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조8796억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제철 등 국내에서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20개 기업이 지난해 낸 전기료다. 1년 전(12조4530억원)보다 11.5% 늘었다. 전기를 그만큼 많이 써서가 아니다. 정부가 산업용 전기료를 대폭 올린 여파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2021년 이후 산업용 전기료를 일곱 차례에 걸쳐 ㎾h당 105.5원에서 182.7원으로 73.2% 올렸다. 산업용 전기료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6개국 중 26번째로 낮은 데다 한전의 누적 적자가 심해 더는 버틸 수 없다는 게 전기료 인상의 근거다.
그러나 국내 산업용 전기료는 주력 산업에서 경쟁하는 미국, 중국보다 훨씬 비싸다. 미국의 평균 전기료는 112원으로 한국 전기료보다 39% 저렴하다. 한국 기업이 여럿 진출한 텍사스주(78원)와 조지아주(84원)는 절반 이하다. 중국의 평균 전기료도 미국과 비슷한 116.6원이다. 햇빛 좋고 물 좋은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내몽골, 윈난성 등지의 전기료는 60~70원에 불과하다.
문제는 미국·중국과의 전기료 격차가 갈수록 더 커질 것이란 데 있다. 이재명 정부가 해상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한 전기만 100% 사용하는 ‘RE100’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서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전력 거래 시장에서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력을 구입하는 비용은 ㎾h당 135.6원으로 원전 단가(66.3원)의 두 배 이상이다. 값비싼 재생에너지 생산량이 늘수록 기업들의 전기료 부담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경기 평택·용인 등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는 데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이 ‘전기 먹는 하마’인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건립하고 있는 만큼 전기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도 전기료 인상을 부추기는 대목이다. 초고압 송전망 확충,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 등 인프라 투자에도 목돈이 들어간다. 업계에선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올 4분기에 전기료가 또다시 인상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