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를 자르고 붙여 병을 치료하는 유전자 편집, 간단한 약물로 나이를 되돌리는 역노화, 생각만으로 사물을 조정하는 뇌 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지난 15~17일 사흘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아부다비글로벌헬스위크(ADGHW)에는 이런 ‘건강수명 연장’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글로벌 의·과학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들에게 아부다비는 혁신 기술을 시험해보는 ‘테스트베드’가 됐다. 유전체 데이터와 병원 진료 기록, 활동 정보 등을 통합한 빅데이터를 구축한 데다 인공지능(AI)을 접목하는 시도가 사회 전반에서 활발하게 이뤄져서다.
◇석유에서 헬스케어로 산업 전환
20일 아부다비 보건부에 따르면 UAE에서 전장유전체(WSG) 분석에 참여한 국민은 약 80만 명이다. 자국민 표준 유전체를 구축하기 위한 ‘에미라티 게놈 프로그램’이 2021년 시작한 지 4년 만에 인구 80%의 유전체 정보가 한곳에 모였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속도와 규모다. 유전체 정보는 환자 맞춤형 치료와 건강 관리를 위한 필수 데이터로 꼽힌다.
에미라티 게놈 프로그램을 맡은 아부다비 바이오기업 M42는 이번 행사에서 가장 큰 부스를 차리고 세계 90개국 1만5000여 명의 관람객에게 기술력을 알렸다. 2022년 아부다비 국부펀드 무바달라가 세운 M42는 제대혈 10만 건과 생체 검체 500만 건을 저장할 수 있는 초대형 바이오뱅크를 가동하고 있다. 이곳엔 이미 90만 건의 혈액샘플 등이 저장됐다. 땅 밑에 묻힌 ‘블랙 오일’을 넘어 미래 국부를 책임질 새 ‘레드 오일’이 사막의 땅 위에 쌓이고 있다는 의미다.
◇화두로 떠오른 ‘건강 장수’
아부다비는 지난해 세계 처음으로 ‘건강장수의료센터(HLMC)’ 인증을 도입했다. 장기적으론 아부다비 내 모든 의료기관이 인증받아 개인 맞춤형 치료를 제공하고 건강 수명 연장에 도움을 주는 게 목표다.
아부다비 보건당국은 평균 수명과 건강 수명 간 격차에 주목하고 있다. 2022년 세계 인구 평균 수명은 73.6세, 건강 수명은 64.8세다. 생애 마지막 8.8년가량은 질병 등을 앓으며 여생을 보냈다는 의미다. 2050년엔 이 격차가 10.7년으로 더 벌어진다.
격차 해소를 위한 해법은 결국 ‘기술’이다. 미국 바이오인텔리센스의 제임스 물트 최고경영자(CEO)는 웨어러블 기기와 원격의료 등이 결합하면 건강 수명을 연장하고 의료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것으로 내다봤다. 이 회사는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하루 최대 1440개 생체 지표를 측정해 모니터링하는 ‘바이오버튼’의 시판 허가를 받았다. 마이크 커티스 이지네시스 CEO는 “특정한 질병 유전자를 비활성화하는 유전자 편집 기술이 건강 수명 연장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생각만으로 조명을 켠다
이번 행사에선 인간의 뇌가 보내는 신호만으로 외부 장치를 제어하는 BCI 기술도 소개됐다. 지난해 말 FDA로부터 첫 BCI 임상시험을 승인받은 미국 싱크론의 톰 옥슬리 CEO는 “루게릭병이나 척수손상 등으로 손을 쓸 수 없는 사람들이 생각만으로 외부 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3년 안에 개발하는 게 목표”라며 “머리를 여는 개두 수술 없이 소형 스텐트만 이식해 뇌로 제어하는 블루투스 조이스틱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움직이지 못하던 환자가 20분짜리 시술을 받은 뒤 생각만으로 아마존 알렉사와 소통하고 집안 조명을 켤 수 있게 됐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싱크론은 아부다비에서 추가 임상시험 등을 진행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아부다비=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