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Creator]
〈10〉 ‘민음사TV’ 분위기 띄우는 박혜진-김민경 편집자
‘세계문학전집 월드컵’ 진행 톡톡
방영뒤 月판매량 27배 급증하기도
“출판계 닥스훈트가 되고 싶습니다.”(박혜진, 김민경 민음사 편집자)흔히 출판사 편집자는 ‘조용하다’는 선입견이 있다. 집중해서 책을 읽고 만드는 직업이기에, 성격유형지표(MBTI)로 치면 내향형(I)일 것 같다. 그런데 강아지 중에서도 개구쟁이로 소문난 닥스훈트가 되고 싶다니. 이 편집자들, 별종임이 틀림없다.
16일 서울 강남구 민음사에서 출판사 대표 스테디셀러인 ‘세계문학전집’의 편집을 맡고 있는 박혜진(35), 김민경 씨(35)는 이를 ‘문턱 낮추기’라고 설명했다.
“책들이 예쁘게 꽂혀 있으면 닥스훈트가 막 헤집고 꺼내 놓잖아요. 책을 물고 가져오기도 하고. 세계문학전집은 고루하고 웅장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박 씨)이들의 책 물어오기는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에서 2022년 3월부터 진행하는 ‘세계문학전집 월드컵’ 코너다. 주로 고전 속 인물들로 가상의 대진표를 짜고 밸런스 게임을 벌인다. ‘최악의 애인’ 편에선 ‘위대한 개츠비’ 개츠비와 ‘안나 카레니나’ 안나, ‘호밀밭의 파수꾼’ 홀든 등 16명을 선정한 뒤 한 명씩 떨어뜨리며 최악의 애인을 뽑았다.
영상에서 둘은 줄거리를 구구절절 설명하진 않는다. 그 대신 캐릭터로 승부를 본다. 각자 한 명씩 변론하는데 마치 콩트를 보는 듯하다. 지금까지 고전 속 ‘최고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 ‘최고의 명문장’ 등 30여 개 에피소드를 찍었다. ‘최악의 애인’ 편은 조회수 약 18만 회, 댓글 540개의 기록도 세웠다. 구독자의 약 70%가 젊은 독자(18∼34세)란 점도 고무적이다.
유튜브 촬영은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독자를 만나던 그들에게, 최전선에서 접촉하는 ‘스릴’을 선사한다. 박 씨는 “입사 초기만 해도 ‘입에 거미줄 쳤다’ 싶을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혼자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금은) 독자들이 어떤 주제나 표현을 좋아하는지 반응을 마주하다 보니 항상 긴장감이 넘친다”고 말했다.
책 판매에도 효과가 적지 않았다. 스페인 소설가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소설 ‘구르브 연락 없다’는 방영 뒤 월간 판매량이 27배나 뛰었다. 김 씨는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줄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던 숨은 명작”이라며 “독자를 만나도록 도왔다는 뿌듯함을 느꼈다”고 했다.작품 선정에도 유튜브 시청자의 반응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 박 씨는 “예전엔 ‘여성 작가가 너무 없다’는 비판을 ‘옛날엔 남성 작가들이 더 많았으니까’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말았다”며 “이젠 독자의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접하니 작품 발굴 때도 요즘 공감할 만한 여성 작가의 작품들을 살펴보게 된다”고 했다.
외부 활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세계문학전집 월드컵’ 애청자인 한 교사의 의뢰로 전북 김제시에 있는 중학교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시청자 눈높이에 맞게 콘텐츠를 만들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조지 오웰의 중학교 때 경험이 어떻게 권력 관계에 대한 감수성으로 이어졌는지를 열심히 설명했다.
활력 넘치는 ‘닥스훈트 듀오’에게 다음 포부는 뭘까. 대뜸 “출판계의 ‘전원일기’로 커 나가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세계문학은 물론이고 한국문학이나 비문학까지 경계 없이 선을 넘으며 장수하는 콘텐츠가 되고 싶다는 얘기다.
“단정하게 정돈된 책장을 막 어지르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독자들이 자유롭게 읽다가 ‘정말 내 얘기다’ 싶어서 손으로 잡아들게끔요.”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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