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집권 자민당 ‘55년 체제’ 붕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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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의원 이어 참의원도 과반 무너져
1955년 창당 이후 70년만에 처음
당내 일각서도 ‘이시바 교체론’ 등장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 공명당 연합(연립여당)이 20일 치러진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중의원(하원)에 이어 참의원에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공영 NHK방송 등은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정권이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모두 과반을 뺏긴 건 1955년 자민당 창당 이후 처음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선 자민당이 중심이 돼 정권을 창출해 왔던 이른바 ‘55년 체제’가 70년 만에 일본 정치에서 붕괴 수순을 맞이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21일 공영 NHK방송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39석, 공명당은 8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이시바 총리는 연립여당의 목표 의석을 50석으로 제시했지만 3석이 모자란 것. 연립여당의 참의원 의석수는 기존 의석(75석)을 합해 122석이 돼 과반(125석) 확보에 실패했다. 참의원 선거는 전체 248명의 절반인 124명을 3년마다 뽑는다. 올해는 결원 1명을 포함해 125명이 선출됐다. ‘일본인 퍼스트’를 앞세운 강경 보수 참정당은 기존 2석에서 15석으로 약진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는 집권 직후인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에서도 패해 연립여당은 중의원 465석 중 과반에 못 미치는 220석만 확보했다.

이시바 총리는 21일 “국정 정체가 없어야 한다”며 사퇴론을 일축했다. 다만 자민당 내에서도 총리 교체론이 제기되고 있어 당분간 혼란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국정 동력을 잃은 이시바 정권이 한일 관계 개선 등에 속도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시바 “국정지체 없어야” 사퇴 거부… 당내 거물 아소 “인정 못해”

[위기의 日자민당]
“당파 초월” 연정 확대 뜻 밝혔지만… 야당 대표들은 줄줄이 거부 의사
아소-노다 前총리 “퇴진해야” 촉구… 일각 기시다 재집권 가능성 거론
정치 혼란, 한일 관계개선 영향 우려

침통한 자민당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운데)가 21일 도쿄의 집권 자민당 본사에서 임시 간부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자민당과 연립여당 공명당은 전날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아사히신문 제공

침통한 자민당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운데)가 21일 도쿄의 집권 자민당 본사에서 임시 간부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자민당과 연립여당 공명당은 전날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아사히신문 제공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가 지난해 10월 중의원(하원) 선거에 이어 20일 참의원(상원) 선거에서도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집권 자민당이 참의원과 중의원에서 모두 과반 확보에 실패한 건 1955년 창당 후 처음이다. 특히 일본에선 야권의 강경 보수 성향 참정당과 중도 보수 국민민주당이 약진한 것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자민당이 보수를 대표하며 일본 정계를 주도해 왔던 ‘55년 체제’의 큰 균열을 확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민당은 일부 야당을 포섭해 연립정권의 외연을 넓히는 것도 검토 중이지만, 야권 내 호응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퇴진 위기를 맞은 이시바 총리는 21일 “국정 지체가 없어야 한다”며 당장 사퇴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자민당 일각과 야권에서는 “정권 유지가 국난”이라며 퇴진 요구를 동시에 제기했다. 또 국정 동력이 약해진 이시바 총리가 다음 달 15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년을 앞두고 전후 80주년 메시지를 내놓는 건 어려워졌단 평가가 나온다. 한일 관계 개선 움직임도 일본의 정국 혼란 등과 맞물려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 이시바 “야당과 협력” 주장에 반응 싸늘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은 자민당의 패배 원인으로 최근 1년간 두 배 오른 쌀값, 매달 3% 가까이 상승하는 물가 등을 꼽았다. 외국인 거주자 급증으로 일부 외국인의 범죄와 건강보험 악용 사례 등이 알려지면서 외국인 규제 주장이 힘을 얻었는데 이시바 정권이 이에 소홀했던 점도 패착으로 꼽힌다. 이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로부터 관세율 인상과 농산물 추가 개방 등의 압박을 받으며 민심 이반은 더욱 커졌다.

이시바 총리는 21일 기자회견에서 연정 확대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는 “함께 책임감을 갖고 훌륭한 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분들과 진지한 논의를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고물가 대책에 대해서도 “당파를 초월한 협의를 통해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고 했다.

하지만 협력 대상으로 거론되는 야당 대표들은 줄줄이 거부 의사를 밝혔다.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玉木雄一郎) 대표는 이미 전날 NHK방송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시바 정권에 협력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앞서 근로소득세 비과세 기준 책정, 휘발유 잠정세율 폐지 등의 사안에서 자민당이 자신들과 협력할 것처럼 해놓고 지키지 않았다는 취지다. 일본유신회의 요시무라 히로후미(吉村洋文) 대표도 “자민당과의 연정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이시바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이 확인된 상황에서 굳이 협력할 필요가 없다는 계산 때문으로 풀이된다. 만일 총리가 사퇴하면 중의원 해산, 총선 실시가 이뤄질 수 있는 만큼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는 취지다.

다만 ‘일본인 퍼스트’를 앞세워 참의원에서 총 15석을 확보한 참정당의 가미야 소헤이(神谷宗幣) 대표는 20일 니혼TV에서 중의원이 해산되고 총선이 다시 실시된다면 이시바 정권과 “연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 커지는 ‘이시바 퇴진’ 목소리

총리 퇴진 목소리는 커지는 분위기다. 특히 자민당에서도 지난해 중의원 선거, 올 6월 도쿄도의회 선거, 이번 참의원 선거까지 연달아 패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자민당 내 거물로 파벌 ‘아소파’를 이끄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전 총리는 이시바 총리의 “총리직 유지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요미우리신문은 자민당 일각에서 이시바 총리의 전임자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총리의 재집권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이시바 총리와 결선 투표까지 가는 끝에 패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18일 이미 총재 재도전 가능성을 거론했다.

야권의 유력 인사인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입헌민주당 대표 겸 전 총리도 “민의를 무시하고 자리에 계속 눌러앉겠다는 것인가”라며 사퇴를 촉구했다.

● 한일관계 개선 속도 내기도 어려울 듯

한편 이시바 총리의 정치적 위기가 한일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시바 총리가 과거사 문제에 전향적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당분간은 일본 내부 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일 셔틀외교 복원 등에서 속도를 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전후 80주년 메시지’ 발표 등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도쿄=황인찬 특파원 hic@donga.com
김윤진 기자 k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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