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10일(현지시간) “제네바 합의를 실행하기 위한 프레임워크(틀)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관세전쟁 완화를 위한 돌파구가 마련된 것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이날 영국 런던에서 중국 측과 이틀간 협상한 뒤 기자들과 만나 “중국의 핵심 광물·희토류 수출 통제와 최근 도입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수출 제한 조치가 해제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청강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담판대표(장관급)도 취재진에 “양국은 전문적이고 이성적이며 심도 있고 허심탄회하게 소통했다”며 “이번 진전이 양국 간 신뢰 증진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세계 경제 발전에 긍정적 에너지를 불어넣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미·중은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 회담에서 상대국의 관세를 90일간 115%포인트씩 인하하고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도 해제하기로 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이 희토류 통제를 풀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제기했고,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수출 제한과 중국인 유학생 비자 취소 등을 문제 삼았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를 했고 고위급 협상을 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의 핵심은 중국이 희토류의 대미 수출을 늘리면 미국이 제네바 협상 이후 중국에 부과한 기술 수출 통제를 완화하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미국이 희토류를 얻는 대가로 반도체 수출 제한을 완화해주기로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데커터 로버츠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블룸버그통신에 “미국이 기술 통제 조치를 완화하는 결정은 중국에 큰 승리로 여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美·中 '제네바 합의' 프레임워크 도출…관세협상 '청신호'
희토류 막자 전세계 산업 '휘청'…美·中 합의로 공급망 회복될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자존심을 접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한 데 이어 미국이 중국과 영국 런던에서 2차 고위급 협상을 한 배경엔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가 있었다. 중국이 지난달 미국의 상호관세에 대응해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면서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자동차업계가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방산, 의료, 에너지 등 주요 산업도 적잖은 타격을 받았다. 이들 산업에서 희토류가 필수적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희토류에 혈안인 미국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10일(현지시간) “희토류 규제를 해결하는 것이 이번 플레임워크(틀)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은 이날 2차 고위급 무역 협상에서 지난달 1차 회담에서의 합의를 이행할 프레임워크를 도출하는 데 합의했다.
중국은 지난 4월 4일 사마륨, 가돌리늄, 터븀, 디스프로슘, 루테튬, 스칸듐, 이트륨 등 7종의 희토류와 이들을 함유한 자석 제품에 수출 제한 조치를 시행했다. 미국이 앞서 중국 등 무역 상대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보복조치의 일환이었다.
러트닉 장관이 이날 희토류 문제 해결을 강조한 이유가 있다. 희토류 생산에서 중국의 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글로벌 희토류 생산의 69.2%를 중국이 차지했다. 가돌리늄의 경우 글로벌 생산량의 99%가 중국에서 나온다. 짐 헤드릭 유에스크리티컬머티리얼즈 대표는 “현재 희토류 확보보다 시급한 미국의 안보 사안은 없다”고 지적했다.
◇원자로·전투기에도 영향
중국 제한 조치의 영향은 바로 나타났다. 원전 제어봉의 필수 소재인 가돌리늄 공급 부족으로 프랑스전력공사(EDF)는 지난달 원자로 개선 작업을 중단했다. 세계 최대 해상풍력 기업 외르스테드의 주가는 중국의 수출 제한 발표 이후 한때 20% 넘게 떨어졌다. 풍력 터빈 제작의 필수 소재인 터븀 부족 우려 때문이다. 항공기, 미사일의 핵심 소재인 사마륨 부족을 걱정한 미국 국방부는 대체 소재를 제조할 공장을 짓기로 했다. 사마륨은 F-35 전투기에 약 50파운드가 들어간다.
전기차 생산에 필수인 디스프로슘 부족으로 생산량을 감축하는 업체도 늘고 있다. 인도 최대 자동차 업체 마루티스즈키가 전기차 ‘e비타라’ 생산 규모를 기존 계획의 3분의 1 이하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일본 스즈키도 지난달 26일부터 소형차 스위프트 생산을 중단했다. 독일 자석 제조업체 마그노스피어의 프랭크 에카르트 최고경영자(CEO)는 “자동차산업 전체가 완전한 패닉 상태”라며 “그들(자동차 제조사)은 어떤 가격에라도 (희토류를) 구입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일부 희토류 가격은 급등했다. 희토류 전문 유통업체 스트래티직메탈스인베스트에 따르면 10일 기준 터븀 가격은 지난 1월 1일보다 42.0% 올랐다. 같은 기간 디스프로슘은 28.5% 상승했다.
◇미·중 합의로 해결될까
미국과 중국 간 타협에도 희토류 공급망 문제는 언제든 다시 터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광물 탐사 업체인 니오코프디벨롭먼츠의 마크 스미스 CEO는 “중국은 필요할 때마다 희토류라는 패를 꺼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이 지난 4월 미국에 대한 보복조치로 도입한 희토류 수출 제한 정책은 사실상 언제든 수출을 봉쇄할 수 있는 제도다. 이전에는 수출 총량 쿼터 설정, 수출세 인상 등으로 수출 규제 수준이 낮았다.
희토류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일부 국가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주요 7개국(G7)도 희토류 등 중요 전략물자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 일정을 연내 마련할 계획이다. 이달 캐나다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서 관련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단기간에 중국의 희토류 지배력을 낮추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세계 희토류 제련 및 분리 공정의 85~90%를 장악하고 있다. 희토류를 다른 곳에서 확보해도 산업용으로 제조하기 위해서는 중국을 거칠 수밖에 없다. 희토류 제련 과정에서 환경 오염이 심하게 발생해 중국만큼 싸게 생산 원가를 맞추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김주완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