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110번째 실적 전망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뉴욕에서 만난 모 업체 미국법인 주재원은 “관세가 바뀔 때마다 수입원가 계산부터 공장 이전 검토안까지 덩달아 바뀐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회사는 미국에 제조시설이 있지만 중국과 멕시코에서 원자재를 수입한다. 관세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는 “다른 기업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정책과 관련해 수시로 말을 바꿔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익명을 원한 또 다른 회사 미국법인 직원은 “상호관세 90일 유예기간에 최대한 많은 원자재를 미국으로 들여올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며 “문제는 90일 이후에 어떤 일이 생길지 예상하기 힘들다는 점”이라고 했다. 유예기간이 더 길어진다면 90일간 원자재를 대량 수입한 게 오히려 손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애플은 지난달 인도에서 미국으로 20억달러 상당의 아이폰을 항공편으로 실어왔다. 관세 부과 전 최대한 물량을 당겨온 것이다.
미국에 지점을 낸 한국 시중은행들은 거래 기업의 신용 위험 점검에 들어갔다. 모 은행 미국지점 관계자는 “서울 본점에서 관세로 인해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는 기업의 대출 상환능력을 점검하라는 지시가 왔다”며 “해당 기업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 직원은 “트럼프 행정부 이후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미국에서 생산하라는 압박이 계속될 것 같다”며 “이참에 멕시코에 있는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옮기는 걸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 관련 기업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원자재 대부분을 트럼프 행정부가 추가 관세 145%를 부과한 중국에서 들여오기 때문이다.
한 가전업체 주재원은 “미국 현지 공장의 생산 물량이 많지 않아 큰 도움이 안 된다”며 “관세 유예기간에 미국 내 생산 물량을 최대한 늘릴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반도체는 아직은 관세 영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반도체를 생산하는 모 기업 미국법인은 “미국에 수출하는 반도체는 대부분 스마트폰 전자기기 등에 장착된 상태”라며 “미국으로 바로 수출하는 반도체 물량도 있지만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진 않다”고 말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