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R선박, '무탄소 게임체인저' 부상…기술 경쟁도 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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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6.03.31 08:10 수정2026.03.31 08:10

[한경ESG] ESG Now

HD한국조선해양이 공개한 1만5000 TEU급 SMR 추진 컨테이너선의 조감도. (사진 제공 = HD현대)

HD한국조선해양이 공개한 1만5000 TEU급 SMR 추진 컨테이너선의 조감도. (사진 제공 = HD현대)

소형모듈원전(SMR)을 배 위에 탑재한 차세대 무탄소 선박이 글로벌 조선업계의 판도를 뒤바꿀 ‘게임 체인저’로 급부상하고 있다. 효율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다른 탈탄소 선박과 달리, 효율과 탈탄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선박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SMR 추진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국내 조선 ‘빅3’는 물론 막대한 자본을 앞세운 중국과 해양 기술 선진국인 유럽 등 글로벌 기업들이 치열한 기술 패권 경쟁에 돌입하고 있다.

10~20년 연료 교체 없는 궁극의 무탄소 선박

HD현대는 최근 미국선급협회(ABS)와 ‘원자력 연계 전기 추진 시스템 개념 설계를 위한 공동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1만6000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대형 컨테이너선에 SMR을 설치하고 전력 시스템 기본설계, 전장품 사양 선정 등을 공동으로 진행한다. 군사적 목적이 아닌 글로벌 물류를 담당하는 민간 초대형 상선에 원자력 발전과 연계한 전기 추진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한 세계 최초의 본격적인 시도다.

SMR은 발전 용량 300메가와트(MW) 이하의 소형 원자로를 일컫는다. 기존 대형 상업용 원전보다 크기가 100분의 1 수준으로 작고, 복잡한 배관 없이 주요 기기들을 하나의 압력용기 안에 일체화한 것이 특징이다. 모듈 형태로 공장에서 일괄 생산해 선박이나 육상에 바로 조립할 수 있어 건설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특히 펌프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 대류를 통해 원자로를 식히는 피동형 냉각 방식을 채택, 전원 공급이 끊기는 침수나 좌초 등 중대 해양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방사능 유출 위험이 극히 낮아 차세대 안전 에너지원으로 불린다.

이러한 SMR을 대형 상선에 적용하면 해운 및 조선 산업의 패러다임과 수익 구조가 근본적으로 뒤바뀐다. 기존 벙커C유나 액화천연가스(LNG) 등 탄소 기반 연료 대신 농축 우라늄 등의 핵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선박 운항 과정에서 탄소는 물론 황산화물·질소산화물 등 유해 물질을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

국제해사기구(IMO)가 2050년까지 해운업계의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넷제로(Net Zero) 목표를 내걸면서 해운사들은 메탄올·암모니아 등 대체 연료 선박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이들 연료는 에너지 밀도 한계로 초거대 연료 탱크가 필요하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반면 SMR 추진선은 날로 촘촘해지는 환경 규제를 단번에 회피할 수 있는 완벽한 대안이다.

운항 경제성 측면에서도 기존 화석연료 선박을 압도한다. 일반적인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태평양 등 대양을 횡단하기 위해 선체 내부에 거대한 연료 탱크를 탑재해야 하며, 수시로 주요 항구에 들러 벙커링(연료 주입)을 해야 한다. 반면 SMR 추진선은 한 번 핵연료를 장전하면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가량 연료를 교체할 필요가 없다. 사실상 선박의 전체 수명 주기와 함께하는 셈이다. 이로 인해 거대한 연료 탱크가 차지하던 막대한 선박 내 공간을 추가적인 화물 적재 공간으로 전환할 수 있어 운송 효율성이 극대화된다.

이번에 ABS와 협력하는 HD현대는 최대 100MW급 SMR을 선박 동력원으로 삼고, 쌍축 프로펠러와 엔진 모터 직결 추진 방식을 적용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확보한 풍부한 전력을 바탕으로 선박 운항 속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전력 소모가 극심한 냉동·냉장 컨테이너 화물 적재량을 대폭 늘려 화주들의 다양한 고부가가치 운송 수요에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SMR 모형도

SMR 모형도

K-조선 빅3 참전 속 거세지는 ‘글로벌 쟁탈전’

HD현대가 글로벌 선급과 손잡고 SMR 선박 상용화에 선수를 치고 나간 가운데,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 등 경쟁사들의 발걸음도 한층 빨라지며 ‘K-조선 삼국지’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수십 년간 축적한 세계 최고의 선박 건조 기술력에 혁신적인 차세대 원자로 기술을 결합해 미래 해양 모빌리티 시장의 초격차를 유지하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있다.

한화오션은 고체 연료 대신 액체 상태의 염(소금)에 핵연료를 녹여 사용하는 ‘용융염원자로(MSR)’ 기술 확보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MSR은 선박 내에 이상 현상이 발생하거나 배가 침몰하더라도 액체 상태의 핵연료가 바닷물 속에서 자연스럽게 고체로 굳어버려 방사능의 해양 유출을 원천 차단하는 안전성을 자랑한다. 한화오션은 이러한 MSR 기술의 잠재력에 주목해 미국 원자력 전문기업 토르콘에 지분을 직접 투자했다.

삼성중공업 역시 덴마크의 차세대 원전 개발사인 시보그와 일찌감치 업무협약을 맺고 소형 용융염원자로(CMSR) 기반의 최대 800MW급 부유식 원자력 발전 설비 제품 개발을 완료해 ABS로부터 개념 인증을 획득했다. 해상 부유식 원전은 육상 원전 대비 부지 선정 제약이 없고 건설 기간이 짧아 전력망이 부족한 국가나 도서 지역에서 폭발적인 수요가 예상된다.

해외 국가와 조선·해운 기업들 역시 SMR 추진선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차지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본을 투입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 글로벌 주도권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해양 기술 선진국인 유럽에서는 영국의 원자력 스타트업 코어파워가 미국·일본의 주요 대형 해운사 및 조선사들과 다국적 컨소 시엄을 구성해 선박용 MSR 개발을 주도 하고 있다. 이들은 2030년대 초반 상용화를 목표로 초대형 해양 연구선 ‘어스 (Earth) 300’ 프로젝트 등에 탑재한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는 막대한 국가 자본력과 내수 물량을 앞세운 중국이다. 중국 국영 조선그룹(CSSC) 산하 장난조선소는 이미 지난해 말 세계 최대 선박 박람회인 마린텍 차이나에서 2만4000TEU급 초대형 원자력 추진 컨테이너선 설계를 공개하고 노르웨이 선급(DNV)으로부터 기본승인(AIP)을 획득했다고 발표해 전 세계 조선업계를 긴장시켰다. 중국은 자국의 풍부한 토륨 자원을 활용한 MSR 기술을 상선에 적용할 계획이다.

SMR선박, '무탄소 게임체인저' 부상…기술 경쟁도 격화


SMR선박, '무탄소 게임체인저' 부상…기술 경쟁도 격화


‘사회적 수용성’ 극복이 관건

다만 SMR 추진선이 실제 바다에 띄워져 상업 운항의 닻을 올리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기술적 완성도 외에도 해결해야 할 규제적·사회적 과제가 산적해 있다. 조선업계 전문가들은 가장 큰 난관이자 역설적으로 가장 큰 기회가 될 수 있는 부분으로 글로벌 규제 표준 마련 및 인프라와 사회적 수용성 확보를 꼽는다.

현재 민간 상선 분야에서는 원자력 추진 선박의 설계·건조·운항에 대한 명확하고 통일된 국제 표준이 완전히 부재한 상태다. 과거 1960년대 미국·독일·일본 등이 시험용 원자력 상선을 건조한 적은 있으나 경제성과 안전성 우려로 상용화에 실패했다. 따라서 국제해사기구의 해상인명안전협약(SOLAS) 규정 개정을 비롯해 원자력 상선에 걸맞은 새로운 기준 정립이 시급하다.

기술적 안전성을 넘어선 ‘사회적 수용성’ 확보도 반드시 풀어야 할 핵심 숙제다. 원자력에 대한 일반 대중의 막연한 공포심이 여전히 큰 상황에서, SMR 추진선이 입항하는 각국의 항만 당국이나 지역사회가 방사능 유출 및 해양 오염 우려를 이유로 선박의 정박 자체를 거부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970년대 일본의 원자력 상선 무츠호 역시 경미한 방사능 누출 사고 이후 자국 항구 입항조차 거부당해 태평양을 떠돌아야 했던 선례가 있다.

한 대형 조선사 임원은 “원자력 연계 전기 추진 선박은 갈수록 깐깐해지는 글로벌 환경 규제 속에서 침체된 해운·조선 시장에 새로운 슈퍼 사이클을 불러올 폭발력을 가졌다”며 “다만 아직 장벽이 많아 이를 어느 국가, 어떤 기업이 먼저 극복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상훈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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