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그림, 다른 시선[이은화의 미술시간]〈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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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이어지는 여름이면 절로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미국 화가 프레더릭 에드윈 처치가 1861년에 그린 ‘빙산’(사진)이다. 화면을 가득 채운 푸른 얼음과 차가운 바다는 보기만 해도 체감온도를 몇 도쯤 낮춰주는 듯하다. 그런데 이 그림의 첫 이름은 ‘빙산’이 아니었다. 처치가 북극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완성하고 전시를 준비하던 중 미국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그는 작품에 ‘북쪽’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전시 입장료 수익금도 북군 병사 가족을 지원하는 기금에 기부했다. 북극 자연을 담은 풍경화가 전쟁이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 정치적 의미를 얻게 된 것이다. 작품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유명 작가의 신작에 찬사를 보내는 이도 있었지만, 관람객과 그림을 연결해 줄 인간적 흔적이나 서사가 없다고 불평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사람도, 동물도, 뚜렷한 사건도 없는 차가운 빙하 풍경은 당시 관객들에게 무척 낯설었기 때문이다. 2년 뒤 영국 런던 전시를 앞두고 처치는 작품에 중요한 변화를 줬다. 제목을 ‘북쪽’에서 ‘빙산’으로 바꾸고, 전경에 난파선의 흔적인 돛대를 덧그렸다. 이로써 남북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정치적 의미는 사라지고, 인간의 흔적을 암시하는 최소한의 서사가 더해졌다. 부러진 돛대는 영국 관객들에게 북극 탐험 중 실종된 프랭클린 탐험대를 떠올리게 했고, 작품은 호평 속에 현지 사업가에게 판매됐다. 같은 그림이라도 시대와 관객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의 ‘북쪽’이라는 의미를 얻었고, 영국에서는 북극 탐험대의 비극과 연결됐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시선은 화면을 압도하는 대자연 그 자체로 향한다. 그림을 둘러싼 해석은 끊임없이 바뀌었지만, 빙산은 처음부터 인간과 무관한 채 그 자리에 떠 있었다. 결국 달라진 것은 빙하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지금 뜨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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