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차기 정부가 추진하는 최대 1조 유로(약 1584조 원)의 군사 및 인프라 투자 계획이 18일(현지 시간) 하원인 연방 의회의 문턱을 넘었다. 국영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 최대 경제 대국의 경제 회복과 EU의 재무장 노력을 강화할 조치”라고 평가했다.
이날 연방 의회는 인프라 투자를 위해 최대 5000억 유로(약 792조 원)의 특별기금을 조성하고 국방비 조달에 필요한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1%가 넘는 부채를 허용하는 내용의 기본법(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차기 연립정부를 구상중인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과 사회민주당(SPD)의 주도하에, 이날 표결은 찬성 513표, 반대 207표로 개정에 필요한 재적 3분의 2를 넘겼다.
21일 상원 표결에서 3분의 2 이상 동의하고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승인하면 이 같은 헌법 개정안은 확정된다. FT는 “상원에서도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독일은 약 20년간 정부의 재정적자 한도를 GDP의 0.35%로 규정해놨는데, 이를 풀어 대규모 경기 부양을 함과 동시에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군비를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최장 12년간 사용될 병원·학교·도로·에너지망 현대화를 위한 인프라 예산 5000억유로는 연방정부 지난해 예산 4657억유로를 넘는 규모다. 국방비는 사실상 무제한 늘릴 수 있게 됐는데, 국방 특별 예산만 4000억 유로(약 620조원) 추가 편성이 예상된다. 지난해 독일 국방비는 718억 유로였다.
독일의 차기 총리로 꼽히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 대표. AP 뉴시스
독일 차기 총리로 꼽히는 프리드리히 메르츠는 기독민주당(CDU)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이 같은 막대한 부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침략과 같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허용된다”며 “오늘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새로운 유럽 방위 공동체로 가는 첫 번째 주요 단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은 막대한 돈풀기가 최근 2년 연속 역성장한 독일 경제를 되살릴 것으로 기대한다. 독일 증시 닥스40 지수는 전날보다 1% 넘게 올라 장중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유로화도 한때 1.095달러를 넘어 지난해 10월 이후 5개월 만 최고치를 기록했다. 독일경제연구소(DIW)는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1%에서 2.1%로 올렸다.
다만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메르츠 대표의 가장 난관은 보수층을 설득하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미 보수파 내부에선 “메르츠 대표가 과도한 SPD의 지출 요구를 수용했다”는 등의 반발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25일 개원하는 새 의회에서 제1야당이 예상되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 역시 이 같은 지출 계획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어 차기 정부의 계획 추진에 난관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