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정원 206억·세월호 2800억…추모 공간 어디까지 [혈세 누수 탐지기]

3 hours ago 4

206억 투입에 '받들어총'·중복투자 논란
외국인 발길에도 정치적 공방 확대돼
세월호까지 번지며 적정선 도마 위
"무엇이 진정한 추모인가" 질문 남겨

사진=신현보 기자

사진=신현보 기자

6·25 참전 22개국을 기리고 참전 용사를 추모하기 위한 '감사의 정원'이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문을 열었습니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시장 재임 시절 역점사업으로 추진한 공간인데, 206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방 선거를 앞두고 여권에서는 세금 낭비 논란도 일고 있습니다. 한경 혈세 누수 탐지기팀이 이번에는 추모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 호불호 있지만 외국인들 사이서도 인기

최근 평일 오후에 찾은 광화문광장. 예상보다 많은 시민들이 감사의 정원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감사의 정원은 6·25 참전국을 향한 감사와 존경의 의미를 담은 23개의 빛 기둥으로 구성됐습니다. 각 조형물은 높이 6.25m 석재 구조물로 만들어졌고, 참전국 7개국에서 기증한 석재가 실제 활용됐습니다. 이 밖에도 5개국이 석재 기증 의사를 밝힌 상태이며, 이는 연말까지 반영될 예정입니다.

직접 둘러본 감사의 정원은 묘하게 상반된 인상을 남겼습니다. 어떤 각도에서는 광화문광장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는 느낌을 줬지만, 또 다른 방향에서는 다소 낯설고 이질적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낮 시간대에는 바닥과 주변 건물 색감이 맞물리며 생각보다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다만 전체적으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진=신현보 기자

사진=신현보 기자

예상 밖이었던 건 외국인 관광객들의 관심이었습니다. 현장에서는 광화문을 거닐다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 인도인 커플은 "참전국을 이렇게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틱톡과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외국인 관광객 중심의 방문 후기가 적지 않게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콜롬비아 현지 매체가 감사의 정원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지하에 조성된 프리덤홀은 분위기가 또 달랐습니다. 삼각형 LED 구조물로 꾸며진 '메모리얼 월'에서는 6·25 전쟁 당시 사진과 참전 용사 명단 등이 반복해서 송출되고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인데도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 숙제 3가지

감사의 정원은 단순히 조형물만 세워둔 데 그치지 않고 QR코드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해설을 볼 수 있게 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안내 요소도 갖추려 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다만 감사의 정원에는 크게 네 가지 아쉬운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역광 문제 △설명문 식별 어려움 △정치적 갈등 표출 등입니다.

대형 전광판 역광으로 '감사의 빚 23'이 잘 안 보이는 모습. /사진=신현보 기자

대형 전광판 역광으로 '감사의 빚 23'이 잘 안 보이는 모습. /사진=신현보 기자

이 조형물의 핵심 연출은 밤하늘로 빛을 쏘아 올리는 '감사의 빛 23'입니다. 그런데 맞은편 대형 전광판 불빛이 워낙 강하다 보니 정작 빛기둥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조형물 하단 설명문은 허리를 숙여야 읽을 수 있는 구조인데, 밤에는 조명이 부족해 외국인 관광객들이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고 읽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불편하게 설명문을 보는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 /사진=신현보 기자

불편하게 설명문을 보는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 /사진=신현보 기자

'감사의 아카이빙 월'에 일부 시민들이 정치적 문구를 남겨 현장에서 시민들은 실소와 한숨이 함께 나왔다. /사진=신현보 기자

'감사의 아카이빙 월'에 일부 시민들이 정치적 문구를 남겨 현장에서 시민들은 실소와 한숨이 함께 나왔다. /사진=신현보 기자

가장 눈에 띈 문제는 시민 참여형 공간인 '감사의 아카이빙 월'이었습니다. AI 인터뷰 시스템으로 가상의 참전용사와 대화를 나누거나 평화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공간인데, 일부 시민들이 정치적 문구를 남기면서 분위기를 흐리는 장면이 반복됐습니다. 이를 알아보는 외국인이 있다면 정말 나라 망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 취재진이 약 2시간 머무는 동안 감사의 정원 곳곳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두고 언쟁을 벌이는 모습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공간이 또 다른 정치적 대립 공간처럼 변질되는 듯한 인상도 남겼습니다.

◇ 여기저기 중복 투자 논란

온라인에서는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남의 나라를 위해 희생한 참전 용사들을 기리는 게 왜 문제냐"는 반발도 나왔습니다. 감사의 정원이 과거 '세월호 기억 공간'이 철거된 자리에 들어섰고, 용산 전쟁기념관에도 유사한 추모 조형물이 있다는 이유로 진보 진영에서 중복 논란이 제기되자, 보수 성향 누리꾼들은 "같은 논리라면 세월호 추모시설도 문제"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출처=목포시

출처=목포시

대표적으로 거론된 곳은 국립세월호생명기억관(가칭)입니다. 해당 시설은 올해 중순 설계·시공 일괄입찰(턴키) 방식으로 발주돼 2030년 완공을 목표로 연말 착공 예정입니다. 총사업비는 2838억원으로, 지난해보다 약 700억원이 증액됐습니다. 기억관은 목포신항만 배후부지 인근 공유수면에 약 7만6150㎡ 규모로 조성됩니다. 세월호 선체를 보관하는 하우징을 비롯해 생명기억관과 각종 체험관, 생명공원 등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정부는 '안전과 치유'를 결합한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미 진도 해양안전체험관과 완도 해양치유센터 등 유사 시설이 운영 중인 만큼 차별성 부족 우려도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실제 지난 3월 설명회에서도 기존 시설과 기능이 겹칠 경우 방문 수요 분산과 중복 투자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 진짜 중요한 것은

나라를 위해, 혹은 나라로 인해 희생된 이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계속 정쟁의 대상이 되는 건 과연 바람직할까요. 씁쓸함이 남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규모와 예산이 투입돼야 '충분한 추모'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최근 보수 진영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감사의 정원 논란과 관련해 '희생자 수'를 기준 삼는 글들도 확산했습니다. 국가가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사회적 상처일수록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세월호 참사는 10년 넘게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추모 사업이 계속 확대돼 왔습니다.

재발 방지라는 관점에서 보면 또 다른 질문이 남습니다. 거대한 조형물과 체험관이 과연 얼마나 실질적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점입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발표한 올해 남북통합지수는 지난해에 이어 역대 최저치를 다시 기록했습니다. 수십조원 규모 국방예산과 대북지원금 등 막대한 비용이 투입됐지만 한반도 긴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출처=해양교통안전시스템

출처=해양교통안전시스템

세월호 참사 이후 해양 사고도 크게 줄지 않았습니다. 해양교통안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해양사고는 3513건으로 10년 전보다 약 1000건 증가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행정학과 교수는 "어느 나라나 추모 조형물은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추모 공간 자체가 논란이 되거나 예산 낭비 공방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라며 "가장 중요한 건 비극 이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적 고민과 재발방지책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9.11 메모리얼의 '부재하는 존재' 살펴보니

사진=연합AP

사진=연합AP

일각에서는 미국의 9·11 테러 추모공원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9·11 메모리얼'은 사라진 쌍둥이 빌딩 자리에 거대한 조형물을 세우는 대신 끝없이 물이 떨어지는 인공 폭포로 희생자들의 부재를 표현했습니다. 빈 공간 자체가 상실감을 체감하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사실 이번 기획을 준비하면서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추모 공간 자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시선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취재를 진행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희생을 기억하고 추모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설계한 건축가 피터 아이젠먼은 "이 기념비에는 목표도 끝도 없고 들어가는 길도 나오는 길도 없다. 홀로코스트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추모 공간은 비극을 완벽히 설명하는 장소가 아니라, 끝내 이해할 수 없는 상실 앞에서 우리를 잠시 멈춰 서게 만드는 공간인지도 모릅니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여러 추모 공간들은 과연 우리를 얼마나 깊이 돌아보게 하고 있을까요. 또 지금의 논쟁들은 희생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한 건강한 사회적 논의로 이어지고 있는 걸까요.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