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계약 체결 6개월 만에 예상치 못한 지방 발령이 났다. 이사가 불가피해지자 A 씨는 집주인에게 중도해지를 통보했다. 그러자 집주인은 “새 계약서를 다시 썼으니 2년을 모두 채워야 한다”며 위약금과 중개보수 부담을 요구했다.
과연 갱신계약서를 새로 작성했다면 세입자는 반드시 2년을 살아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핵심은 새 계약서를 썼느냐가 아니라, 해당 계약이 ‘계약갱신요구권에 따른 갱신’인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조건으로 다시 맺은 ‘재계약’인지에 있다.부동산 투자·컨설팅 전문기업 밸류업이노베이션의 배준형 대표는 “실무에서는 새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이유만으로 세입자가 중도해지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요한 것은 계약서 형식이 아니라 계약의 법적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 새 계약서를 써도 무조건 신규 계약은 아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계약 연장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세입자가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해 계약을 연장하는 경우, 별다른 의사표시 없이 자동 연장되는 묵시적 갱신, 그리고 집주인과 세입자가 새로운 조건으로 다시 계약을 맺는 재계약이다.집주인과 세입자가 보증금이나 월세를 일부 조정하면서 새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해서 무조건 신규 계약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계약갱신요구권 행사에 따른 연장이라면 법적으로는 여전히 ‘갱신’으로 볼 수 있다.부동산 전문 엄정숙 변호사(법도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형식보다 실질이 중요하다”며 “세입자가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한 뒤 보증금이나 월세를 일부 조정하고 새 계약서를 작성했더라도, 기존 계약을 연장하는 성격이라면 여전히 갱신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법원도 신규 임대차계약 형식을 취했더라도 계약갱신요구권 행사에 따른 갱신의 실질을 갖는다면 형식만으로 신규 계약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대법원 2013다35115 판결).
● 계약갱신요구권으로 연장했다면 3개월 뒤 계약 종료
그렇다면 계약갱신요구권으로 연장한 계약은 어떻게 될까.주택임대차보호법은 계약갱신요구권으로 갱신된 계약에 대해 세입자가 언제든 계약 해지를 통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세입자가 해지 의사를 밝히고 그 통지가 집주인에게 도달한 날부터 3개월이 지나면 계약은 종료된다.
즉 계약서에 계약기간을 다시 2년으로 적어 놓았더라도, 계약갱신요구권 행사에 따른 갱신이라면 세입자가 반드시 2년을 모두 채워 살 필요는 없다.
엄 변호사는 “갱신계약서에 계약기간이 2년으로 적혀 있더라도 세입자가 2년을 모두 채워야 할 의무는 없다”며 “해지를 통지한 뒤 3개월이 지나면 계약은 종료된다”고 말했다.
대법원 역시 계약갱신요구권 행사 후 세입자가 해지를 통지한 경우, 통지가 도달한 날부터 3개월이 지나면 계약이 종료된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23다258672 판결).
반대로 세입자가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하지 않고 집주인과 완전히 새로운 조건으로 다시 계약을 맺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이 경우 법원은 해당 계약을 사실상 신규 계약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 신규 계약으로 인정되면 세입자는 계약기간을 지켜야 할 수 있고, 중도해지 여부 역시 계약서 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엄 변호사는 “법원은 계약 체결 경위와 계약 내용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며 “세입자가 갱신요구 의사를 문자나 내용증명 등으로 남겼는지, 기존 계약의 연장선상인지 등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고 설명했다.
배 대표 역시 “실무에서는 집주인이 ‘완전히 새로운 계약이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계약 체결 과정에서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나 계약서 문구 등을 남겨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 위약금·중개보수 분쟁이 가장 많다
실무에서 가장 자주 발생하는 분쟁은 위약금과 중개보수 문제다.
배 대표는 “집주인이 ‘새 계약서를 썼으니 위약금을 내야 한다’거나 새 세입자를 구하는 중개보수까지 세입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엄 변호사는 “계약갱신요구권 행사에 따른 갱신이라면 세입자에게 불리한 위약금 특약은 효력이 제한될 수 있다”며 “새 세입자 중개보수를 세입자에게 부담시키는 것도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갱신계약서를 작성할 때 특약사항에 ‘본 계약은 계약갱신요구권 행사에 따른 갱신계약임’을 명시하고, 갱신요구 의사도 문자나 내용증명 등으로 남겨두는 것이 향후 분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 팩트필터|갱신계약서를 다시 썼다면
· 새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신규 계약이 되는 것은 아니다.
· 계약갱신요구권 행사에 따른 갱신이라면 세입자는 중도해지를 통보할 수 있다.
· 해지 통지가 집주인에게 도달한 날부터 3개월이 지나면 계약은 종료된다.
· 갱신인지 재계약인지는 계약 체결 경위와 내용을 종합해 판단한다.
· 갱신요구 의사는 문자나 내용증명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다.
· 계약갱신요구권에 따른 갱신이라면 세입자에게 위약금이나 중개보수를 부담시키는 특약은 효력이 제한될 수 있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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