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초청작 6편… 한국영화는 텅 빈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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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국제영화제 개막
박찬욱-봉준호 등 휩쓸던 영화제… 3년 연속 경쟁부문 진출작 없이
올핸 단편영화 2개만 이름 올려
日, 다양성-세대교체 모두 성공… “韓, OTT 제작공식에 갇혀 버려”

올해 경쟁 부문에 초청된 일본 여성 감독 하야카와 지에 영화 ‘르누아르’의 한 장면. 칸 국제영화제 제공

올해 경쟁 부문에 초청된 일본 여성 감독 하야카와 지에 영화 ‘르누아르’의 한 장면. 칸 국제영화제 제공
1987년 일본 도쿄. 열한 살 소녀 후키는 늘 혼자다. 아버지는 암 투병 중이고, 어머니는 돈을 벌러 밤까지 일터를 지킨다. 외로운 소녀는 점차 현실보다 상상 속에서 오래 머물기 시작한다.

13일(현지 시간) 개막한 올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일본 영화 ‘르누아르’의 줄거리다. 연출을 맡은 이는 여성 감독 하야카와 지에(早川千絵·49). 그는 단편 ‘나이아가라’(2014년)로 칸의 학생 경쟁 부문인 시네파운데이션에 진출했으며, 장편 ‘플랜 75’(2022년)로 신인에게 주는 황금카메라상 때 특별 언급도 받았다. 이번엔 ‘르누아르’로 다르덴 형제의 ‘더 영 마더스 홈’, 웨스 앤더슨의 ‘페니키안 스킴’ 등과 함께 황금종려상을 놓고 경쟁하게 됐다.

최근 국내 영화계에선 “칸의 문이 일본에 열리고, 한국에는 닫히고 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한국 영화계는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이후 별다른 성과가 없다. 반면 일본 영화는 세대 교체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영화는 3년 연속으로 칸 경쟁 부문 진출에 실패한 상태. 올해 역시 본선 경쟁작은 없고, 정유미 감독의 애니메이션 ‘안경’이 비평가주간 단편 부문, 허가영 감독의 단편 ‘첫여름’이 시네파운데이션에 초청됐다. 장편은 비경쟁,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주목할 만한 시선 등 공식 부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일본 영화는 올해 장편 6편이 칸에 초청됐다. 경쟁 부문 ‘르누아르’뿐 아니라 이시카와 게이 감독의 ‘먼 산의 빛’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올랐다. 가와무라 겐키의 ‘8번 출구’는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서 상영된다. 칸 프리미어 부문엔 후카다 고지 감독 ‘사랑의 재판’이 초청됐다. 감독주간에는 재일 한국인 3세인 이상일 감독의 ‘국보’, 단즈카 유이가 ‘전망 세대’가 초청됐다.

최근 일본 영화계는 다양성과 세대교체란 측면에서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야카와 같은 여성 감독의 비중이 늘고 있고, 1998년생인 단즈카 감독처럼 젊은 신인도 주목받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지난달 29일 방한해 “일본에선 감독들의 세대교체가 시작되고 있다. 하마구치 류스케(2021년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 후카다 고지, 하야카와 지에 등 차세대 감독이 발굴되는 건 일본 영화계에 고무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한국 영화계가 뒤처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영화계 내부에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중심의 산업 구조에 갇히면서 생긴 현상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 영화제작사 관계자는 “최근 한국 상업영화들은 넷플릭스와의 협업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다”며 “이는 칸이 꾸준히 중요하게 여기는 ‘감독의 고유한 시선’이나 ‘영화적 실험성’과는 거리가 있다”고 짚었다. 예술성을 높이 사는 세계적 영화제들은 여전히 ‘작가의 언어’가 살아 있는 작품을 중시한다는 설명이다.

13일(현지 시간) 개막한 올해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국제 영화의 ‘메카’로 불리는 칸 국제영화제는 올해 황금종려상 등 주요 상을 놓고 경합을 벌이는 경쟁 부문에 21편의 작품을 초청했다. 신화 뉴시스 제공

13일(현지 시간) 개막한 올해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국제 영화의 ‘메카’로 불리는 칸 국제영화제는 올해 황금종려상 등 주요 상을 놓고 경합을 벌이는 경쟁 부문에 21편의 작품을 초청했다. 신화 뉴시스 제공
올해 칸 영화제는 경쟁 부문 초청 감독 21명 가운데 7명이 여성 감독으로 역대 가장 높은 비중이다. 칸은 최근 4년 동안 쥘리아 뒤쿠르노, 쥐스틴 트리에 등 여성 감독에게 2차례 황금종려상을 수여하며 보수적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해 왔다. 올해 심사위원장도 프랑스 여성 배우 쥘리에트 비노슈가 맡았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기생충’ 이후 한국 영화계는 뚜렷한 세대교체 없이 기존 감독의 이름값에 의존하고 있다”며 “새로운 감독을 발굴하고, 새로운 시선을 담은 영화가 없다면 국제 무대에서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올해 칸 영화제 개막작은 프랑스 감독 아멜리 보낭의 장편 영화 ‘리브 원 데이’다. 황금종려상을 포함한 수상 결과는 24일 폐막식에서 발표된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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