회사 간 부당지원 행위가 성립하지 않는 구체적 사례를 신설했다. △완전모자회사 공동의 효율성 증대를 목표로 한 거래 △물적분할로 설립된 완전자회사와의 거래로서 분할 전후의 거래관계가 사실상 동일한 경우 △공익적 업무 수행을 위해 지원이 이뤄진 경우 등이 부당지원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사례로 제시됐다.
사익편취행위와 관련한 위법성 판단 기준도 신설됐다. 완전모자회사 간 거래의 경우 그 특수성으로 △이익제공 의도 이익제공행위로 인한 경제상 이익 특수관계인에게 귀속된 이익 등 측면에서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이 귀속될 우려가 낮을 수 있다는 점을 추가로 고려한다.
또한 완전모자회사 간 거래에서 특수관계인에게 이익이 귀속될 우려가 낮은 요건을 정하고, 이를 충족할 경우 법 적용을 제외할 수 있는 ‘안전지대’도 만들었다.
구체적으로 이익제공행위로 특수관계인의 자산 총합이 증가하지 않는 경우, 이익제공행위가 완전모자회사 공동 효율성 증대 도모 외 다른 목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 이익제공행위로 채권자 등 제3자의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 기타 다른 법령을 위반하지 않는 경우 등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부당성이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개정으로 완전모자회사 간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명문 심사기준을 최초로 마련해 법집행에 대한 기업 예측가능성과 사건처리 효율성을 함께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사익편취 규제가 적용되는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완전모자회사의 경우 안전지대 요건 충족 시 규제 준수 비용을 상당히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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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공정위 |
업계 환영 한목소리…법 개정 부재 아쉬움도
업계는 이번 지침 개정에 환영하는 분위기다. 과거 공정위가 완전모자회사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아 제재받은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아모레퍼시픽그룹-코스비전, SK텔레콤-SK브로드밴드, 롯데칠성음료-MJA와인 등이다. 이들 기업은 부당내부거래로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 팀장은 “완전모자회사는 사실상 경제적 동일체”라며 “부당지원행위가 성립된다는 것 자체가 경제학적 측면에서 맞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각각을 법인격으로 봐서 규제했는데, 지침을 개정하는 방향성 자체는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다만 법 개정이 동반돼야 한다는 아쉬움도 뒤따른다. 공정위 심사관들이 대법원 판례와 과거 공정위 심결을 무시한 채, 신설 지침에 따라 완전모자회사 관계에서의 부당지원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대법원 판례는 완전모자회사도 각각 독립된 별개 회사로 보고, 부당지원행위로 규제하고 있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을 지낸 김형배 더킴로펌 고문은 “무조건적 규제에서 진일보한 것은 맞지만, 이론적으로 완전모자회사 관계는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에 별개 법인이 아닌 하나의 법인”이라며 “차라리 법 개정을 해서 확실하게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을 갖추는 게 낫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