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윤 기자] 2025년의 한국 경제가 1990년대 초반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 전후와 닮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부채, 인구, 기술 등 구조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답습할 것이란 경고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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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국은행 |
한국은행은 5일 ‘BOK 이슈노트: 일본경제로부터 되새겨볼 교훈’이라는 리포트를 통해 “우리 경제는 대외적으로 국가간 첨단기술 패권경쟁이 심화되고 지경학적 안보를 중시하는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서 교역여건이 악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대내적으로는 빠른 인구고령화, 부동산 자금쏠림 등 장기간 누적된 구조적 문제들이 표면화되면서 성장잠재력이 약화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고도성장을 달성한 일본은 1980년대 후반부터 나타난 부채구조, 인구구조, 기술·생산구조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면서 성장잠재력이 저하됐고 구조개혁 대응도 지연되면서 경기침체가 장기화했다.
우리 경제 사정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동산 가계부채가 우려할 수준까지 누증된 결과 민간레버리지 비율이 일본 버블기 최고치(1994년, 214.2%)에 근접했고, 인구고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더 빠르다.
또한 우리나라는 2000년 이후 글로벌 수평분업체계에 적극 참여해 대(對)중국·IT 수출 주도로 성장해왔는데, 그 근간인 글로벌 통상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고, 중국 특수도 사라지고 있다.
한은은 우선 부동산으로 인한 부채누증에는 사전에 단계적인 리스크 관리가 최선의 방법이라고 봤다. 만약 부채가 이미 부실화됐을 때는 신속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한 이후에도 특별한 구조개혁 없이 부동산 자금쏠림 현상이 지속돼 왔다.
또한 저출산·고령화는 일본경제가 결국 장기침체에 들어서게 된 주된 요인으로, 대응이 늦어질수록 큰 비용을 오랫동안 치러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는 경력단절여성, 숙련은퇴자, 쉬었음 청년 등 유휴인력 생산참여 확대, 혁신지향적 교육투자 강화 등으로 노동력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확충해 나가야 한다. 또 외국인 노동력을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고, 출산율을 단계적으로 제고하는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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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국은행 |
아울러 기술 구조개혁도 추진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제조업 중심의 수출 성장모델로 성공했다. 하지만 이제 글로벌 통상질서 변화, 중국의 자급률 제고에 따라 우리도 기존 성공전략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봐야 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육성과 IT, 의료, 문화콘텐츠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수출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봤다.
이밖에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한계점에 대해서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구고령화로 인한 경직적 재정지출 증가는 정부 재정여력을 빠르게 소진시키는 핵심요인이다. 이해당사자 반발, 정치적 부담 등의 이유로 사회보장지출 증가에 선제 대응하지 않는다면 재정의 경기대응능력이 저하되고 장기적으로는 국가신인도까지 영향받게 된다.
보고서를 작성한 장태윤 한은 조사국 물가통장팀 과장은 “우리나라는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며 “전통적이든 비전통적이든 통화정책은 경기대응수단이지 경제체질 개선 수단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은은 버블붕괴 전후의 일본은 결과적으로 장기간의 저성장·저물가로 이어진 부채·인구·기술 세 측면에서의 구조변화에 직면해 있었고, 오늘날 우리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분석했다.
장태윤 과장은 “우리 사회가 구조개혁에 보다 전향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잠재성장률 하락이 이어지고,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으며 통화정책 운용도 보다 제약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일본이 인구구조 변화에 적절히 대응해 2010년부터 인구감소가 없었다면, 2010~2024년중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0.6%포인트 상승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다만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으로만 볼 순 없다고 했다. 우리 경제가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단기간 도약한 저력, 끊임없는 혁신 노력으로 제조공정 분야의 선두권의 경쟁력, K-콘텐츠 등 서비스업종에서의 소프트파워를 키워나가고 있는 점 등을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